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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모두 함께 읽는 책] 엄마 아닌 엄마들
<월간 채널예스> 2020년 3월호 고정순의 『엄마 왜 안 와』, 키티 크라우더의 『메두사 엄마』
당신의 고단한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는 위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을 감싸 안는다. 그러나 가부장이 권하는 엄마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린 건 아닌가에 생각이 이르면 출구를 찾게 된다. (2020. 03. 04)
엄마는 원래부터 엄마인 것은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의 자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아직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눈은 맹렬하고 맑다. 그 눈을 보면 두려움 속에 몰입과 탈주를 오간다. 나는 엄마인가, 엄마가 아닌가, 엄마가 아니어야 하는가.
엄마를 다룬 그림책의 대표적인 유형은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윤여림 글. 안녕달 그림. 위즈덤하우스)라든가 『엄마와 나』(강경수 그림책. 그림책공작소),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 낮은산)과 같은 작품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되기를 준비하고 온 사람들처럼 아이에게 헌신하고 역할에 만족하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준다. 강요된 모성, 독박육아에 대한 비판은 책에 흐르는 고귀한 분위기를 흔들기 때문에 자제된다. 독립적 삶을 향한 엄마의 욕망은 끝까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당신의 고단한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는 위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을 감싸 안는다. 그러나 가부장이 권하는 엄마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린 건 아닌가에 생각이 이르면 출구를 찾게 된다.
고정순의 『엄마 왜 안 와』 (웅진주니어)에는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다스리고자 뛰고 달리는 엄마가 나온다. 참는 엄마가 아니라 참여하고 상상하는 엄마다. 작가는 머릿말에 “엄마가 늦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책 속의 엄마는 야근한다. 기다리는 아이에게 “자꾸만 토하는 코끼리를 만나서 속이 편해질 때까지 돌봐주느라 늦는다.”고 말한다. 사무실의 복사기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것은 추가 업무이고 속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은 오히려 엄마다. 집에 오려다 만났다는 “길 잃은 동물 친구들”은 해법도 없는 회의를 질질 끄는 갑의 권력이며 “잠 안 자고 울어대는 작은 새”는 줄줄이 쏟아지는 업무 콜이다. 이 책에서 왼쪽 면의 글은 불안을 헤쳐 나가는 씩씩한 엄마를, 오른쪽 면의 그림은 좌충우돌하는 엄마를 묘사하지만 전체적 톤은 듬직하고 포근하다. 다만 글 텍스트가 “네가 있으니까.”로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그 뒤는 말없이 그림으로만 전개되었더라면 여운이 더 진했을 것이다. 어디쯤 왔을까 기다리는 어린이 독자의 귀에는 엄마의 익숙한 다짐보다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다. 마지막 세 문장은 독자가 상상해낼 수 있다. 작가가 독자를 더 믿었으면 좋겠다.
키티 크라우더의 『메두사 엄마』 (논장)는 위의 작품들보다 무의식에 더 가까운, 발이 떨어지지 않는 뻑뻑한 농도의 서사다. 카레의 최고 단계쯤 된다. 표지에서부터 긴 머리카락을 깔고 앉은 엄마의 뒷모습과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빛이 대조적이다. 공수 교대 장면 같다. 생김새가 다 다른 면지의 해파리들은 아이를 키우며 수없이 직면하는 생소한 곤경, 아이 앞에서 뒤엉킨 채 풀어헤쳐지는 엄마의 자아를 암시하는 것 같다. “메두사는 투명한 몸에 꽃의 심장을 가졌다.”는 토베 얀손의 말을 서두에 인용한 이유는 뭘까. 엄마는 본래 꽃의 심장을 가진 독립된 사람이었다는 뜻일지 모른다. 해파리의 학명이기도 한 메두사는 치명적으로 강한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
작가는 메두사 엄마를 일컬어 “잘못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결국은 사랑했던 사람이다.”라고 표현한다. “길들일 수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문득 마주친 작은 존재에게 불안과 함께 압도되어 강했던 자신을 해체하는 경험이다. 메두사 엄마는 해파리가 바다 밑에서 보초를 서듯이 흔들림 속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거친 세계로부터 아이를 지키지만 아이는 엄마와 다른 곳을 보면서 자라난다. “엄마는 따라오지 말아요.”라는 이리제의 말은 칼날을 품은 선고다. 그 말을 듣고 메두사 엄마는 적의 목을 베는 대신에 자신의 다른 것을 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안도를 경험한다. 비로소 두 발로 땅을 디디게 된 쪽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아이는 일찌감치 혼자 설 수 있었다.
『메두사 엄마』 는 엄마인 사람과 엄마가 아닌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이제 혼자 서 보라고 말해야 하는 한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통해 일어서야 하는 또다른 나도 있기 때문이다. 처절한 과업이다. 그럼에도 너무 불안해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난류를 향해 헤엄치고 있다. 키티 크라우더의 이 메시지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엄마 왜 안 와고정순 글그림 | 웅진주니어
아이가 밤에 혼자 집에 있는 건 일상적인 일일 테지요. 엄마는 밖에서 일하는 내내 마음 한쪽으로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고, 아이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길다면 긴 시간을 혼자 지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겁니다. 이것이 맞벌이 부부에게 주어진 현실입니다.
메두사 엄마키티 크라우더 글/김영미 역 | 논장
어린이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다른 책과는 다르게 엄마의, 어른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작품’ 이상의 강렬한 매력을 지닌 키티 크라우더의 ‘읽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줍니다.
관련태그: 엄마 왜 안 와, 메두사 엄마, 고정순 작가, 키티 크라우더 작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거짓말하는 어른』을 썼고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인어를 믿나요』, 『홀라홀라 추추추』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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