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짧은 청춘, 당연하지 않은 오늘 : 세븐틴의 성장과 ‘Rock with you’
세븐틴 미니앨범 9집 <Attacca>
당연하지 않은 시간 속 너와 내가 함께한 성장이 가까스로 하나의 점에서 만난다.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노래에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뭉클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2021.10.27)
케이팝에서 ‘성장’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이는 단지 키가 자라고 골격이 갖춰지는 몸의 생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때는 그것이 아이돌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접근 방식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발견한 좋아하는 사람의 몸과 실력이 동시에 성장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기쁨은, 평균적으로 10대 늦어도 20대 초반에는 데뷔해야만 하는 아이돌 생태계에서만 한정적으로 일어나고 그래서 얻어갈 수 있는 특수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한때의 아이돌은 어딘가 서툰 것도 큰 매력으로 여겨졌다. 아니, 오히려 서툴고 미숙할수록 지켜보고 응원하는 이가 늘어나기도 했다. 물론, 전부 지난 이야기다.
다만 짧지 않은 시간 구석구석 떠돌던 이력이 있으니 잔재가 남을 수밖에 없다. 아이돌의 각종 ‘성장’이 케이팝에 깊게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된 것 역시 이 거대한 흐름이 만든 서사다. 여전히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아이돌은 팬들에게 물리적 성장이라는 특별한 체험과 그로 인한 희열을 여전히 선물하지만, 그건 이제 그런 환경이 갖춰져 있기에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감정에 가깝다. 지금 케이팝 아이돌의 ‘성장’은 굳어져 버린 구시대적인 ‘성장’의 기초를 바탕으로 그룹만의 혹은 멤버만의 설정과 시간을 담아 자신들만의 성장사를 써 내려 가는데 집중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작은 규모의 소속사에서 시작해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그룹,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막내로 데뷔했지만 10년 뒤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롤 모델로 삼는 멋진 커리어를 쌓아 올린 솔로 가수, 케이팝을 동경해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 혈혈단신 찾아와 끝끝내 데뷔를 이뤄낸 완성형 메인 댄서. 그리고 짧은 청춘, 당연하지 않은 오늘을 노래하는 그룹 세븐틴이 있다.
당연하지만 세븐틴도 ‘성장’ 아래 자유로울 수 없는 그룹이다. ‘세븐틴 TV’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아이돌 연습생의 생생한 일상을, 그것도 생방송으로 전달한 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꽤나 파격적인 기획이었다. 가장 가열차게 성장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이들이 데뷔 이후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D.I.Y.’였다. 음악과 노래, 랩과 춤 모두를 자체적으로 해내는 그룹이라는 세븐틴의 주요 정체성은, 그 자체로 이들의 실력을 증명함과 동시에 외적 성장 외에도 그룹 단위의 다양한 성장을 맛볼 수 있는 그룹임을 강조하는 장치였다. 그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기에, 팬들은 이들이 세상과 맞닿은 곳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서 성장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곡과 안무의 완성도, 새롭게 도전한 음악 장르, 달라진 동선, 무대 위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멤버들의 조합, 노랫말에 담긴 깊이. 음악과 무대만으로도 이렇게 살펴볼 성장이 많으니, 이외의 것들이 보너스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커리어도 그에 맞춰 성실하게 성장해 갔다. 앨범은 발매 첫 주 판매량을 지속해서 늘려가며 5연속 밀리언셀러 기록을 낳았고, 컴백 목표 역시 ‘빌보드 200 1위’로 바뀌었다.
‘Rock with you’는 그런 이들이 만들어낸 꾸준한 성장 위에 탄생한 자연스러운 노래다. 강렬한 적도, 비장한 적도 있었지만, 세븐틴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누가 뭐래도 힘차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청춘의 이미지다. ‘청량’이라 쉽게 표현하기에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세븐틴만의 폭발하는 정기는, 굳이 비교하자면 하룻밤 사이 무성하게 새잎을 올리는 초여름 산의 풍성함이나 일 년에 10cm도 넘게 키가 자라는 사춘기 아이들의 놀라운 기운을 닮았다. 지금도 그렇게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들이 사랑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 만든 앨범 가운데 ‘Rock with you’는 ‘지금 이 노래가 내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거친 성장 속에 쓴 글씨는 삐뚤빼뚤하다. 언제나처럼 달리며 외치는 소리는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멀어져 버린다. 이 밤은 짧고, 오늘은 당연하지 않다. 그 당연하지 않은 시간 속 너와 내가 함께한 성장이 가까스로 하나의 점에서 만난다.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노래에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뭉클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추천기사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