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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다 읽겠지] 이 싸움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2022.01.05)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웃나라에 '츤도쿠(つんどく)'라는 말이 있다지만, 나는 언젠가 소셜미디어에서 본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라는 표현을 열렬히 사랑하는 편이다. 구독 시대에 이 같은 존재가 있다면 매월 정기결제를 하며 새로운 책들을 찜해두지만, 언젠가는 읽겠지 생각하며 영원히 읽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닐까. 나의 북클럽에 담은 책 수는 어느덧 275권. 하지만 찜한 책을 다운로드하기도 전에 서비스 종료일이 임박해 와 조바심이 나고 초조해진다. 이런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이번 달 결제도 출판계의 빛과 소금으로 돌아가겠지’ 위안을 삼았던 나날들이 스치운다. 한 달에 한 권만 읽어도 이득이라지만, 한 달에 열 권의 책을 담고 한 권도 읽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 정말 저밖에 없나요? 그래서 시작했다. 죽기 전에 다 읽기 위해.
이번 달에 소개할 책은 『어른의 문답법』이다. 이 책을 골라 들게 된 건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이란 부제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본가에 내려가는 길 버스 안에서 읽었다. 아버지와 더는 ‘개싸움’으로 가지 않는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쌍도의 딸’로 태어나 해야 할 말을 참지 않는 성격으로 자란 덕분에, 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내게 숙제와도 같았다. 종종 경상도식 대화란 날카롭게 벼린 칼날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타지 사람들에게 “싸우는 거 아니”라 해명하는 말은 때론 거짓말이다. 평화로웠던 대화가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 되는 건 한순간이고, 결국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면 남는 건 누더기가 된 마음뿐이었다. 우리의 대화가 서로의 다름을 끝까지 재기 위함이 아니라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어른의 문답법』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생각이 다른 존재와 싸움이 아닌 논쟁을 이끌어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혐오와 갈등의 시대, 성숙한 토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초급부터 중급, 상급 등의 단계로 나누어 안내하는데, 존중하는 대화를 하는 기본적인 태도에서부터 논쟁적 대화를 풀어가는 도구, 생각이 닫힌 사람의 마음의 장벽을 넘는 기법까지 그 방법이 정교하고 또 현실적이어서 실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다. 대화 중 발생하는 분노에 대처하는 법,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땐 대화를 끝내는 법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사실 당신을 좀 더 잘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펼친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어쩐지 스스로의 대화법을 반성하게 됐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가 아니라 이기고 지는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를 가르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나 역시 배우고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한쪽으로 치워버린 게 아니었나. “네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묻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상대만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인연을 내 경계선 안으로 들이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큼, 그 노력을 포기하고 끊어내는 것은 너무도 쉽다. 함께 쌓아온, 또 앞으로 쌓아갈 시간들이 서로를 구성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주는 친밀함 보다 서늘하고 분명한 시차가 느껴질 때면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이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버리면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선 이후의 대화는 우리 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될까, 아니면 견디기 어려운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마음속 돌멩이가 될까. 『어른의 문답법』은 관계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덕분에 아버지와 싸우지 않았냐고? 음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역시 뭐든 한 번에 되는 법은 없다. 물론, 타지 사람들에겐 “싸우는 거 아니”라고 말할 거다. 정말 싸우지 않게 될 때까지 종종 다시 꺼내 읽는 수밖에.
이외에도 『눈 떠보니 선진국』은 IT 전문가의 입장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지위로 위상이 바뀐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결과제들을 제시하는 책으로, 대선이라는 굵직한 정치적 행사를 앞둔 이번 새해에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동안 문의가 많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교통경찰의 밤』, 『방황하는 칼날』,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등도 연이어 업데이트될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아직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만큼 앞으로 찾아올 남은 즐거움이 많다고 생각해야지. 그렇게 수많은 책을 내고도 여전히 꾸준히 글을 쓰는 그를 보며 “그래, 히가시노 게이고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지” 결심해 본다.
이번 달에는 북클럽에서 호기롭게 무려 26권의 책을 담았고, 그중 3권의 책을 읽었다. 남은 책들은 어떻게 하지? 다음 달에는 또 몇 권의 책을 담고 또 읽을까. 남은 책들은 그래, 죽기 전엔 다 읽겠지.
*무제한 전자책 구독 서비스 YES24 북클럽에서 MD가 읽은 책, 또는 읽지 않았지만 언젠가 죽기 전엔 읽을 책들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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