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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북튜버로 3년 살아보니
<월간 채널예스> 2022년 2월호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건 <편집자K> 채널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이 내가 다 알 수 없는 곳으로 퍼져나가 저마다의 운명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 감각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만 가능하다. 내 채널이 그 기능을 하는 것이 순수하게 기쁘다. (2022.02.07)
누적 조회수 200만 회, 시청 시간 20만 시간, 구독자 수 2만 7700명. 나는 이 숫자들 앞에서 잠시 멍해졌다. 큰 숫자란 건 알겠는데 얼마나 큰 숫자인지 가늠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전교생 다 모여도 2천 명이 안 됐잖아, 2만 7700명이란 건 그거에 열네 배라는 거고… 잠실 주경기장 수용 인원이 10만 명이라던데 200만 회란 건 그거에 스무 배란 거고…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올해 1월 20일은 유튜브 채널 〈편집자K〉 오픈 3년이 되는 날이었다. 앞의 숫자들은 그 3년의 결과물, 일종의 성적표다. 숫자에 무감한 편이지만 이 성적표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주말을 반납한 채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했던 나의 강박적인 성실성과, 주위에 흔치 않은 책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헤맨 구독자들의 애정이 만든 숫자들이다. 눈물이 날 것 같군… 3년. 그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미래를 도모해보기 좋은 때다.
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그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뭐라 대답하건 결과론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기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랄까.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고,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진다는 게 어떤 건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첫해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을 탑재하는 데 바쳐졌다. 영상 편집은 처음이었다. 내 얼굴과 목소리를 반복해 보고 듣고 분초 단위로 점검하는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하는 일도. 두 번째 해는 내가 꾸준히 잘 만들 수 있는 콘텐츠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조율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현재 〈편집자K〉 채널 시그너처 콘텐츠라 할 수 있는 신간 추천 영상 ‘이달엔 이 책’이 이때 자리 잡았다. 세 번째 해에는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보다 조회수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썼다. 전업 유튜버라면 모를까 소위 ‘부캐’로 이 정도 규모면 딱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영상당 조회수 1만 회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
채널을 운영하며 나에게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건 ‘완독파’에서 ‘발췌독파’로 체질이 바뀐 것. 나는 그간 뼛속 깊이 완독파였다. 어떤 책이건 결국엔 내게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줄 거라는 고전적 믿음, 중간에서 멈추는 것은 곧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기질 등이 합쳐진 오랜 습관이다. 그렇지만 회사 일과 관련된 책과 개인적으로 읽는 책이 이미 적지 않은데 영상에서 소개할 책들을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고르는 일까지 더해지니, 정독하고 완독하는 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고로 발췌독은 당연한 변화였으며, 이는 나를 서서히 ‘독서가 - 편집자’에서 ‘큐레이터 - 편집자’로 이끌어갔나니, 묘하게 삶의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기도 하다. 구독자가 늘면서 편집자의 일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문학책 만드는 법』도 썼다. 또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건, 일과 삶이 채널에 고스란히 담기는 만큼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편집된 영상 속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나아 보였고, 그것은 묘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해 때때로 실제의 나는 영상 속 나를 좇는다.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건 〈편집자K〉 채널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한 권의 책이 내가 다 알 수 없는 곳으로 퍼져나가 저마다의 운명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여러 피드백을 통해 내가 그 사실을 점점 더 자주 확인하게 된다는 것, 그 감각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만 가능하다. 내 채널이 그 기능을 하는 것이 순수하게 기쁘다. 책이 도착한 곳에서 각기 다르게 읽히고 동시에 어떤 감상은 보편성을 갖기도 해 또 다른 곳으로 이어져나가는 것. 그것을 보는 것.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도서관 환상들』에서 ‘페이지 매겨진 정신(paginated mind)’이라는 근사한 표현을 발견했다. 이 책은 ‘페이지 매겨진 정신’을 ‘자극, 도발, 유혹하거나 동요케 할 뜻밖의 교류를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에 관해 쓰였는데, 나는 자꾸만 ‘도서관’ 자리에 내 채널을 대입해 읽었다. “책들은 저마다 연결되고 관계 맺음으로써 도서관을 무한한 상호 텍스트적 요소로 가득 찬 하나의 거대한 초월적 책(meta - book)으로 만든다”는 문장에서도 그랬다. 〈편집자K〉 채널이 도서관만큼의 공공성을 갖긴 어렵겠지만, 독서라는 내밀하고 사적인 활동을 확장시키고 때로 즐거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라며, 그것이 어느 면에선 책과 비슷한 공간이 되길 바라며, 3주년을 자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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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 만드는 법』을 썼고 유튜브 채널 <편집자 K>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