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의 뒷면]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이상한 정상가족』
<월간 채널예스> 2022년 4월호
조금 더 단단한 옷을 입은 『이상한 정상가족』이 더 많은 사람에게 요구와 필요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우리가 만들어갈 변화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2022.03.31)
고백하건대 초판으로 막을 내린 책을 꽤나 만들었다. 그중에는 정말 잘하고 싶어 아등바등했으나 끝내 사랑받지 못한 책도 있었다. 멋진 제목을 척척 달고 나와서 여러 서점의 주목을 받으며 반짝이고, 유명 인사가 읽어서 치솟는 판매량을 기록했던 책들도 부럽고 또 부러웠지만, 내가 가장 부러웠던 책은 단정한 옷을 입고 적절한 제목을 달고 오랜 사랑을 받는 책, 이름하여 ‘스테디셀러’였다.
2017년 출간된 이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상한 정상가족』의 개정 증보판 작업을 맡았다. 종종 가졌던 식사 자리에서, 저자인 김희경 선생님은 책에서 지적했던 내용들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기쁜 얼굴로 말씀하셨다. 20쇄 발행을 앞두고 달라진 제도를 골자로 새로운 서문을 써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 이후 긴 메일이 왔다. 아무래도 서문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법과 제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정부 관료와 현장 활동가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두 곳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라고 말씀하셨다. 연이어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마주하며 기쁜 마음으로 서문을 쓰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선생님의 ‘우왕좌왕’이 담긴 메일을 보고 나는 되레 욕심이 생겼다. 새로운 서문을 쓰고 법과 제도의 변화를 덧붙이는 작업을 넘어, 선생님의 ‘주저함’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책을 몇 달간 절판시키고, 새로운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이는 작업은 저자에게도,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도, 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이 책의 개정 작업에 치열하게 참여했다. 디자이너와 소통하여 ‘변화’와 ‘연결’을 열쇳말로 하고 부제의 의미를 시각화하는 표지를 구상했다. 모든 내용을 재검토하며 더 나은 표현을 찾아 저자와 협의했다. 특히 그간 독자들이 보내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행정 용어인 ‘유기’를 풀어 쓴 ‘버리다’라는 표현은 ‘돌봄을 받지 못한’으로 수정했고, ‘저출산’ 관련 표기는 여러 맥락을 고려하여 유지했다. 이 책에는 지난 5년간 『이상한 정상가족』을 만나온 독자들의 고민도 담겨 있다.
개정 증보판에는 입양 당사자들의 인터뷰도 추가됐다(나는 새롭게 추가된 내용 중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민간에서 주도하는 입양 제도의 문제점에 더해, 실제로 입양 당사자들이 입양 과정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 투명하고 안전한 소통을 통해 ‘진실’을 알아가는 것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 ‘입양에 관한 환상을 깨는 성찰’이 가득하다.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한 정상가족』이 이끈 변화를 보며 경이감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 이 책으로 인해 아동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가족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사회 구조적 틀로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민법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는 등 여러 변화가 이루어졌다. ‘노키즈 존’ ‘민식이법’ 등이 화두로 떠올라 아이들의 권리와 배제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 ‘어린이’의 자리가 늘었다.
이토 아사는 『기억하는 몸』에서 “요구가 있을 때 비로소 누구나 당사자가 된다.”라고 썼다. 어떤 필요와 요구를 만들어 독자들을 그 문제에 연루시키고 결국 모든 이를 ‘당사자’로 만드는 책. 나는 그런 책에 스테디셀러라는 묵직한 이름이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무색하게 하는 생명력을 지닌 텍스트가 무엇인지 몸소 배웠다. 조금 더 단단한 옷을 입은 『이상한 정상가족』이 더 많은 사람에게 요구와 필요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우리가 만들어갈 변화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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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일을 하는 것이 꿈이다. 쉬는 날에는 자전거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