[이유리의 짧은 소설] 웨하스 소년

<월간 채널예스> 202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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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웨하스는 이제 잊어, 제발!' 나는 아득해져 가는 의식 너머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머릿속에 노래는 시작되어 있었다. 바삭해서 행복, 달콤해서 행복... (2023.06.02)


광역 버스에 오르자 기사가 뜨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이거 강남역 가죠?"

그러고는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버스 카드를 찍었다. 좁은 통로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온 사람들이 내 등 뒤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버스 끝까지 나아갔다. 두 자리가 빈 좌석을 택해 창가 쪽에 기대앉았다. 어차피 내 옆에 앉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건너편 통로에 앉은 아줌마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더는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뭘 봐요, 날개 달린 사람 처음 봐요?"

하고.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행운이 필요한 날이니까 쓸데없는 말다툼은 좋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품에 안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아줌마가 상체를 쑥 내밀며 말을 걸어온 건.

"혹시 웨하스 소년 아니에요?"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이어폰을 고쳐 꼈다.

T제과 웨하스 광고에 나온 건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바삭바사악한 얇은 과자에 부드으으러운 크림이 두 겹, 바삭해서 행복, 달콤해서 행복

아직도 그 노래가 귀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그 광고에서 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를 한 아기 천사 분장으로 나타난다. 존재감에 비해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내 역할은 웨하스를 한 입 먹고 눈이 동그래져 제자리에서 포르르 날아오르는 게 전부였다. 이윽고 카메라는 내 날개와 포동포동한 뒤태를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고 그 가운데 T웨하스 로고가 빙글빙글 돈다. 끝.

이 광고가 광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공전의 히트를 친 건 물론 내 덕분이다. 광고를 찍은 이후 나는 '웨하스 소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여고생들은 내 사진을 코팅해서 가방에 걸고 다녔고, 내가 입었던 원피스는 엄마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나는 대통령 부부도 만났다. 아직 몸집이 작아 날 수 있을 때이므로 가능한 일이었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영부인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내 영상은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다. 어느 검색 엔진에서든 '웨하스 소년'이라고 검색하기만 하면 된다.

그 광고 덕택에 내 아역 배우로서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세제 광고, 아동복 광고, 유아용 음료 광고를 통해 제대로 스타성을 입증한 뒤에는 드라마에까지 등장했다. 당시 시청률 1위를 구가하던 수목 드라마였는데, 날개를 달고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나중에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는 남자 주인공의 아역이 내 몫이었다. 당시에는 이미 열 살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아기 때처럼 높이 날 수는 없어 와이어의 도움을 조금 받아야 했다.

그렇다. 몸이 자라면 날개도 따라서 자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날 수 있는 건 아기 적, 몸이 가벼울 때뿐이다. 내가 완전히 날 수 없게 된 것은, 그러니까 아무리 날개를 퍼덕여도 땅에서 1cm도 떠오를 수 없게 된 건 열다섯 살 때였다. 마침 내가 할 수 있는 배역에도 한계점이 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날개를 달고 태어난 사람들은 날개의 무게 때문에 키가 잘 자라지 않는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소리가 변하고 수염도 거뭇해진 중학교 2학년짜리는 아기 천사를 연기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날개를 단 채로 일반적인 배역을 맡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조금씩 잊히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스물두 살의 날개 달린 사람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말해 두지만,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 장래 희망은 처음엔 우주 비행사였다. 하지만 날개 달린 사람들을 위한 우주복은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론 그럼 그걸 개발해야겠다 싶어 우주 항공 과학자로 노선을 바꿨다. 학교 다닐 땐 과학 시간에 꽤나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도 있다. 내 날개가 칠판을 가린다는 반 아이들의 원성 때문에 매번 맨 뒷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그러나 엄마는 내가 배우가 되길 바랐다. 아니, 배우가 아니라 뭐든 좋으니 텔레비전에 계속 얼굴을 비추고 살기를 원했다. 그건 내가 '웨하스 소년'이던 시절에 엄마가 시작했던 사업과 관련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는 학교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고 있었다. '또또분식'이라는 이름이었던 그 가게는 내가 웨하스 소년이 되고부터 더 이상 작은 가게가 아니게 되었다. 내가 유명해지자 나를 보려고 사람들이 가게로 몰려왔고, 엄마는 아예 양옆에 있던 세탁소와 옷가게를 사들여 분식집을 크게 키웠다. 그러고는 웨하스 광고 촬영에서 캡처한 사진으로 만든 등신대도 놓아두고 온갖 사진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나중에는 숫제 '웨하스 소년의 집'이라고 쓰인 현수막까지 걸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게 좀 민망하다고 생각했다. 또또분식에서 파는 떡볶이, 김밥, 순대, 어묵과 웨하스 소년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와 분식을 주문했고 날아다니며 서빙을 하는 어린 나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나는 학교 가는 시간과 촬영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또또분식에 있었다. 아기 때에야 일하는 엄마 말고는 날 돌봐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가게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턴 나도 또래들처럼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었으나 엄마는 보내주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는 날개 달린 아기를 낳느라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서 내 입을 막곤 했다. 나오면서 날개가 입구에 걸리는 바람에 급히 입구를 찢어내야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좁은 통로에 몸이 꽉 끼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내가 점점 나이를 먹으며 날 수 없게 되었을 즈음 더 심해졌다. 또또분식은 이제 직원이 20명가량 되는 거대 분식 체인점이 되었다. 규모와 웨이팅에 비해 맛은 그저 그렇다는 평가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또또분식에 몰려왔고, 그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귀여운 소년의 서빙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와서 본 것은 시꺼먼 중학생이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달고 뒤뚱거리며 인파를 헤치고 걸어 다니는 모습뿐이었다. 사람들은 대놓고 불만스러워했다.

"왜 멀쩡한 날개를 두고 걸어 다녀요? 좀 날아봐요!"

"여보세요? 어, 여기 지금 또또분식 왔는데 얘 안 날아다니는데?"

"드라마에선 잘 날던데, 왜 안 날아요?"

그냥 등에 써 붙여놓고 다니고 싶었다, 드라마에선 와이어를 쓴 거라고. 하루에도 같은 말을 수십 번 설명하다 지쳐 나는 점점 말수를 잃어갔다. 엄마는 날지 못할 거면 제발 표정이라도 풀고 다니라고 말했지만 누가 그러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학교가 끝나자마자 분식집 앞치마를 두르고 날개로 사람들을 헤쳐 가며 서빙을 하다 지쳐 곯아떨어지는 삶을 산다면.

그러던 어느 날, 가뜩이나 바쁜 토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신없이 서빙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일행이 내게 또 같은 질문을 했다. 왜 날아다니지 않느냐고. 나는 주변이 시끄러워 못 들은 척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그 테이블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날아라! 날아라! 날아라! 날아라!"

숫제 테이블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고 외치는 그 소리를 일행들이 복창했고, 곧이어 옆 테이블이, 그 옆 테이블이 따라 했다. 순식간에 드넓은 또또분식 전체가 "날아라!"하는 외침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절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엄마가 있는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거기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떡볶이 냄비를 젓고 있는 걸 봤는데도. 나는 뒷걸음질하며 더듬거렸다.

"저, 저는 날 수가 없어요. 이미 못 날게 된 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요."

"날아라! 날아라! 날아라!"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그러니까 그때 손에 들고 있던 순대 접시를 내려놓고 빈 테이블에 올라간 건, 거기서 웃통을 벗고 날개를 활짝 드러낸 건 순전히 객기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날개를 힘껏 푸드덕거리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들이밀어진 휴대폰 카메라가 오십 대, 아니 백 대는 되어 보였다. 그 앞에서 나는 뛰었다. 펄쩍,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그리고 뛰는 순간에야 내가 왜 뛰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내게 왜 날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 따위는.

사실 아까 언급한 대로 검색 엔진에 '웨하스 소년'을 검색한다면 최상단에 뜨는 영상은 바로 누군가가 찍어 올린 그날의 영상이다. 그러니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다면 그냥 영상을 끝까지 보면 된다. 119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얼빠지고 반쯤 익은 얼굴로 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밖에 안 나올 테지만. 원래도 드물었던 텔레비전 출연은 그날 이후로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하필이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즉석 떡볶이 냄비에 얼굴을 정통으로 처박은 탓에, 이마빡이며 볼에 우둘투둘한 화상 흉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일은 그렇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이 하나 있긴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또또분식에 나가지 않게 됐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얼굴의 화상을 치료하고 나서 나는 갑작스럽게 자유로워졌다. 엄마는 내게 이제 마음대로 살라고 말했다. 굉장히 선심을 쓰듯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그 말을 들으니 막막해졌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미 우주 항공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성적은 바닥, 관심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고등학생. 게다가 등짝에는 거추장스러운 날개까지 달려 있는.

내가 내 날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왜 이런 것을 달고 태어났을까. 그냥 재수 없게 등에 뭐가 하나 더 붙었다고 치기엔 내 인생은 이것 때문에 완전히 일그러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야 날아다녔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살덩어리에 불과한 날개. 아니, 이게 날개가 맞긴 할까. 내 등에 달려 있는 이건 도대체 뭘까. 무엇에 쓰라고 있는 것일까. 머리가 빠개지도록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단 하나 떠올려낸 것은, 날 수 있던 시절에도 나는 날아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강남역에 내리자마자 나는 일직선으로 걸었다. 익숙한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을 보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필 이어폰에서는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가 나오고 있었다.

난 이대로 아름다워, 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베이비, 난 제대로 가고 있어...

그렇다.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 내 등짝에 날개를 달아놓은 대신 그걸 떼어줄 성형외과 의사도 창조하셨으니까. 등 뒤가 훤히 트인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대에 엎드렸을 때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침대 옆에 선 간호사가 설명했다. 수술은 전신 마취로 진행될 것이며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취제가 든 주사기를 들고 다가온 다른 간호사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문득 물었다.

"저, 실례지만... 웨하스 소년, 아니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이제 눈을 뜨면 날개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날개 없는 몸. 그 몸으로 여길 나가면 제일 먼저 뭘 해볼까. 뭘 할 수 있을까.'

링거에 마취제 주삿바늘이 꽂히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차가운 느낌이 왼팔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퍼졌다. 

'잠들기 전에 생각해야 해, 생각해... 생...각...'

그러나 잠들기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이상하게도 입안 가득 퍼지는 웨하스의 맛이었다. 

'젠장, 웨하스는 이제 잊어, 제발!'

나는 아득해져 가는 의식 너머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머릿속에 노래는 시작되어 있었다. 


바삭해서 행복, 달콤해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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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유리(소설가)

소설가. 식물과 고양이를 사랑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한 소설을 쓴다.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괴담』, 『인어의 걸음마』에 표제작을 수록하는 등 여러 SF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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