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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이 칼럼] 한땀 한땀 수놓은 작은 아씨들
<월간 채널예스> 2020년 8월호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고 바로 좋은 것이 ‘쨘’ 하고 나오지는 않는다. 마음이 급하면 생각이 막히고 헛손질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20. 08. 05)
‘작은 아씨들’ 하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1995년 개봉작 <작은 아씨들>의 주연 배우들인 위노나 라이더(조), 커스틴 던스트(에이미), 크리스천 베일(로리), 클레어 데인즈(베스) 등 이름만 들어도 그에 관련된 영화들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내겐 추억의 영화이기에. 그 배우들의 지금 모습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그들의 풋풋했던 모습을 볼 수 있고, 작은 아씨들 원작에 묘사된 분위기랑 캐릭터를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새로운 캐릭터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덜 되었나보다.
조금 급하게 진행을 하게 된 책이라 기존에 나와 있는 판본을 다 찾아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영화 개봉 전에 출간이 되어야 해서 조급한 마음이 있던 터에 마침 출판사 측이 정리해서 보내 준 판본 이미지들이 정말 좋은 자료가 되었다. 초판부터 2019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나온 다양한 디자인을 보면서 처음 디자인 공부를 할 때의 설렘이 다가왔다. 이렇게 다양하고 예쁜 책들이 많다니!드라마와 뮤지컬 포스터, 팬메이드 디자인까지 최근 디자인일수록 미니멀하면서 자매들 이미지보다는 상징적인 요소와 타이포가 강조된 표지가 많았다. 그와 동시에 초판본 디자인을 되살려 고전으로써의 느낌을 강조한 표지 또한 여러 가지 버전이 나와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고 바로 좋은 것이 ‘쨘’ 하고 나오지는 않는다. 마음이 급하면 생각이 막히고 헛손질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처음에 떠오른 이미지는 ‘꽃’, ‘자매들’ 그리고 이것만은 피하고 싶은데, 고 생각한 ‘자수’ 콘셉트의 시안을 만들어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꽃’ 자체로 네 자매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꽃 이미지가 강조된 표지에 집중했다. 조는 이런 꽃이 어울릴까, 에이미는 작은 야생화 느낌 아닐까? 드디어 나는 꽃을 표지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혼자 즐거워하면서 이 꽃을 넣었다가 저 꽃을 넣었다가 러 차례 수정했다. 그 외에 양장 제본일 경우 조금 발랄하면서 고급스럽게 보일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러프하지만 네 자매의 옆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역시나 얼굴은 어려웠다. 눈, 코, 입을 그리지 않을 수 있다면... 원서 중에 자매들의 머리 스타일을 가지고 디자인한 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머리 스타일을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옷과 소품들로 구성된 표지들도 제법 있었는데, 아마 그 시대를 표현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담을 수 있고, 네 자매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물건들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조는 짧은 머리, 작가 지망생이었기에 펜, 가방.. 베스는 피아노, 에이미는 그림, 큰 언니 메그는 자수, 바느질 등의 상징적인 소품들이 있다. 그 소품들을 담기에 내 일러스트 실력이 부족할 듯해서 몇 가지 작업을 시도하다 포기하게 되었다.
자수 컨셉의 시안은 ‘어쨌든 이걸 선택하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해보자’ 하며 시안에 넣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고, ‘자수’ 콘셉트가 확정됐다. 자수를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 때문. 물론 실제 자수는 아니지만, 자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했고, 이미지 소스를 만들기 위한 수작업에 가까운 (마치 실제로 자수를 놓는 것과 같은) ‘공’이 들어가야 했다.
시안용으로 보여드릴 때는 좀 러프하게 비슷한 느낌으로 작업을 했었기에 이 디테일을 살리려면 나는 컴퓨터에 수를 놓아야겠구나... 생각하며 한땀 한땀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자수를 두셨기 때문에 실, 바늘이 다 있으며 엄청난 자수 작업과 함께 액자도 있었다. 마침 눈앞에 실제 작업물이 있던 터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참고하면서 작업을 했다. 이미지 소스를 찾는 것보다 조합하는 것이 더 어려웠는데, 좋은 소스들을 발견해도 표지에 넣었을 때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네 자매를 자수처럼 만들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기에 귀엽지만 결국 게임에 나오는 사람 4명 같은 이미지만을 사용했다. 그 외에 집, 꽃, 나무 등을 넣었고, 스티치 이미지를 조합하여 표지 둘레를 감싸는 형태로 레이아웃을 정리했다.
이제 남은 부분은 타이틀과 영문 서체. 서체는 아무래도 기존에 있는 DOS라는 서체가 가장 적합했는데, 이 서체로 한글을 쓰니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타이틀 만큼은 조합해서 자수 느낌으로 작업을 해야 했다.
만약 이미지와 타이틀 부분이 너무 구분된다면 자수 이미지는 너무 약한 느낌이 되어버릴 것이기에 Meg, Jo, Beth, Amy와 Little Women을 표지 중앙과 아래에 넣어 적절히 어우러지도록 배치하면서 포인트로 보라색 박을 찍게 되었다.
표지를 벗기면 사랑스러운 핑크빛 속표지가 나온다. 이 속표지는 겉표지에 사용한 스티치 느낌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배치했기에 오히려 작업이 수월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컬러 확인을 위한 인쇄 교정을 내기 위해 데이터를 정리해서 출력소에 넘기려고 하는데, 이 컴퓨터가 힘겨워하는 팬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한 시간이 지나도록 pdf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문제를 찾기 위해 표지에 사용된 이미지 중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지워보았다. 이 이미지 때문일까, 어떤 이미지 때문에 이토록 컴퓨터가 힘겨워하는 것일까. 이유를 찾느라 서너 시간을 보내고, 나는 식은땀이 났다. 오늘 꼭 교정지를 넘겨야 일정을 맞출 수 있을 텐데.
자수와 같은 그래픽 이미지가 차지하는 용량 때문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고, 컴퓨터를 힘들게 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표지 전체에 들어가는 자잘한 선들과 섬세한 부분들이 실제로 자수하듯 한땀 한땀 그려져 있는 까닭!
결국 각 부분을 다 분리해서 쪼개어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시키는 등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방법으로 표지 데이터를 다 분리했고, 속표지까지도 분리하여 문제없이 데이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잊을 수 없는 표지 작업이 된 『작은 아씨들』. 이런 문제들을 거쳐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책은 문제없이 잘 나와주었고, 핑크 속표지와 바이올렛 띠지, 에메랄드 면지로 마무리하며 내가 생각한 네 자매의 ‘사랑스러움’을 담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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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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