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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7월 우수상 - 내 머리 인생의 대전환점

내 인생의 큰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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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번엔 또 어느 미용실을 찾아야할 것인가. 거의 십년째 고수해온 ‘투블럭컷’. 옆머리와 뒷머리가 짧은 게 편하니까. (2021.07.05)

언스플래쉬

하, 이번엔 또 어느 미용실을 찾아야 할 것인가. 거의 십 년째 고수해온 ‘투블럭컷’. 옆머리와 뒷머리가 짧은 게 편하니까. 무난하지만 나름 멋의 지푸라기도 잡고 있다는 안도감이 드니까. 구레나룻이 살아남으니까. 그리하여 “투블럭이요.” 말하며 미용실을 찾지만 막상 결과물을 받아들면, 그저 그랬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말로 이거다 싶은 머리, 그 머리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평생!

그저 그런 정도면 뭐 된 거지, 하면서 받아들인 반복된 실패. 그래서 달마다, 또 다른 곳으로, 열 번은 가야 받을 수 있는 무료 염색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인생은, 특히 머리 인생은 한없이 밍밍한 대단히 하찮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5월의 오후 5시. 덥수룩한 머리를 보며, 저번에 마음에 안 들었던 그 미용실을 향해 터벅터벅, 맛없는 사료를 향해 가는 허무주의에 빠진 닭처럼 걸어가던 나는 문득 이상한 예감에 휩싸였다. 나의 두발이 다른 말을 전하고 있었다. 사료가 아니야, 오늘은 풀이야. 그 문제의 미용실로 가다 갑자기 동네 이발소 앞에 멈춰 선 것이다. 20년을 넘게 살았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이발소.

슬쩍 가게 안을 살피니, 주인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이발소라니! 하며 주저 없이 디뎠던 발을 도로 거두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딱 맞는 기분이 들었다. 잠자리를 가진 챈들러와 모니카처럼, ‘Feel right!’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푸득거리는 사람 소리에 이발소 어른이 등장하셨다. 일흔, 아니 여든? 혈색이 좋으시다. 하얀 옷을 입은 그가 부드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나이 지긋한 분이 쓰는 ‘요’는 언제 들어도 멋있다. 그래, 이 분이야. “투블,” “어? 뭐라고?” 평소의 나였다면, 분명히 이쯤에서 판을 깨고 나왔겠지. 그러나 그날은 모든 예감이 정해진 결말을 향해 한없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 예감에는 신선한 풀냄새 같은 것이 났고, 나는 어쩐지 이 상황이 즐겁기만 했다. 놀라운 일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단 사실! 아까의 인자함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갑작스런 외래어에 곧바로 경계심을 내비치던 어르신께서도 “선생님, 지금 이 머리로 깎아주시겠어요.” 라는 나의 신들린 발언에,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한 번 해보겠다, 라며 가위를 드신 것이다.

“하, 이거 사실 쉬운 거지. 흠, 옆머리를 이렇게 올렸다니, 이건 좀 심한데.” 선생님께서는 머리 이곳저곳을 살피시더니 곧바로 투블, 뭐시기에 대한 용어정리부터 시작하셨다.

“이게 원래는 삼식이 머리라는 건데,” 덕분에 나는 살아있는 위키백과님으로부터 삼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관해서 듣게 되었다. “이 건물이 48년도에 있었던 건데,” 하, 나의 머리 인생은 정말로 한참이나 잘못되었던 것이다. 대체 어느 미용실에서 ‘1948년’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수석 만지듯 머리를 만지시며, 그래도 손님이 두상이 이뻐서 참 좋다, 덕담을 하시다가 이야기는 직원이 10명이었던 시절로 직행, 그러나 퇴폐업소는 아니었다는 의심쩍은 변명에서 갑자기 손님 아직 결혼은 안 했지요, 내가 중신을 잘 서는데로 시작한 수십 년전 직업 군인을 중매한 이야기로-

혼을 빼놓는 이야기 전개에 발맞추어 어느덧 나의 투블, 아니, 삼식이 머리도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면도날이, 뒷머리를 성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딱 삼천 원 짜리일 스킨과 로션을 정성스레 목덜미에 바르시며, 거울을 보라 하셨다.

아, 선생님의 70년 혹은 80년이 거기 있었다. 딱 좋을 만큼 올라간 옆머리. 곱슬한 머리를 감안해서 부드럽게 정리한 윗머리. 마음 깊은 곳에서,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그 얇고 날카로운 지점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마음에 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만나고 싶던 머리다!

선생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유쾌함이 온몸을 휘감아 구름 타듯 집으로 와,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 나는 크게 웃고야 말았다.

구레나룻의 반이 이건 용납 못하지, 하며 칼같이 잘려있었던 것이다. 대체 언제 자르셨던 걸까. 그 고집에 반하여 몇 번이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한두 개만 찍혀있던 미용실 쿠폰을 앞으로 쓸 일이 없을 거란 걸 깨달으며, 내 인생의 작은 부분 하나가 영원히 달라진 걸 느끼며.


이우화 정말로 그 이발소 앞에서 발걸음이 딱 멈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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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우화(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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