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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잎들, 투명하고 서글픈 에세이
검은잎들 <책이여, 안녕!>
단지 노래할 뿐인, 너무도 투명해서 서글픈 에세이는 어떠한 욕심도 담지 않기에 단단하게 맺힐 순수의 결정이다. (2021.02.24)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 에서 따온 이름처럼 청춘의 침묵에서 피어오른 부산 출신의 밴드는 수다쟁이처럼 할 말이 많았지만, 절대 산만하지 않았다. 2016년 데뷔 미니앨범 <메신저> 이후 몇 개의 싱글만을 발표하며 가다듬은 지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멤버들이 군대를 다녀왔고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커지기를 거절하며 여전히 창작에 대한 절실한 욕구로 천진난만했다. 그렇게 검은잎들의 첫 번째 정규앨범 <책이여, 안녕!>이 발매됐다.
앨범은 1980년대 맨체스터 밴드의 발자취를 좇는다. 검은잎들 스스로가 ‘쟁글팝’ 이라 명칭한 것처럼 중심은 1982년 데뷔한 스미스의 기타리스트 조니 마(Johnny Marr)가 선보였던 청아하게 찰랑거리는 징글 쟁글한 기타 소리이다. 더 나아가 드럼과 베이스를 더해 성숙해진 악기의 운용과 프로듀싱에 참여해 직접 사운드를 다듬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베이시스트 김남윤의 손끝에서 입체감을 부여받은 수록곡들이 비슷한 기조로 진행되는 앨범 내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눈에 띄는 개성을 지닌다.
느린 박자와 관악 세션을 통해 몽환적인 ‘로맨스에게'로 시작되는 파도가 아련한 기타 아르페지오의 ‘캠프파이어’ 를 지나며 점차 기세를 키운다. 다만 고저를 타며 균형을 유지하는 곡의 구성력과 보컬의 감각으로 멀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까지 고조된 분위기를 1분 30초가 채 안 되는 어쿠스틱 넘버 ‘3:1-26’ 로 잔잔하게 환기하고, ‘파도소리만 들었어’ 로 이어가는 듯하더니 곧 격정적인 감정 묘사로 반전을 준다. 다시 한번 속도를 올리는 ‘수다쟁이’ 이후 중반부터 낮게 깔린 절규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 꽃을 주세요’ 까지 내면의 투영 아래 투박하게 짜인 언어의 서사가 순풍이 되어 청자의 원활한 항해를 돕는다.
검은잎들 자체가 도슨트이자 전시관의 주체이다. ‘ Britpop made in Busan’ 이란 그들의 표어처럼 과거를 재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메시지를 덧씌운다. 가운데엔 온전히 우리말로 이루어진 가사가 있다. ‘서툰 사람이라 미안해’ 라며 직설적인 안녕을 고하는 ‘책이여, 안녕!’ 부터 고민이 주는 소음의 거부를 시적으로 그린 ‘비라도 나리면’ 까지 서러운 정서에 기반한 고집스러운 선율의 반향 위로 절제된 멜로디가 표현하는 감성을 작은 의도 하나 없이 낯부끄러웠던 기억을 기록했던 일기장처럼 가감 없이 써 내려갈 뿐이다. 30년 전의 확고한 레퍼런스를 끌어왔지만 현재 세대에게도 충분하게 스며들 수 있는 이유이다. 흐릿한 향수가 성장의 한 지점을 되새김한다.
검은잎들은 오에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온 제목의 의미를 “소설의 작가는 죽지만 그가 쓴 책의 인물들은 영원히 산다.”라고 밝혔다. 이상향을 원하던 때묻지 않은 행보는 <책이여, 안녕!>을 가공했고, 모든 곡에 추억이란 생명력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세련 혹은 제시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견고하다. 단지 노래할 뿐인, 너무도 투명해서 서글픈 에세이는 어떠한 욕심도 담지 않기에 단단하게 맺힐 순수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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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