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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 슬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침대 밑 괴물
레드벨벳 아이린 & 슬기 <Monster>
완성도는 준수하나 기획의 바탕이 됐던 키워드들을 앨범에 담겠다면 타이틀만큼은 무던함을 넘어 더 파격적이어야 했다.(2020. 07. 22)
팬덤의 지지를 현실로 불러낸 아이린 슬기 유닛은 SM 루키즈 시절 커버한 「Be natural」의 고혹으로부터 침대 밑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불러낸다. 불길한 피아노와 무겁게 깔린 베이스가 조성한 불균형의 공간 위 짓궂은 속삭임 같은 보컬 샘플이 짙은 연기를 틔우고, ‘하나의 조명 왜 그림자는 둘이야’라 노래하는 두 뮤즈는 서로를 응시하며 오묘한 감정을 눈 앞에 꺼내 보인다. 광포한 워블 베이스로 중반부터 끝까지 균열과 뒤틀림을 의도하는 것 역시 제목에 걸맞은 마무리다.
다만 충분히 파격적인 요소들을 모아뒀음에도 「Monster」가 의도만큼의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의문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성임은 분명 하나 뒤집어보면 그만큼 각인될만한 요소가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이린과 슬기의 보컬은 안정적이나 슬기의 ‘이 광기가 싫지 않아’ 파트처럼 돌출된 쾌감을 많이 주지 못하고, 멜로디 샘플로 대체된 훅은 곡 후반 파괴적인 소리가 들어가기 전까진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브릿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소리들이 풍성한 코러스와 트랩 비트, 스트링 세션을 짜임새 있게 정돈했던 「Psycho」처럼 치밀하게 놓여있는 것도 아니다.
앨범 수록곡과 비교하면 「Monster」는 더욱 아이린 슬기를 대표하는 곡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Be natural」과 5년 전 「Automatic」을 이어가는 「Diamond」부터 그룹 시절보다 아이린과 슬기 두 멤버만을 위해 보다 짙게 가공된 1990년대 힙합 소울이라 상당히 만족스럽다. 효과적인 보컬 배치로 강약을 조절하며 가학적인 욕구를 짓궂게 노래하는 「Feel good」, 아리아나 그란데의 「The way」를 연상케 하는 피아노 연주 위 브라스 세션을 더해 달콤 쌉싸름한 보컬로 포장해낸 「Jelly」와 신비로운 알앤비 솔로 곡 「Uncover」 모두 이 조합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실패하기 어려운 기획일수록 불어나는 기대감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발매 전 콘셉트 포스터와 티저를 통해 유추했던 매혹의 이미지와 달리 앨범은 「Monster」의 충격을 선택했지만, 증강 현실과 단체 퍼포먼스로 구현해낸 괴물의 상을 제외하면 노래 자체만으로 유닛의 당위를 충분히 설명하진 못한다. 레드벨벳의 이름으로 나왔어도 크게 이질감이 없었을 터. 완성도는 준수하나 기획의 바탕이 됐던 키워드들을 앨범에 담겠다면 타이틀만큼은 무던함을 넘어 더 파격적이어야 했다. 시선은 7월 20일 후속 활동을 위해 베일에 감춰둔 「놀이」에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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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