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본 TV] 여행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텐트 밖은 유럽>
자급자족 '찐' 캠핑 예능 <텐트 밖은 유럽>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이어지는 1482km의 길. 그 위를 렌터카를 타고 달린다. 배낭과 텐트를 싣고, 8박 9일 동안. (2022.08.12)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늘 있었다. 일, 시간, 돈, 잠 같은 것들. 가끔은 그 모두가 충족되는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행이 1순위는 아니었다. 평소 '선택이 나를 말해준다'고 믿는 터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여행 별로 안 좋아하네.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을 보면서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여행이란 게 저런 시간들로 채워지는 거였지' 하고 새삼 떠올리면서, 그 사실을 잊은 채 지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닭살이 오소소 돋는 것처럼 여행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텐트 밖은 유럽>은 네 명의 배우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의 여정을 따라간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이어지는 1482km의 길. 그 위를 렌터카를 타고 달린다. 배낭과 텐트를 싣고, 8박 9일 동안. 네 사람은 직접 운전을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면서 '자급자족 찐 캠핑을 이어간다. 현재까지 2회 방영된 <텐트 밖은 유럽>에는 인터라켄에 있는 첫 번째 캠핑장에서 보낸 1박2일이 담겼다.
이들은 '스팟'을 찾아다니느라 '사이'를 건너뛰는 여행은 하지 않는다.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서 모든 순간에 머무른다. 준비된 차량을 타고 미리 섭외된 장소로 이동해서 즐기거나 쉬는 게 아니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네 사람이 함께, 알아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덕분에 세세한 과정을 담을 수 있었고, 그것이 시청자로 하여금 '나의 여행도'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공항에서 게이트를 잘못 찾아서 시간을 허비하고, 렌터카를 빌려야 하는데 통역 어플에 문제가 생겨서 당황하고, 초행길에서 (그것도 교통체계가 전혀 다른 곳에서) 운전하느라 긴장하고, 그러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낯선 풍경에 넋을 뺏기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은 또 있다. 시간에 쫓기며 산악 열차(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왔더니 마트는 폐점 시간이 다 됐다. 서둘러 장을 보며 구한 거라고는 과일과 달걀, 물, 컵라면 뿐. 어쩔 수 없이 여행의 첫 식사는 '달걀 풀어 넣은 컵라면'이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더 쿨름 전망대를 내려오기 전부터 흩뿌리던 비는 마트에 다녀오는 내내 그칠 줄 모르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거센 비가 되어 텐트 위로 쏟아진다.
계획은 늘 틀어진다. 여행에서는 더 그렇다. 아무리 빈틈없이 일정을 짜도 꼭 어그러진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에는 빽빽하고 퍽퍽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그 사실을 <텐트 밖은 유럽>을 보면서 깨달았다. 유해진, 진선규, 윤균상 세 사람은 장을 보고 오는 길에 계속 비를 맞는다. 하지만 '언제 또 스위스에서 비 맞으며 걸어보겠어' 하고 웃어버린다. '지금이 아니면, 이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인터라켄에서 맞은 두 번째 날, 진선규와 윤균상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기대에 찬 윤균상과 달리 진선규는 걱정과 긴장을 떨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해보겠냐고. 이후에 두 사람은 유해진과 만나 툰 호수를 찾는다. 유해진은 선뜻 호수로 들어가 수영을 하지만 진선규와 윤균상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곧 유해진이 이끄는(?)대로 물속에 뛰어든다. 어쩌면 세 사람이 함께 나눴을 이야기를 TV 앞의 내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언제 툰 호수에서 수영을 해보겠어.
말을 꺼내고 보니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흘려보낸 것들이 기억났다. 예를 들면, 걸어서 30분이면 한강 공원에 갈 수 있는 곳에서 5년을 살았으면서도 한 번 밖에 가지 않은 일, 같은 것.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했을 텐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끝내 하지 못했다. 지금 경험하는 것은 나중에 경험하는 것과 엄연히 다른데도.
그러니까,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던 것이다. 낯섦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이 있고, 계획이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떠나오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도 있으니까.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텐트 밖은 유럽>을 보면서 다시 떠올렸다. 거듭 생각해 봐도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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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에서 바라보는 융프라우가 얼마나 멋지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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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작가를 인터뷰하고,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의 야심한책 - 삼자대책’ 코너에서 책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