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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이 오마이걸, THE FIFTH SEASON
<월간 채널예스> 2019년 6월호
모두 뻔뻔해질 때까지 노래를 들려주길 바란다. (2019. 06. 04)
사진제공 : WM엔터테인먼트
‘오마이걸(OH MY GIRL)’이 첫 번째 정규앨범으로 돌아왔다. 2015년 「CUPID」로 데뷔했으니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나온 앨범이다. 디지털 싱글과 유튜브 영상이 가요계의 주된 활동 방식이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정규’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가 작지 않다. 정규앨범은 보통 8곡 이상의 노래가 담기고 플레이리스트의 순서와 구성이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작동한다. 정규앨범은 데뷔 후 싱글앨범과 미니앨범 등으로 쌓아온 경력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수납함임과 동시에 앞으로 있을 활동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정리할 경력이 없거나 나아갈 방향성이 부재하다면 결코 정규앨범을 낼 수 없다. 크지 않은 기획사에서 출발해, 비교적 큰 관심을 받으며 데뷔하지는 못했던 그룹, 오마이걸이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오마이걸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보통은 ‘콘셉트’를 꼽지만 여기서는 그 자리를 ‘발전’이라는 글자로 대신 채우고 싶다. 미니 2집에서 청순이나 섹시로 단순히 구분할 수 없었던 오마이걸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의 곡 「CLOSER」로 데뷔곡이었던 「CUPID」에서 한 걸음 나아간 그들은 미니 3집에서는 「LIAR LAIR」와 「한 발짝 두 발짝」으로 그룹의 지향성을 확실히 했다. 뒤이은 미니 3집 리패키지 앨범은 정규앨범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여주는데, 특히 「WINDY DAY」는 스웨덴 프로듀서 Maria Marcus 등이 제작에 참여해 독특한 사운드를 구현함으로써 케이팝 팬들에게 그룹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오마이걸은 공중파는커녕 케이블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으며 리메이크 음반 이후 2017년 활동은 「컬러링북」이 전부였으며 건강 문제로 멤버가 교체되는 일도 겪었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그렇겠지만 여성 그룹의 수명은 수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남성 그룹에 비해 탄탄한 팬층은 부족하기에 어느 날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가요계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은퇴나 해체가 아니더라도 소속사의 투자가 소홀해지고 이전의 음악을 반복하며, 그저 여성성을 전시하는 무대의 인형이나 꽃으로 근근히 존재하는 수도 있다. 믿을 만한 음색과 실력을 보여주는 오마이걸에게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어 많은 팬이 노심초사했고, 또 그만큼의 팬이 그러하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 팬들에게 2018년은 감격의 한 해였을 것이다. 「비밀정원」은 2018년 첫 1위 곡이었고, 여세를 몰아 가을에는 「불꽃놀이」로 사람들의 귓속에 오마이걸의 노래를 오랫동안 터트렸다. MAMA를 비롯해 연말 가요제의 주요한 순서로 등장했으며, 단독 콘서트와 해외 팬 미팅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첫 번째 정규앨범을 낸 것이다. 오마이걸은 이미 충분히 좋았던 지난 활동보다 한 발짝 더 좋은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더 좋을 것이 없어 보였던 지난 퍼포먼스보다 두 발짝 더 진보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CUPID」에서 「다섯 번째 계절」까지 오마이걸의 그래프는 항상 오르막이었다. 오르막의 정점은 바로 오늘일 수밖에 없으니, 「다섯 번째 계절」이 담긴 정규앨범 ‘THE FIFTH SEASON’의 대기는 맑고 시원하다.
이번 앨범 안에서 오마이걸은 발전의 방향을 음악적 다양성의 확보로 잡은 듯하다. 「WINDY DAY」에서부터 「비밀정원」까지의 세계관을 이어받는 타이틀곡 「다섯 번째 계절」은 사람들이 아는 오마이걸의 최신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다. 「소나기」는 「한 발짝 두 발짝」의 계보에 있다. 「Tic Toc」과 「Crime Scene」의 발랄함과 재치도 놓치기 힘든 포인트다. 다양성의 방점은 아무래도 「Vogue」와 「Checkmate」에서 찍히는데, 「Vogue」의 “살짝 걸쳐 입은 Jacket 아래 표정 없는 표정” 같은 가사를 보노라면 오마이걸이 만들어 낼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기대가 차오른다. 그들은 무엇이든 잘할 것이기에, 조금 더 주체적이고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와 퍼포먼스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오마이걸은 늘 기분 좋은 놀라움을 주었다. 마치 기적(미라클)처럼.
가요 팬이라면 아이돌 그룹의 ‘7년 위기설’이 뭔지 알 것이다. 한때 잘나가던 그룹도, 우애와 동료애가 깊어 보이던 멤버도 7년의 계약 기간이 다하면, 혹은 계약이 남아 있더라도 기억만 남기고 사라지고 흩어진다. 이제 오마이걸에게 그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쁘다. 그들이 오랜 시간, 더 이상 ‘걸’이라 부르기 민망해질 때까지, 나아가 그것이 스스럼없어질 정도로 팬과 뮤지션 모두 뻔뻔해질 때까지 노래를 들려주길 바란다. 무대에 서길 바란다. 오늘부터 그 시작이다. 지금부터가 우리들의 다섯 번째 계절, 오마이걸의 봄날이다.
오마이걸 (OH MY GIRL) 1집 - The Fifth Season오마이걸 노래 | (주) 카카오 M / WM Entertainment
소녀들에게 다가온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다섯 번째 계절이 오는 듯한 서정적인 가사와 오마이걸의 풍성하고 감성적인 보컬이 더해져 오마이걸 특유의 몽환적이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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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며 동시에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