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늦게 전해 들었다. 캐리는 제주도 감귤밭에 살던 강아지다. 나는 캐리를 딱 두 번 봤는데, 첫 번째는 간신히 젖을 떼고 막 옆집에서 분양받아 왔을 때였다. 얼마나 작은지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어도 안정감 있게 들렸다. 간식을 줬더니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면서 말린 고구마를 먹어 치웠다. 어떻게 이렇게 작을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꼬리를 흔들 수 있을까 싶어 놀라웠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순박하던 얼굴은 어디 가고 코가 비쭉 나오고 날렵한 사냥견이 되어 있었다. 반가워서 달려들면 무릎 높이를 훌쩍 넘어 허리에 발이 닿았다. 개는 정말 빨리 크는구나, 탄성이 나왔다.
캐리는 사람이 먹다 남은 잔반과 사료를 섞어서 먹었다. 풀어서 기르다 옆집 농작물을 다 뜯어먹었다는 이유로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캐리의 주인에게 잔반을 먹이면 안 좋다고, 산책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식을 주면서 '앉아'를 훈련했다.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캐리는 알아듣고 무조건 달려드는 걸 멈춘 채 일단 앉았다. 다시 탄성을 질렀다.
캐리는 주말에 갔다고 했다. 뒤늦게 아픈 걸 보고 동물병원에 갔지만, 근처 동물병원은 모두 문을 닫은 날이었다. 나는 주인에게 왜 잔반을 줬느냐고, 왜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았냐고 질책하고 싶은 마음과, 펫로스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탓하면 안 된다는 마음과, 나는 왜 캐리를 알면서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탓하는 마음 사이에서 서성였다.
소식을 들은 후로 며칠 동안 계속 생각했다. 그때라도 예방접종을 해야 했을까? 나라도 산책을 시켰어야 하는데. 사료를 더 챙겨줄걸.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 봤으면 더 놀아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캐리가 행복했을까? 아마도 행복했겠지 개는 그런 동물이니까. 동물은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 못 하니까, 말이 통한다면 아프다고 얘기해달라고 반려인들은 공통으로 이야기한다. 멀리 있는 개도 떠나가면 이렇게 슬픈데, 같이 사는 개가 떠나면 그 빈자리는 얼마나 클까.
반려동물의 죽음은 대부분 우리가 잘못 보살피고 수의사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혹은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어서 발생한 게 아닙니다. 죽음은 실패, 재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삶이 모든 생명들이 결국 그러하듯 그저 끝을 맞이하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들, 우리의 반려동물 그리고 이 행성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지금 우리가 분명히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강조하는 건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의도예요. 죽음을 삶의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특성으로 인식할수록, 삶의 마지막을 잘 대비할 수 있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스스로를 잘 치유해나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중에서
SNS에서는 반가운 동물 계정이 늘어나고, 동네 주변에는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친구가 있다. 옆집에는 호두가 살고, 친구는 치즈를 기르며, 콩이라든지 감자라든지 각자 이름을 가진 동물들이다. 그도 나도 서로의 얼굴을 안다. 얼굴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만 써왔는데, 이제는 동물에게도 서로 다른 각자의 얼굴이 있다는 걸 안다. 알아서 슬프고 알아서 기쁘다.
지인이 키우던 동물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동물보다는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에 더 신경 쓰였다. 펫로스를 겪을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어떤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일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저 남의 고통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슬픈 소식을 들으면 반려했던 사람과 함께 슬픔의 조각을 나눠 갖는다. 호두와 치즈와 콩은 모두 좋은 친구들이다. 동물 이름에 곡식이나 음식 이름을 붙이면 오래 산다는 설이 있다는데, 이름을 부르면서 왜 그들이 음식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제는 안다.
별일 없이 살면서도 가끔 캐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다시 돌아온다. 오늘도 강아지가 태어나고 죽는데, 이제 나에게 그 사실은 캐리가 태어나고 죽는다는 뜻이다. 두 번 만난 강아지가 세상을 바꿔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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