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북클러버] 이다혜 “『빌러비드』,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전 읽기 모임 『빌러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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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으려면 어느 정도는 연습이나 각오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쏟아져 내리고, 그 누구의 이야기도 중심에 있지 않습니다. 그 시대 존재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다시 읽을 때 이해하기 편할 거라 생각합니다.(2020. 06. 29)


6월 15일,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이다혜 작가의 북클러버 모임이 열렸다. ‘고전소설 읽기’를 주제로 같이 읽은 책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였다. 토론을 위주로 모임을 꾸릴 예정이었으나, 감염예방을 위해 강연식으로 진행되었다.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로, 『가장 푸른 눈』에서부터 『술라』 『솔로몬의 노래』 등 다양한 작품에서 흑인의 역사와 이야기를 그리며 미국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다. 그중 『빌러비드』는 도망치다 붙잡힌 흑인 노예 여성이 대를 이어 노예가 되는 운명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 노예, 특히 여성 노예의 참혹한 역사를 재조명한다. 제목인 ‘빌러비드’는 ‘사랑받은 자’를 뜻하는 말이자, 핍박에 시달린 흑인 여성을 애도하는 뜻이 담겨 있다.



약자의 자기 목소리 찾기

『빌러비드』 를 읽자고 정했을 때와 오늘 이 시점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죠. 미국에서는 BLM(Black Lives Matter) 시위가 격해지고 있고, LA에서는 나무에 매달린 흑인 시체가 발견됐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를 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뉴스로 시작한 이야기는 미국의 인종 문제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다문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새로운 차별을 만드는 과정 안에 있다. 미국은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노예제가 있었던 나라였고, 차별을 이야기할 때 인종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토니 모리슨은 1931년생입니다. 50대 넘어 이 책을 발표하고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이후 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을 작가로 규정짓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고 이야기 해요. 또한 자신을 이야기할 때 항상 ‘흑인 여성 작가’라는 딱지가 붙는 걸 말합니다. 흑인, 여성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써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는데, 토니 모리슨은 이 질문에 대해 앙드레 지드에게 가서 왜 흑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지, 언제 흑인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질문이 소수자 내지는 약자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압박이 되는 거죠.”

이다혜 작가는 일례로 여성 작가나 감독에게도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 질문하는 경우가 남성 작가나 감독보다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기 위치 혹은 의견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그 말이 자기 작품세계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해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목소리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토니 모리슨은 작품을 쓸 때 계약을 하지 않고 썼다고 해요. 계약을 하면 작품 콘셉트와 마감, 분량 등을 처음에 정해야 하는데, 토니 모리슨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깝게 소설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흔히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하는 대중영화는 사람들이 빠른 시간 안에 줄거리에 몰입하는 장치를 심어둔다. 오프닝 타이틀만 봐도 관객은 누가 주인공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대강 알 수 있는데, 『빌러비드』는 반대로 이야기를 한참 따라가도 이해하기 힘든 방식의 서사를 보인다. 북클러버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소감을 물었을 때, 많은 사람이 줄거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빌러비드』는 화자가 한 명이 아닙니다.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일지라도 대부분 화자 몇 명이 순서대로 돌아가거나, 장에 화자 이름을 써서 구분하기 쉽게 하죠.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이게 누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시대를 건너 뛴 이야기, 강간이나 살해 등 강렬한 사건이 자주 나오다 보니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알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책을 쓰면서 오히려 노예제 당시 흑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료 조사를 덜 했다고 한다. 실제 상황을 많이 알면 알수록 창작할 수 있는 여지가 오히려 줄어들기도 하고, 노예제 아래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흑인의 글은 많은 부분 백인의 시선이 들어가 있거나, 자체적으로 윤색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인 폭력 아래 있었다는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더 쉽고 일목요연하게 쓸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요?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은 아마 고등학교 정규교육까지는 이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학교에서 중요하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어렸을 때는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울어요. 그러다 학교에 가서 점점 글을 배우고 나에게 불합리한 일이 생기면 사회 규칙에 따라 말하는 법을 배우죠.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를요. 하지만 『빌러비드』 세계 속 흑인은 어떠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글자도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없죠.”

책에서는 전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피해를 이야기할 때 어떻게 발화행위가 이루어지는가를 다룬다. 자기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국가에 호소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그들은 복종하고 참는 법을 배웠다. 아이 여덟 명을 낳고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다 다른 상황,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 노예로 팔려 가는 상황에서도 참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도 이 피해는 구제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약자가 약자와 연대하는 일도 불가능해집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강간을 당할 것 같은 상황에서, 문을 두들기면서 들어오려고 하는데 내가 거기서 문을 열어줄 것인 것인가 말 것인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입을 피해는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내가 낳은 아이는 매번 아빠가 다른 아이였는데, 내 며느리는 아들의 아이만 낳았다는 사실조차 떨떠름하게 보게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왜 서로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다같이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심지어 자유로워진 다음에도 서로를 돕거나 믿는 대신에 서로 공격하거나 세를 가르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거죠. 그게 결국 노예제인 것입니다.”



책 속 문장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세서는 이십팔 일-달의 공전주기-동안 노예가 아닌 삶을 살았다. 어린 딸아이의 맑고 순수한 침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진 순간부터 끈끈한 피 속으로 흘러들어가기까지의 이십팔 일이었다. (중략) 그리고 모두가 새벽에 눈을 떠 그날 뭘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기분이 어떤지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세서는 핼리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뎠다. 124번지와 공터에서, 세서도 다른 이들과 더불어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을 주장하게 되었다. 자유를 찾는 일과 자유를 찾은 자신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은 별개였다.

- 161쪽

“세서가 사는 124번지는 유령 들린 집이라는 설정이 있죠. 토니 모리슨은 유령이나 구술사 방식을 활용해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피해를 인지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흑인 노예들은 자유가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자유를 얻은 뒤에야 알게 됩니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자유로워진 뒤에 학습했고, 자유로워진 뒤에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문에서 흑인 얼굴을 보는 순간, 날카로운 두려움이 심실 사이를 파고든다.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거나 거리의 폭도를 따돌렸다고 흑인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살해를 당했거나 사지가 잘렸거나 붙잡혔거나 불탔거나 감옥에 갔거나 채찍질을 당했거나 쫓겨났거나 짓밟혔거나 강간을 당했거나 사기를 당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들은 기삿거리가 될 가치가 없었으니까. 뭔가 특이한 일이어야만 했다. 백인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정말 색다른 일, 헉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잠깐 동안 혀를 쯧쯧 찰 만한 사건이어야 했다.

- 258쪽

“뉴스가 관심을 가지는 소재들이 있어요. 빈민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뉴스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중산층 단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굉장히 크게 다루죠. 뉴스를 만드는 사람과 주요 소비자층이 중산층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생기는 문제점은 항상 대서특필되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이 살해당할 때보다 여성이 살해한 뉴스가 더 잘 나오는 법이죠.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당하는 피해는 뉴스가 되지 않지만, 책 속에서 세서의 사건은 뉴스가 되었습니다. 선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리킹 강 강둑에 뗏목을 묶고 최대한 안전하게 단속을 하는데, 밑바닥에서 뭔가 붉은 게 눈에 띄었다. 손을 뻗으면서도 그는 붉은색 깃털이 뗏목 틈에 끼었나보다 생각했다. 잡아당겨 보니 아직도 머릿가죽이 고스란히 붙어 있는 젖은 곱슬머리에 묶인 빨간 리본이 손안에 있었다.

- 296쪽

『빌러비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색깔을 언급하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보통 문화적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은 강렬한 색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습니다. 강한 색은 강한 주장을 나타내는 것이고, 노예가 입는 옷 역시 색이 없습니다. 옷을 사서 취향에 맞게 입는다는 시도 자체가 없었죠. 책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삶의 의지가 생길 때, 또는 그걸 상징하는 표지로 색을 언급하게 됩니다.”

힘들게 문을 두드리고도 집에 들어가보지 못한 이후로, 스탬프 페이드는 세서를 보살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가 포기하자, 124번지는 제멋대로 방치되었다. (중략) 스템프 페이드가 들을 수는 있었지만 해독하지는 못한 그 집을 에워싼 목소리들에는 124번지 여자들의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 발화할 수 없고, 발화된 적도 없는 생각들이었다.

- 328쪽

“제목인 ‘빌러비드’의 엄마 입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빌러비드의 이야기가 됩니다. ‘빌러비드’는 결국 죽은 아이의 이야기이죠. 마지막에 사라지기 직전에야 잠깐 목소리를 갖게 되는 존재가 이 이야기를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으려면 어느 정도는 연습이나 각오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쏟아져 내리고, 그 누구의 이야기도 중심에 있지 않습니다. 그 시대 존재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다시 읽을 때 이해하기 편할 거라 생각합니다.” 



빌러비드 (10주년 특별판)
빌러비드 (10주년 특별판)
토니 모리슨 저 | 최인자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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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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