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 우주를 항해하는 딜레마의 표정이 도달한 곳은?

딜레마를 푸는 열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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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라는 추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대신 지구에 발 디딘 우리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관계의 가치 속에서 지구를 지킬 해답을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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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 관람을 방해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의 ‘애드 아스트라 Ad Astra’는 라틴어로 ‘별을 항하여’라는 뜻이다. 영어 대신 제목을 라틴어로 표기하니, 우주가 선사하는 신비함과 동시에 그곳을 배경으로 뭔가 풀어야 할 암호라는 인상이 짙다. 실제로 <애트 아스트라>는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가 지구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정체불명의 전자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진원지로 추정되는 해왕성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은 로이 맥브라이드를 비롯하여 극소수만 공유하는 비밀 프로젝트다. 달을 경유하는 로이의 해왕성 행에 관해 대외적으로 외계의 고등한 생명체를 찾아 위기를 맞은 지구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명목을 내세운 것과는 다른 목적이다. 로이가 향하는 그 별, 해왕성에는 그동안 사망한 줄만 알았던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가 자신만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구에 위협을 가하는 전자파의 실체다.


해왕성으로 향하는 로이의 표정에는 딜레마의 기운이 완연하다.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벌써 몇 년인데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기 전 당혹스러운 심정이다. 당혹감이 사라질세라 오래전 우주로 나갔던 아버지가 동료들을 인질로 삼아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데 이를 알 리 없는 주변에서 아버지를 두고 전설적인 우주비행사라고 평가하니 고약한 아이러니가 질색이다. 내가 이러려고 지구를 떠났나, 더는 나만 혼자 두지 말라며 손을 내밀던 애인을 뿌리치고 우주로 나온 로이 자신이 밉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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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

최근 들어 할리우드 제작의 묵직한 우주 배경 영화를 비교적 자주 관람한다. <그래비티>(2013) <마션>(2015) <인터스텔라>(2016) 등에 더해 <애드 아스트라>까지, 어떤 세계든 창조할 수 있는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고려하면 우주는 더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 인구 포화 상태의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지구를 찾아 우주로 향하는 영화 속 우주비행사처럼 할리우드에게도 우주는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영화적 공간이다. 다시 말해, 우주는 할리우드가 찾은 새로운 서부다.


브래드 피트는 <애드 아스트라> 키워드 영상 인터뷰 인터뷰 자리에서 ‘다른 우주 영화와 차별점이 있다면?’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우주에 인류만 존재한다면? 이라는 생각이 흥미로웠다. 우주 배경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파헤치는 여정이고 남성성의 정의와 그에 따른 문제를 살펴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인류만 존재하는 우주, 그곳에서 정의하는 남성성이라고 한다면 서부극이 품고 있는 장르적 가치와 맞닿는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문제와 그로인한 내면과 영혼의 여정이라고 한다면?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세대에게 서부극은 미국인의 개척정신을 찬양하는 장르였다. 사막과 같은 허허벌판 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 가족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보수적 가치의 미국이 클리포드의 서부극에 담겨 있었다. 로이 세대에게 서부는 위선적인 장소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터전이었던 곳을 폭력으로 빼앗아 이들을 적으로 몰고 백인의 힘을 찬양하며 건설한 피의 미국. 여전히 서부극의 가치를 지향하는 클리포드는 우주를 새로운 서부로 삼아 자신의 여정에 동의하지 않는 동료들을 피로서 처단하고 폐기처분해야 할 가치를 목숨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은밀한 움직임 속에서 로이는 클리포드를 설득해 그동안 놓고 있던 손을 잡아 함께 지구로 귀환할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서부극과 수정주의의 서부극을 거쳐 우주 배경으로 새로운 서부극을 쓰려는 장르 간의 화해 모색이 부자의 만남 속에서 감지된다. 그럼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로이의 딜레마의 표정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로이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옛 가치를 놓지 않으려는 클리포드를 보면서 자신 또한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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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
 

서부극에서 주인공 백인 남성은 아메리칸 원주민들로부터 가족을 지켜낸 후 집에 정착하지 않고 이글이글 불타는 석양을 배경 삼아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서부라는 광활한 땅에서 개척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미국 백인에게 여행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로이도 우주비행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우주를 여행해 왔다. 이제는 아니다. 아버지 세대가 잘못하고 있는 가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자신부터 이 여행을 끝마쳐야 한다. 태어나고 자란 지구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애인이 있다.


폭력을 동반한 개척으로 이득을 본 건 누구인가. 그 가치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일 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떠난다는 설정은 그래서 모순이다. 사랑하는 이가 없는 가족은 행복할 수가 없다. 모순으로 유지되는 서부는 시효를 다했다. <애드 아스트라>는 그에 종지부를 찍고 우주 대신 마음속 별을 향한다. 우주라는 추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대신 지구에 발 디딘 우리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관계의 가치 속에서 지구를 지킬 해답을 찾으려 한다. 딜레마를 푸는 열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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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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