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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전지구적 점령을 위한 케이팝 전쟁터
블랙핑크 <The Album>
< The Album >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우리는 케이팝이라는 변방 세력이 전지구적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펼치는 열띤 전투를 포착할 수 있다. (2020.10.27)
새로운 신화를 이룩하려는 블랙핑크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확고하다. 전신 그룹 투애니원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일차원적 시각을 넘어, 신구의 세대 교차, 팝 독재의 종식까지 과감히 선포하며 야망을 드러낸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탄환이 오가는 현장, < The Album >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우리는 케이팝이라는 변방 세력이 전지구적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펼치는 열띤 전투를 포착할 수 있다.
데뷔 이후 첫 정규작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출사표인 만큼 단 한 장으로 독자적 스타일을 각인하겠다는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점이 되는 작법은 과거 커리어를 잘게 분해한 뒤, 그룹만의 차별적인 사운드 지점을 골라 재조립하는 공정이다. 'Kill this love'의 뒤뚱거리는 텍스처 증폭은 'How you like that'의 몫으로, '뚜두뚜두'의 파괴적 에너지는 'Pretty savage'의 직접적인 오마주로 재현되며 작중 잠깐 등장하는 동양풍 솔로 파트는 'Crazy over you'에 이르러 메인 테마 단계로 격상하기도 한다.
또한 두아 리파와 레이디 가가와의 협업으로 정찰을 마친 블랙핑크는 순식간에 화력을 퍼부어 서구 시장이라는 목표물을 점사하기 시작한다. YG 특유의 향신료를 제거하기 위한 토미 브라운(Tommy Brown) 등의 해외 프로듀서진 대거 투입, 로제와 리사의 이국적인 음색을 돋보인 연출, 그리고 높아진 영어 가사의 비중이 그 예시다. 이러한 로컬라이징 전략은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가 참여한 'Ice cream', 그리고 카디 비(Cardi B)가 참여한 'Bet you wanna'의 캐치한 멜로디 라인과 평탄한 팝 문법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과감히 행해진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균형은 우수하다. 각 지향점을 다르게 둔 여덟 트랙은 나란히 팔방으로 분사되며 그룹의 과거 발자취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행보를 전부 요약한다. 서너 가지 효과음이 분주하게 오가던 기존 사운드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게워내고, <The Album>만의 전담 작법이 여백을 채우며 은은한 새로움을 주조하는 데 집중한다. 여러 양상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뭉쳐, 결과적으로 의도에 상응하는 하나의 '완성'되고 '차별'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다만 취지와는 별개로, 개개 트랙이 2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비집고 차지할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Ice cream'에서의 셀레나 고메즈는 포지션이 겹치는 탓에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몸집을 부풀리고 한껏 변형을 거친 'How you like that'의 사운드는 일견 부담스레 다가온다. 'Crazy over you'의 신파적인 공격 지점도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축이 되는 단일 요소보다 자잘한 킬 포인트를 여러 겹 중첩하며 중독성을 각인하려는 구조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비주얼 측면에 비하면 다소 가벼운 선택으로 보인다.
결국 핵심은 블랙과 핑크의 유연한 농도 조절이다. 피아노 선율로 '아니길'의 감성 노선을 가져와 현대적 사운드를 담백하게 결합한 'You never know'의 비율이 모범적일 것이다. 전형적인 고조와 드롭이 운용되는 방식이라도 'Don't know what to do' 프리 코러스의 물방울 신시사이저 효과와 아이코나 팝(Icona Pop)이 연상되는 합창을 조합한 'Lovesick girls'의 만듦새는 과거 작품과 비교해 훨씬 직관적이다. 특히 2010년대 초 틴 팝의 고양감을 되살리는 투박한 정공법은 전술한 트랙이 미처 채우지 못한 '임팩트'를 한 곡에 압축해 눌러 담는다.
진부한 노랫말과 과도기적인 기획의 한계점은 분명 4년간의 기다림을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The Album>은 '케이'의 기시감에 '팝'의 생경함을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하이브리드적 면모를 수행하고, 동시에 그룹만의 뚜렷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달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근거가 퀄리티보다 기세에 몰려 있다는 점이 조금 불안 요소지만, 본작의 등장은 케이팝이 '수동적 태도'에서 차트를 흔드는 '주체적 면모'로 당당히 거듭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으니. 어쩌면 이 앨범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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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