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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가 읽은 그림책] 『나와 없어』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어떤 식탁에는 늘 빈 의자와 빈 접시가 놓인다. 그 자리에 고인 슬픔의 무게는 오직 자리의 주인을 잃은 사람만이 잴 수 있다. 상실의 크기도 애도의 시간도 함부로 가늠될 수 없다. (2023.02.03)
내가 기억하는 첫 장례식은 먼 친구의 모친상이었다. 스물셋이었던 나는 절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모든 것이 서툴러서 어쩌면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내가 그때 친구에게 건넸던 위로의 말들은 하나같이 무지하고 무용했다. 그걸 아는 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가까운 이들이 슬픔에 대처하는 서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날의 장례식장이 생각난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슬픔은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는다 한들 익숙해지지도 능숙해지지도 못할 것이다. 때로 부재의 자리에 무(無)가 잘못 놓이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_존 버거, 『A가 X에게』 중
키티 크라우더의 『나와 없어』는 바로 이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는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이 있다. 아내를 잃은 아빠와 엄마를 잃은 딸 라일라다. 떠난 사람은 하나지만 아빠의 상실과 라일라의 상실은 각각의 독립적인 슬픔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이들 중 부재를 무와 혼동하는 이는 안타깝게도 아빠 쪽이다. 그 바람에 아이는 떠난 엄마가 지워진 세상에서 홀로 외롭기까지 하다.
그런 아이 곁에 '없어'가 있다. 오직 라일라 눈에만 보이는 이 상상 친구를 두고 어른들은 걱정하지만, 사실 상상 친구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내면의 불안이나 외로움을 다루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상상 친구는 종종 나타날 수 있고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라일라에게도 그렇다. '없어'는 아이의 유일한 마음 둘 곳이다. '없어'와는 그리운 엄마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고, 괴롭고 외로운 속내도 나눌 수 있다. 아이는 '없어'를 위해 식사 때마다 식탁에 빈 의자와 빈 접시를 놓는다. 간절히 곁에 있기를 바랐던 존재가 떠난 자리에 만들어진 상상 친구의 이름이 '없어'인 것은 상징적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부재가 무와 다르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슬픔을 보이는 방식으로 위로하는 방법 또한 아이는 알고 있다.
'없어' 말고도 이야기 속에서 부재가 존재하는 방식이 하나 더 있다. 라일라가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들이다. 추울 때 옷을 입는 법, 정원에 꽃을 심고 돌보는 법,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와 흰눈썹울새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엄마가 떠난 뒤에도 남아 아이를 돌본다. 아이는 추울 때 엄마가 입으라던 아빠의 커다란 웃옷을 입고, 빈 땅에 엄마의 꽃씨를 심는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인 줄도 모른 채로 그렇게 한다. 마침내 정원에서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꽃들이 피어났을 때 독자는 알게 된다. 부재와 무를 구분하는 이의 애도가 얼마나 온화하고 성숙한지. 그러니 내내 상처를 외면하고 봉합하기에 급급했던 아빠는 그의 딸에 비하면 얼마나 서툴고 미욱한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 '없어'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들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주제와도 닿아 있다. 요정, 고블린, 트롤, 거인, 마녀를 비롯해 모든 신과 여신을 믿으며 자랐다는 작가의 작품 속에는 늘 인간의 인식 너머를 존중하는 태도가 있다. 없는 것과 모르는 것을 섬세하게 분별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새롭고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들을 상상하는 일은 오직 유희가 아니다. 오히려 지성에 가깝다.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라면,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내가 끝내 다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겸손한 태도를 어떻게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타인의 슬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과거는 영영 닫히지 않은 채로 현재와 나란히 흘러간다. 어떤 식탁에는 늘 빈 의자와 빈 접시가 놓인다. 그 자리에 고인 슬픔의 무게는 오직 자리의 주인을 잃은 사람만이 잴 수 있다. 상실의 크기도 애도의 시간도 함부로 가늠될 수 없다. 책의 표지에는 '없어'와 함께 있는 라일라 뒤로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묘비처럼 서 있다. 하나의 삶에 수많은 죽음이 이어져 있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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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 비혼이고 고양이 '탄'의 집사이며, 채식을 지향하고 식물을 돌보며 산다. 그림책 『섬 위의 주먹』, 『마음의 지도』,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해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