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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기에 더욱 아름다운 : 꽃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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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시들어버리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유한함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2021.06.11)

illust by 배현선, 자그마치북스 제공

오래전 나는 꽃다발이란 오직 ‘특별한 날’에만 주고받는 것이라 여겼다. 생일, 입학식과 졸업식, 기념일과 같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몇 없는 그런 날에만 꽃집을 찾았다. 그마저도 때로는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꽃은 선물 목록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내 눈에도 분명 예쁘고 아름답긴 했지만 어쩐지 선뜻 몇 만 원을 지불하기에는 비싸다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그래서 가끔씩 꽃을 선물 받을 때면 화병의 물을 매일 갈아주며 가능한 꽃들이 오래도록 싱그러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지중지하며 신경을 썼다. 그래봤자 길어야 일주일이었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꽃은 특히 유한한 존재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도 사시사철 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꽃송이를 보여주는 ‘때’가 있다. 그 ‘때’가 오면 어느 순간 피어나고, 또 어느 순간 지고 만다. 특히 봄이 되면 온 풍경이 꽃으로 물들고 알록달록 다양한 색채와 모양과 향기에 눈과 코가 절로 즐거워진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매년 4월이 가까워지면 소담한 목련은 수줍은 듯 꽃봉오리를 조금씩 펼치고, 여기저기 팝콘을 닮은 옅은 분홍빛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여기저기 스피커에서는 벚꽃, 사랑, 봄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이 흘러나오고 따뜻한 햇살과 함께 어쩐지 기분도 몽글몽글 해진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벚꽃 아래를 거닐며 꽃구경을 즐기곤 한다. 꽃이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봄비가 내리면, 시간이 조금 흐르면 벚꽃은 이내 공중에 흩날리며 잎을 모두 떨군다.

금세 시들어버리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유한함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한시적인 아름다움, 영원할 수 없기에 더욱더 매혹적이고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둥글고 부드러운 모양새의 튤립, 겹겹이 둘러싼 꽃잎이 우아한 라넌큘러스, 화려한 존재감의 거베라, 앙증맞고 청초한 느낌의 델피늄, 가장 익숙한 만큼 종류도 색상도 다양한 장미꽃까지, 꽃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색과 향에 취해버리고 만다. 어쩐지 눈앞의 풍경에 압도당하고 만다. 꽃들은 잘린 줄기로 힘껏 물을 끌어올려 마시며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을 뿜어낸다. 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의 절정에 있는 듯하다. 꽃들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둘러본다.

illust by 배현선, 자그마치북스 제공 

꽃을 선물할 상대방을 떠올리며 그에 맞는 꽃을 신중하게 고른다. 꽃을 우선 한두 종류 고르고, 나머지는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질만한 종류로 선택한다. 도저히 못 고르겠다 싶으면 플로리스트 분께 추천을 받아 꽃다발을 전적으로 맡기기도 한다. 어떨 때엔 꽃말을 떠올리며 그 내용에 의미를 두기도 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날 잊지 마세요’, ‘다시 만나요’,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요’. 꽃에 담긴 수많은 메시지로 마음을 대신한다.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 지을 상대방을 생각하며 설렘을 느낀다. 그것으로 이미 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꽃다발은 화병에 담겨 상대방의 기분을 즐겁게 해줄 것이고, 혹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잘 마른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며칠’이 아닌 ‘며칠씩이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꽃을 사는 것을 아까워하던 오래전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변화를 느낀다.

이제는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스스로를 위해 꽃을 사러 간다. 꽃집에 가서 몇 송이의 꽃만 골라 크라프트 종이에 둘둘 감싼 채 집으로 가져온다. 입구가 좁고 밑은 둥근 호리병 모양의 투명한 유리 화병에 깨끗한 물을 담고 꽃을 보기 좋게 잘 꽂아 넣는다. 고작 네다섯 송이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집안은 생기가 돌고 기분은 한층 달뜨게 된다. 나자신을 위한 꽃 선물도 때로는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작은 사치를 부림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나를 위한 몇 송이의 꽃들은 분명 기쁨이 되어줄 것이다.



*배현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좋아합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휴가』, 『우엉이와 오니기리의 말랑한 하루』 저자

인스타그램 @baehyunseon @3monthsshop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배현선 저
자그마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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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배현선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배현선> 저11,700원(10% + 5%)

일상 속 조그만 사치를 누릴 수 있어 삶은 또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무언가를 소비하며 얻는 작고 빛나는 전환점들’ 하루의 끝에서 돌이켜보면 오늘도 많은 것들을 소비하며 보냈구나 싶다. 필요해서 산 크고 작은 물건들, 맛있는 식사를 위한 재료,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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