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강릉 경포호가 좋은 이유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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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가지에서 출간하는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시리즈는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들의 풍경과 맛과 멋, 사람과 공간에 깃들어 있는 서사를 밝혀주는 책입니다. 그 지역에서 자랐거나 일정 기간 살아본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기록한 ‘본격 지역문화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9.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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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에 눈이 내린 모습. @강릉시

 


‘경포’라는 이름에 담긴 것들

 

바닷물이 해안의 모래를 밀어 생긴 둑 모양의 사주가 바다를 차단하면서 생긴 호수를 석호라고 한다.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에 많이 발달해 있으며 강릉 경포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강릉에서 경포는 단순히 호수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정철이 ‘십 리나 펼쳐진 흰 비단’이라고 노래한 경포해변과 강릉 최고의 명승지로 알려진 누정 경포대 등을 모두 아우른다. 누군가 경포에서 만나자고 한다면 그 장소를 분명히 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호수로, 누군가는 해변으로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포대에 오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폭넓은 의미를 가진 경포는 강릉을 상징하는 코드 가운데 하나이자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대명사로 인식되어왔다.

 

강릉의 아름다움은 산, 바다, 호수, 계곡 등을 두루 갖춘 자연의 조화로움에 기인한다. 그 가운데 경포는 일찍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경포를 둘러싼 역사 기록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물이 거울처럼 맑다. 사방이 하나같이 깊지도 얕지도 않으며 겨우 사람의 어깨가 잠길 만하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경포는 이름대로 거울같이 깨끗한 호수였다. 석호의 특징이 그렇듯 사람이 빠져도 위험하지 않을 만큼 수심도 깊지 않았다. 그래서 경포가 가진 덕이 선비에 비교되어 ‘군자호’니 ‘어진개’니 하는 이름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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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양지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경포해변.

 

 

역사시대 내내 경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람이 모여들면서 경포에 대한 서사가 하나둘 만들어졌다.

 

경포호에는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전승되는 장자못 전설과 구성이 비슷한 유래담이 전해지고 있다. 시주하러 온 노승에게 인분을 퍼준 딸, 노승에게 사죄한 어머니, 집에 물이 가득 찰 것이니 뒤돌아보지 말라는 노승의 충고, 딸이 걱정되어 뒤돌아본 후 돌이 된 어머니 등을 골자로 한 이야기다. 경포호에는 지금도 호수 속에 기왓장과 큰길, 어머니가 변한 돌이 남아 있다는 부언이 덧붙는다.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고사도 전한다. 고려시대 강원감사로 부임한 박신과 강릉부 기생 홍장에 관한 일화다. 박신은 홍장을 어여삐 여기며 깊이 사모했는데 강릉부사 조운흘이 그를 골려주기 위해 계책을 꾸몄다. 홍장이 죽었다고 속이고 선녀 분장을 시켜 경포 뱃놀이에 등장시킨 것이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박신이 홍장을 선녀로 착각했으나 사실을 알고는 한바탕 즐기며 놀았다는 내용이다. 호숫가에는 이 고사가 사실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홍장암이라 새겨진 바위가 당당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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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 주변에 조성된 가시연습지.

 

 

박신과 홍장의 고사에서 보듯 경포는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선비들이 지향했던 탈속의 심처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속되지 않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경포 주위가 온통 누정으로 둘러싸이다시피 한 것이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풍광이 뛰어난 곳에 팔경이 있듯 경포에도 여덟 개의 경치가 전해온다. 녹두일출(녹두정에서 바라보는 일출), 죽도명월(죽도에서 보는 달빛), 강문어화(강문바다의 고기잡이 불빛), 초당취연(초당마을의 밥 짓는 저녁 모습), 홍장야우(홍장암에 비 내리는 밤풍경), 증봉낙조(시루봉에서 보는 석양), 환선취적(환선정에서 부는 피리 소리), 한송모종(한송사의 저녁 종소리)을 경포팔경이라 일컫는다. 녹두정(한송정), 죽도, 강문, 초당, 시루봉, 한송사 등 경포 주변에 있는 정자, 마을, 산, 절 등과 같은 구체적인 경관과 그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까지 포함한 내용이다.

 

 

03 경포대.JPG

경포를 정원으로 삼은 누정, 경포대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관이 일품이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경포 하면 연상되는 것 중 하나가 부새우다. 부새우는 민물에 사는 작은 새우를 말한다.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손가락으로 휘저으면 쪼르르 달라붙을 정도다. 부새우는 단오가 시작되기 전부터 강릉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중앙시장 주변 노점에서 팔았다. 물고기의 먹잇감도 되지 못할 것같이 작은 부새우들은 주발로 계량했다. 국간장, 고춧가루,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인 부새우탕은 한시적으로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경포 호수의 생태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탓에 부새우는 점차 추억 속으로 박제되다시피 했다.

 

둘레가 지금의 세 배여서 대관령 정상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넓었던 호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맑았던 물, 호수를 빙 둘러싸고 있던 누정, 그 외에도 아름다운 여덟 경치가 곳곳에 펼쳐져 있던 곳이 경포였다. 그리고 그런 경포를 정원으로 삼은 누정이 경포대다. 경포대는 인공적인 시설이 아닌 외부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누정의 배경으로 들여다놓은 정자다. 우리 선조들이 지형지물을 어떤 식으로 관조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구할 것 같던 경포도 달라졌다. 접근성이 좋아진 만큼 주변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했다. 호수의 전체 둘레가 줄어들면서 그곳에 깃들어 살던 생물들의 서식환경과 식생도 달라졌다. 따라서 옛사람들이 즐기고 완상하던 방법으로는 더 이상 경포를 볼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처지에 맞게 새로운 방법으로 경포를 즐겨야 한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저 멀리 호수 안에서, 찾아오는 친구라고는 새들밖에 없어 무료해진 새바위(鳥巖)가 오늘도 긴 하루를 잔잔한 수면만 내다보고 있다는 것, 그 정도다.


이 글을 쓴 정호희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26년간 유물을 다루며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담당했고, 지금은 강릉시청 문화예술과로 자리를 옮겨 문화재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혼자 궁싯궁싯거리는 시간을 좋아하고 일 내 내내 매화, 수수꽃다리, 인동초, 산국 향기를 탐하러 쏘다닙니다. 

 

 


이 글을 쓴 정호희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26년간 유물을 다루며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담당했고, 지금은 강릉시청 문화예술과로 자리를 옮겨 문화재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혼자 궁싯궁싯거리는 시간을 좋아하고 일 내 내내 매화, 수수꽃다리, 인동초, 산국 향기를 탐하러 쏘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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