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과 신파로 시대를 역행하다, 정차식의 야간주행

정차식 <야간주행>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정차식은 청승과 신파로 시대를 역행한다. 빈틈없는 경쟁 시대에 누가 불면의 토로를 받아줄까 싶다가도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소리의 문학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2021.05.12)


불면에 시달리는 남자. 모두가 잠든 밤이 그에겐 유독 길어 어딘가로 떠나야만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밤의 허망함과 방랑자의 고독이 <야간주행>을 관류한다. 음울한 록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 레이니썬을 거친 정차식은 솔로 명의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가사와 소리 체계로 주목받았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주류에서 비껴난 외길을 걷지만 발자국은 선명하다.

이 외로운 뮤지션은 디지털 음원을 기본으로 하는 최신 가요의 문법에서 벗어나 1960~1980년대의 대중음악을 추적해 생경한 소리의 조합을 감행한다. '빛나네'는 영국 밴드 수퍼트램프의 'The logical song'처럼 월리처 피아노 풍으로 곡을 주도하고 종소리 효과음과 리듬 기타를 쌓아가며 담백한 펑크(Funk) 곡을 건설한다. '두 번째 날'은 'I'm your man'과 유사한 질감의 신시사이저로 레너드 코헨의 고독을 공유한 반면 정차식은 자신에게 상처를 줄 사랑을 회피한다.

침잠하는 내면의 1집 <황망한 사내>와 꿈틀대는 욕망을 유쾌하게 그린 2집 <격동하는 현재사>를 지나 다시금 차분해진 남자는 불면이 야기한 망상을 풀어낸다. 시와 닮은 노랫말은 서사보다는 서정, 직설보단 은유를 택하여 매끄러운 흐름을 포기하는 대신 구절 하나하나에 여운을 남긴다. 팔세토와 떨리는 음성에 읊조림까지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며 레이니썬 시절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음악인임을 증명한다.

정차식은 청승과 신파로 시대를 역행한다. 빈틈없는 경쟁 시대에 누가 불면의 토로를 받아줄까 싶다가도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소리의 문학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는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소리와 활자로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