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 이 세상 무서움이 아니다

나홍진 감독 제작 신작 공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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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밝힐 수 있겠다.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는 극의 마지막 순간, <랑종>은 더 무서워진다. (2021.07.08)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일광의 전사(前史)를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곡성>과는 최대한 차별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전혀 새롭게 접근하면 어떨까? 그래서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연락했다.” 나홍진 감독이 설명한바, <랑종>의 출발은 <곡성>(2016)의 캐릭터 ‘일광’이었다. 황정민이 연기한 일광은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마을에서 미스터리한 외지인이 출현하며 이상 증세를 보이는 소녀를 위해 굿판을 벌이는 무속인이었다. 

영화의 제목 ‘랑종’은 태국 말로 ‘무당’을 의미한다. 극 중 님(싸와니 우툼마)은 ‘바얀’이라고 불리는 조상신을 모시고 있다. 님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출신이다. 원래는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에게 신병이 왔다. 이를 거부하면서 동생 님이 무당이 되었다. 그 때문에 노이는 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자신과 비교해 다른 삶을 사는 동생이 불편하다. 

노이의 집에는 유독 죽는 사람이 잦다. 남매를 키우는데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죽었다. 조카의 죽음을 전해 듣기만 했던 님은 형부의 장례식에 참석해 오랜만에 노이와 만난다. 언니와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하나 남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는가 하면 자기 방의 옷장에는 이상한 부적을 숨겨두었다. 

밍은 무당 같은 거 가짜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굴지만, 엄마 노이는 자신에게 내렸던 신병 증세와 비슷한 걸 알고는 불안하다. 노이는 님에게 밍의 신내림을 막아달라고 부탁하고 님은 나름 밍을 지켜보던 중 보통의 신내림과 다르다는 걸 알고는 심각해진다. 밍의 이상 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노이는 님을 제쳐둔 채 아무 무당이나 찾아 밍의 의식을 부탁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밍은 주변에 위협적인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쏟아붓는다. 

반종 피산다나쿤은 공포물 연출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감독이다. <셔터>(2005)로 데뷔, <피막>(2014)으로 태국 최초 천만 관객 영화를 기록하는 등 호러물을 주로 만들어왔다. 숲이 우거진 자연 속을 깊은 밤에 혼자 헤매는 듯한 분위기를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연출이 압권이다. 나홍진 또한 <랑종> 원안을 쓰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울창한 숲, 포장되지 않은 도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면서 반종과 협업한 이유를 설명했다. 

반종과 나홍진의 우선적인 목표는 ‘정말 무섭고 제대로 된 공포 영화’이었다. 밍의 이상 증세에 맞춰 그의 몸 안에 깃든 나쁜 영혼들을 퇴치하려는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의 특성상 리얼함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랑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가져와 극 중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밍에게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사실인 양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새로운 기법이나 구조는 아니다. <랑종>은 한 줄 요약하면, ‘<엑소시스트>(1973)를 <블레어 윗치>(1999)처럼 찍은 영화’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REC]> 시리즈 등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언급한 작품들이 사실적인 묘사로 공포의 오락적인 면을 부각한다면 <랑종>은 이에 더해 무당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 주변에 귀신은 존재하는가, 왜 사람들은 무속 신앙에 빠져드는가 등의 질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영화 <랑종> 공식 포스터

<곡성> 작업이 끝난 후에도 일광의 배경을 확장하고 싶었던 나홍진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주변의 악, 그러니까 나쁜 일들은 설명할 수 있기도, 그래서 해결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힘들고 그 결과, 미궁에 빠져 고통의 블랙홀에 빠지기도 한다. 이를 감당하려고 어떤 이들은 종교를 찾거나 신앙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런데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더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랑종>은 그처럼 끝을 보는 영화다. 밍에게 빙의된 온갖 악의 영혼들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밍의 가족은 물론 극 중 무속인들이 생명을 걸고 모든 걸 총동원한다. 반종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태국 북동부 이산의 지역 곳곳을 다니며 30여 명의 무당을 만나 <랑종>의 세계를 완성했다. 극 중 이산의 시골 사람들은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 혼이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근데 이 혼에 악이 씌웠다. 

반종은 그의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가진 신앙과 믿음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다.  밍을 구하겠다고 님은 무속을, 노이는 하느님을 찾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는 것은 아니다. 더 악화하는 상황 속에서 <랑종>이 제기하는 질문만이 의심의 형태로 더욱 뚜렷해진다. 반종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영화 안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는 밝힐 수 있겠다.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는 극의 마지막 순간, <랑종>은 더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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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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