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탄생] 왜 하필 이 제목이죠? (15)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이제, 내려가자.'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작고 소중한 다정들이 보였다. '다정소감'은 다정다감을 비튼 말이다. 조금은 유난이었으나, 그래서 우리를 지켜주었던 다정들에 대한 소감이다. 많은 분들이 이 다정한 소감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2021.11.02)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세상에는 길고 인상적이며 따듯하고 서정적인 제목이 참 많다. 작가와 편집자 모두 이번에는 그런 제목을 한번 지어보자 의기투합했다. 키워드는 당연히 다정함이었다. 다정함은 유난하고 다정함은 연대이고, 다정함은 우정일진대…… 그것들을 다 묶으려니 기나긴 문장형 후보 제목이 자꾸만 산으로 갔다. 하염없이 길어지고 고백하고 토로하고 질문하고 염원하는 문장의 암벽을 타고 올라 산의 정상에 선 뒤, 작가와 편집자는 눈이 마주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제, 내려가자.’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작고 소중한 다정들이 보였다. ‘다정소감’은 다정다감을 비튼 말이다. 조금은 유난이었으나, 그래서 우리를 지켜주었던 다정들에 대한 소감이다. 많은 분들이 이 다정한 소감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서효인(안온북스)
김지양, 이은빈 지음 | 북센스
이 책의 가제는 ‘먹고 살아요’였다. 두 저자가 보낸 모든 순간들은 음식과 함께였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목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작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은 맛있는 음식 앞에서 묘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는 사실. 이 죄책감을 만든 사회에 반기를 들며 먹는 행위에 즐겁고 행복하라는 두 저자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두 저자가 여성들에게 고한 ‘죄책감 없이 먹고, 먹으면서 행복하라’는 글을 읽는 순간 먹는 것에 진심인 이 책의 편집자는 자신의 간절함을 제목에 담기로 결심했다.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라고. 조윤정(북센스)
이현호 지음 | 시간의흐름
내가 누구보다도 빠삭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자기가 잘 아는 것만을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질문의 답을 오래 고민했다. 딱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내 마음과 내 방. 무엇을 쓰든 마음이 깃들지 않은 글은 없으니 ‘방’에 대해서 쓰자고 결심했다. 내 방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세계 제일의 전문가니까. 나보다 내 방에 오래 머문 사람은 없으니까. 이렇게 마음을 굳히고 돌아보니 나는 정말 ‘방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방밖에 없는 사람’은 당연히 ‘방 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저 한 칸의 띄어쓰기 속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들어 있다.
이현호(작가)
이두형 지음 | 아몬드
첫 책을 낸 뒤 저자에게 전화가 왔다. 북 토크를 하는데 독자 한 분이 “자존감이 낮아서 불행하다”며 울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떤 책에서 ‘자기를 그저 사랑하는 것이 자존감’이라 읽었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이런 나도 괜찮다’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럴수록 거부감만 들고 스스로가 미워졌다. 저자는 화가 났고, (아마도 수많은) 그를 위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제목을 지으려고 원고를 읽으며 단어에 집중하다가 어떤 문장에 눈길이 닿았다. “자존감은 때로는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버거울 때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문장을 읽고 퇴근하는 길, 차 안에서 BTS의 ‘매직샵’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거울 앞에서 어쩌면 그는 (그리고 수많은 우리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은정(아몬드)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예전 팀장님 왈 “제목은 책 안에 있느니라”라고 하셨고, 나는 편집자 생활 내내 그 말을 명심하며 살았다. 그리고 드디어 꼭 좋은 제목을 지어야 하는 때가 왔으니, 내 인생에서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편집할 다시 없을 기회가 온 것인데……. 내 마음에도 들고 작가님 마음에도 드는 그런 제목을 생각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두더지 세 마리가 내 머리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나는 뿅 망치도 없는데, 제길. 하지만 제목은 책 안에 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고, 좋은 제목이다 싶으면 팀원들에게 슬쩍 물어보고, 반응이 별로다 싶으면 제외! 작가님에게 슬쩍 물어보고 반응이 별로다 싶으면 제외!를 반복했다. ‘스피어’를 떠나 ‘숨그림자’를 떠나 ‘사랑과 우주의 일’을 떠나 ‘기분의 입자들’을 떠나, 그렇게 수많은 제목안들을 떠나온 끝에 나는 ‘방금 떠나온 세계’에 닿을 수 있었다. ‘방금 떠나온 세계’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떠나는 인물들이 많은 이번 소설집과 딱 어울린다고, 무척 마음에 든다고, 작가님이 좋아해주던 순간, 나는 콤부차를 처음 마셨을 때의 그 희열과 비슷한 제목의 맛을 느꼈다는 얘기. 김준섭(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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