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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뭐길래] 의식적으로 ‘소설이 아닌 책’을 읽어요 – 박서련 편

당신이 읽는 책이 궁금해요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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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추천에 의지하는 부분이 큰 듯합니다. SNS 상의 좋은 리뷰나 인터넷 서점 MD님들이 쓴 평도 넓은 범주의 추천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신뢰하는 주변의 독자나 저자들이 추천하는 책을 마음 놓고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2020.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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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두 번째 장편 『마르타의 일』 을 쓴 박서련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을 꾸려가고 있다. 신뢰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마음 놓고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의식적으로 "소설이 아닌 책"도 읽고 있다. 박서련 작가에게 <채널예스> ‘책이 뭐길래’ 서면 인터뷰를 요청하자, 박 작가는 비밀을 하나 알려줬다. “'다들 "박서련은 이 책을 이미 읽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몰래 읽기도 해요. 주로 인문학이나 고전소설 분야의 책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2020년이 시작된 요즘, 박서련 작가는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최근에 읽은 책들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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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을 읽었어요. 이 책에는 다양한 생애의 단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남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 생애사 구술 채록 작업을 주로 해온 사회학자가 그간 만나고 스치고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쓰면서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고, 독자의 가치판단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반복적으로 이런 삶이 있다, 이런 삶도 있다, 이런 장면들도 삶에는 있다... '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발견하는 것, 쓰는 것, 읽는 것 모두 사람의 일이어서. 감정을 완전히 소거한 채로는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말하는 책일 수도 있겠지요... 너무 이상한 말인가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치 남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처럼, '무슨 일이 쓰여 있는지는 또렷이 이해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기억에 남는 단편소설' 같은 밤이었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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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처럼'이라고 했지만) 손보미 작가의 『맨해튼의 반딧불이』 의 첫 장, '불행 수집가와 교환하는 방식'을 보고 한 말이라고 해도 믿을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장을 읽는 동안에는 각각의 짧은 에피소드들이 미묘하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첫 장의 첫 에피소드를 읽고, 두 번째 에피소드를 읽은 다음, 다시 처음부터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그런 방식으로 읽었습니다. (이런 식의 수열 공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껴 읽으려는 작심을 자꾸 무너뜨립니다. 허리 펴야지, 하고 잠깐 고개를 드니 벌써 절반 가까이 읽은 거죠. (초반 에피소드들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었는데도 말입니다!) 무척 예쁜 책이어서 멋진 카페로 들고 나가 보여주기 식 독서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들고 나가기 전에 1회독을 마치게 될 것 같습니다. 다 읽고 나면 "최애" 에피소드가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겠지요, 지금은 계속 바뀌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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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비 출판사에서 나온 『공화국 요리사』 도 읽고 있어요. 제가 강원도 출신이라고 하면 아, 감자! 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 고향은 쌀로 유명한 고장이라고 해도 감자, 감자, 감자. 저는 감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 구운 햇감자, 카레에 들어간 감자 정도나 먹지요. 그런데 이 책은 감자 요리책입니다. 프랑스 가정식으로 감자를 요리하는 방법이 실로 다양하게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최초 출간 당시 저자 대신 출판사의 이름으로 나온 책인 것 같습니다. 출판인은 이 책의 제목을 '감자 요리책'이나 그 비슷한 뉘앙스로 짓는 대신 '공화국 요리사'라고 했고, 책의 서두에서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에게" 경제적이고도 다채로운 감자 요리법을 소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약간의 비약을 감수하면 감자를 요리해 먹는 행위 자체가 공화국 시민의 일이며 감자야말로 공화국의 식재료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레시피는 대체로 짧고 간단해서 어느 정도는 집에 있는 재료와 도구를 사용해서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감자를 요리해 먹는 일을 상상해 보면, 그냥 요리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어떤 역사에 출석하고 있는 듯한 실감이 진하게 듭니다.

 

세 권의 책은 어떤 계기로 선택하셨나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을 만난 것은 서울 은평구에 소재한 니은서점에서의 일입니다. (<채널예스> 애독자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니은서점은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의 저자처럼 사회학자이면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낸 노명우 교수님이 직접 운영 중인 작은 서점입니다. 니은서점에서 판매중인 책들은 대부분 이미 노명우 선생님의 검증을 거친 책들이고, 샘플 도서 표지에 노명우 선생님의 짤막한 소개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제 기억으로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는 ‘기시 마사히코’ 서가로 추정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책 말고도 그의 다른 저서들이 함께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 서점에 이 저자의 책이 이렇게 많다면, 신뢰할 만한 저자라는 뜻이겠지. 그런 생각을 우선 했고, 다음으론 그 여러 책들 중 무얼 제일 먼저 읽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이 중에서 저자의 개성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을 만한 책이 뭘까를 생각해 고른 책이었습니다.

 

손보미 작가님의 『맨해튼의 반딧불이』 는 아주 예쁜 책입니다. 그 왜... 상허 이태준 선생님(?) (어떤 존칭으로 불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서 부득이 선생님... 하고 불러봅니다)께서 에세이를 통해 "서점에서 나는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맨해튼의 반딧불이』  같은 책을 보면 그 말씀이 단박에 이해가 됩니다. 이 책을 갖고 싶고, 이 책을 갖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은, 그런 책. 표지의 초록색 금박(?)으로 장식된 작고 반짝이는 부분이 어쩌다 빛을 머금으면 너무 예뻐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건 병일까요?
 
한편 원래는 『공화국 요리사』 가 아니라, 같은 출판사의 비슷한 기획으로 출간된 『좋은 음식에 관한 책』 을 읽을 계획이었습니다. 『공화국 요리사』 는 프랑스 혁명기 감자 요리를 다룬 책 『좋은 음식에 관한 책』 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14세기) 독일어 요리 교본"이라지요. 먼저 알게 된 것은 후자였지만 일종의 시리즈 같은 개념으로 같이 나온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권 다 구했는데, 둘 중 『공화국 요리사』 를 먼저 읽기 시작한 까닭은 역시 "프랑스 혁명기"라는 콘셉트에 마음이 끌려서였던 것 같습니다.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역시 추천에 의지하는 부분이 큰 듯합니다. SNS 상의 좋은 리뷰나 인터넷 서점 MD님들이 쓴 평도 넓은 범주의 추천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신뢰하는 주변의 독자나 저자들이 추천하는 책을 마음 놓고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의식적으로 "소설이 아닌 책"을 선택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소설을 덜 읽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작년 이맘때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에서 편향된 독서 취향을 지적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기존의 독서 습관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 를 보면, 주인공 주디가 다른 대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다독을 시도한다며 "한 번에 네 권까지 읽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저도 동시에 여러 권 독서를 시작할 때가 종종 있는데, 책 내용들이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동시에 읽는 책은 되도록 상이한 것들을 택합니다. 사회학자의 에세이집과 짧은 소설집, 고전 요리책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동시에 읽기 시작한 책들 중에는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도 종종 있지만, '동시에 읽기'는 종종 근사한 우연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의 어떤 문장이  『맨해튼의 반딧불이』 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순간이 그러했듯이.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 좋습니다. 저자의 전작이나 근작을 찾아보게 해 주는 책, 또는 다른 책들을 멋지게 인용해 인용된 원작도 읽고 싶게 해 주는 책.  이번에 읽고 마음에 든 책이 시리즈 도서라면 해당 시리즈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이종산 작가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저를 장편소설 쓰기의 세계로 인도한 장편소설 전도사이자 장편소설 장인이에요. 신작도 분명 눈이 부실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김유림 시인의 새 시집도 기다려집니다. 첫 시집 『양방향』 을 2019년 추천 도서로 꼽기도 했는데, 한 달 전쯤 김유림 시인의 낭독회에 다녀온 이후로는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덤으로, 뻔뻔하다면 뻔뻔한 얘기겠지만... 저의 새 책을 저 역시도 기다리고 있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하하하. 


 

 

마르타의 일박서련 저 | 한겨레출판
1930년대 여성들이 처한 수난과 희생의 삶을 성장과 투쟁의 서사로 역전시켰던 박서련의 소설은, 이제 2019년 청년 여성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든 폭력과 상처, 그리고 무탈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위험 속에 살아가야 하는, 공포와 긴장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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