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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바로잡는 의학상식] 나에게 맞는 의사 찾기 : 의사와 소통하는 법

이승훈의 바로잡는 의학상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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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곤란하고 힘든 상황일 수도 있는 만큼, 선입견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022.08.02)


격주 화요일,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가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의학 상식을 소개합니다.


언스플래쉬

필자는 외래 클리닉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난다. 환자들의 태도는 정말 다양하다. 의사 입장에서 유쾌하게 말이 잘 통하는 환자들도 있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황당한 상황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의사를 만나는 환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게다.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니는 환자들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사실 환자-의사 관계는 수요, 공급, 물건의 질 및 가격이 중요한 전형적인 소비자-판매자 관계가 아니다. ‘의료’는 환자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행위의 결정체이므로, 공급자인 의사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따라서 의료인은 환자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치료 대상 ‘인간’으로 보는 윤리 의식을 갖추어야 하고, 이에 따른 환자-의사 관계는 의료 행위의 주, 객체로서 확고한 상호 신뢰 관계가 기본 전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비해 도덕적 평판은 상당히 실망스런 수준이다. 높은 수입의 의사를 부러워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에 대한 존경 의식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말이다. 의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이 이럴진대, 환자들에게 의사를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일 듯싶다. 신뢰 회복을 위한 의사 사회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요즘 의사 사회 안에서도 윤리 의식 회복을 위한 자성의 노력이 보인다.

이렇게 믿기 힘든 의사들이라 하더라도 병을 가진 환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왕 힘들게 만나는 거라면, 내 몸에 가장 도움이 될 의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인지상정이다. 그럼 좋은 의사를 어떻게 가려낼까? 좋은 의사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들과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수십 년 간 외래 및 입원 진료를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필자가 이에 대한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한다. 물론 이 방법이 반드시 맞는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의사를 만날 때 통용된다는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필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주관적 의견이니, 이를 현명하게 잘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1. 그간의 병력을 깔끔하게 시간순으로 정돈하여 얘기한다.

1~2쪽 정도로 정리한 자료를 가져가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외래 진료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고, 담당 의사는 당일에도 유사한 병력을 가진 환자를 수십 명 만난다. 의사도 사람이니, 비슷한 환자를 만나는 데 지쳐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복잡한 병력임에도 이를 보기 좋게 정리한 메모를 가지고 온 환자를 만나면, 대개의 의사들은 환자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이 정도의 자료만 가져가도 의사는 ‘환자를 허투루 보면 안 되겠구나’하는 느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2. 외부에서 시행한 검사 자료는 모두 빠짐없이 가져간다. 

상급병원에 방문하면서 그전 병원의 의무 기록과, 판독지, 영상 자료를 챙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심지어는 일부러 안 가져왔다면서, 중복으로 검사해 달라는 경우도 많다. 사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같은 검사를 절대 중복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검사로 최대한의 정보를 얻는 것이 좋은 의사의 능력이다.


3. 병력을 ‘지나치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방문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 증상에 대한 하소연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차라리 말하지 말고, 의사의 질문에 확실하게 답변을 잘하는 것이 낫다. 병원에 와서 불필요한 하소연으로 진료 시간을 잡아먹는 환자들이 왕왕 있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의 모든 호소를 듣는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3분 진료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자세로 외래 클리닉을 유지한다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의사의 입장을 미리 생각해주는 환자를 만나면, 그 자체로도 환자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생기게 된다.


4. 모든 정보를 제공한 후에는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진단, 치료 및 예후에 질문한다.

애초에 이를 설명하지 않거나, 답변을 피하는 의사는 절대 좋은 의사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진단, 치료에 대한 정보를 잘 주지 않는다. 과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심지어 진료 기록에도 이를 작성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다. 의사 입장에서도 참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악성 종양이 진단되는 경우, 이를 환자에게 고지하는 걸 꺼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환자에게는 얘기 안 하고 보호자에게만 말하는 의사들도 있다. 껄끄러운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안 좋은 소식일수록 반드시 의사가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를 피하는 버릇이 들다 보면 자꾸 피하게 되고, 결국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습관이 길들여지게 된다.

환자들도 ‘어련히 알아서 치료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물어보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년 넘게 다니면서도 왜 외래를 다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는 반드시 의사에게 ‘현재 나의 질환은 무엇인지’, ‘치료 방법은 무엇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치료해야 하는지’, ‘치료의 결과로 어떤 상황이 예상되는지’를 확실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진료 시간이 짧다는 핑계로 이를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의사는 사실 이를 진지하게 고민한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의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환자에게는 절대 좋은 의사가 아니다.


외래 클리닉은 어찌 보면 다른 생각을 가진 의사와 환자라는 객체가 만나는 하나의 문화 충돌 현장이다. 일면식이 없는 사이임에도 필요에 따라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야 하고, 그럼에도 의사에게 반드시 신뢰감을 가져야만 하는 어색한 공간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곤란하고 힘든 상황일 수도 있는 만큼, 선입견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이 칼럼에서 제시한 몇 가지 노하우가 환자분들의 슬기로운 병원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승훈 저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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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자.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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