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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홉, 이상 실현을 위한 투쟁
제이홉(J-Hope) <Jack In The Box>
다양한 세대와 국가를 포용하는 친절한 표현법과 원만한 팝적 교류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2022.08.17)
장난기 어린 만화풍의 세계 가운데 '제이홉'은 홀로 입체적이다. '베키 지'와의 협업 싱글 'Chicken noodle soup'로 평면적인 차트 중심의 활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홀로서기의 주된 의의는 본인의 형상을 오롯이 간직한 존재가 되는 것. 이제는 '방탄소년단'이라는 거대 브랜드에 귀속된 일부가 아닌 독립된 뮤지션으로 거듭나는데 방점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아 성찰과 사회 담론을 풀어낸 2018년 믹스테이프 <Hope World>의 상위 개념이자 첫 정규작인 <Jack In The Box>는 이상 실현을 위한 공개 전시회에 가깝다. 작곡과 작사, 아티스트의 섭외, 더 나아가 더욱 확장된 콘셉트 활용과 연출까지 진두지휘하는 모습에서 자기 색을 쟁취하려는 엄연한 예술가의 인정 투쟁이 그려진다.
'무수한 환경으로 탄생한 나 / 당당히 비춰 네 페르소나'라는 가사가 일컫듯, 로마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를 설명하는 인트로와 중간 삽입된 인터루드, 상자에서 인형이 튀어나오는 장난감을 소재로 한 호전적인 장치들이 한 차례 껍데기를 깨고 태어난 그의 자신감과 의지를 대변한다. 다양한 세대와 국가를 포용하는 친절한 표현법과 원만한 팝적 교류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쉽고 직선적인 비유와 고난도의 테크닉보다 운율감에 집중한 라임 배치를 통해 메시지 전달의 토대가 되는 랩의 가독성을 높이고 진입 장벽을 낮췄다. 마무리를 장식하는 '방화 (Arson)'에서 그 성질을 엿볼 수 있다. 인스트루멘탈 힙합 신의 디제이 클램스 카지노의 음침하면서도 묵직한 비트, 제이홉 특유의 탄력적인 래핑과 감각적인 퍼포먼스의 조합은 '강렬함'과 '대중성'의 오묘한 조화를 상징한다.
다만, 정규작의 관점에서 <Jack In The Box>의 구성은 꽤나 급하고 성기다. 곡이 짧아지는 추세를 반영해 22분 안으로 욱여넣은 열 개의 트랙은 집중을 분산시키고, 그 중심이 되는 내용물 역시 어두컴컴한 저음의 베이스와 둔탁한 드럼 라인을 반복하는 양상이기에 상당수 피로감을 낳는다. 초반부 'Pandora's box'가 보인 압도적인 기선 제압에도 불구하고 중후반부에 이르러 그 기세가 쉽게 소멸하는 이유다. 환기를 위해 곳곳에 투입된 훅 구간 역시 '= (Equal sign)'을 제외하면 서로 간의 차별점을 지니지 않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다채로운 시도에도 안정성을 추구했던 <Hope World>에 비해 완급 조절과 소화에 필요한 시간을 구비하지 못한 점이 균열의 원인으로 보인다. 비장하고 날선 힙합 색채를 극적으로 피력해 파격 변신의 모토를 가져온 것 외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만큼 전달성을 무기로 침착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깜짝 상자가 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판도라의 상자처럼 '방탄의 희망'이 되기엔 강박보다도 조금의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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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