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로맨스, 기억하고 있습니까?

<월간 채널예스>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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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의 A부터 Z까지 지도를 따라 탐험하는 즐거운 가이드북. (2019. 05. 27)

장르 소설 여행 가이드북.jpg

       

 

 

이 글은 어디까지나 이제 막 이 무궁무진하고 즐거운 이야기의 바다에 막 발끝을 적시려고 차에 튜브며 아이스박스를 가득 실은 채, 해변가 주차장에 도착한 분들을 위한 쉽고 빠른 안내서입니다.
 
‘다 아는 얘긴데?’ 싶으시면 웃으며 처음 주차권을 끊던 그날을 함께 회상해 봅시다. 하지만 다 아는 얘기도 다시 듣고 싶을 때가 있죠. 침대 맡에 꼭 놓아두고 읽는 장르소설 몇 권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지 아실 거예요.

 

자, 그러면 초심자 여러분, 열독자 여러분, 모두 함께 우리가 알고 사랑해 온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행, 시작하겠습니다.

 


Case 1 : 로맨스를 기억하나요?

 

로맨스의 기원을 로마에서 찾는 게 다소 고리타분해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Romance’라는 단어는 ‘로마의’라는 뜻으로, 로마 제국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학’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로마에서 온 것이 표준이자 지배 언어였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겠지요. 물론 이 당시의 로맨스는 지금 우리가 로맨스를 말할 때 생각하는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광범위하게 문학 작품 전체를 일컫는 말이었어요.

 

인류의 본능처럼 모닥불에서 나누던 구전설화나 집단의 힘을 강화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던 경전에서 진화하여,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얼개로서 통칭되는 문학이라는 개념은, 세상의 중심 로마에서나 나올 만한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의미에서 문학에 로맨스라는 단어가 따라 붙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중세부터 르네상스를 거치며 유랑시인이며 호사가들이 일종의 정서, 연애감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소개하게 되면서 로맨스에는 특정한 의미가 하나 더 붙게 됩니다. 바로 ‘낭만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맨스의 의미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오게 된 셈입니다.

 

가장 현대적인 의미의 로맨스가 성립한 것은 낭만주의 사조가 붐을 일으킨 19세기 초중반일 거예요. 요즘에야 세계문학전집 리스트에 올라가고 필독서에 들어가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도 발표되었을 때에는 로맨스라는 장르소설로 소비되던 작품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춘향전』  이며  『사씨남정기』  가 예전에는 조선시대 버전 대여점에서 불티나게 예약되던 장르소설이었던 것처럼요.

 

이때부터 로맨스는 ‘문학’의 통칭에서 ‘연애감정을 대리체험하려는 특정한 욕구를 가진 독자에게 소비되는 목적성을 가진 문학’이라는 좁은 의미의 장르를 부르는 단어가 됩니다.

 

이렇듯 무수한 장르 가운데에서도 특히 로맨스란, 장르소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주제가 될 자격이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생래하는 한 영원히 이어질 장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 여기, 오늘의 로맨스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이처럼 다양한 즐길거리 볼거리가 더욱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비되는 오늘날, 한국에서 로맨스는 독자의 소비욕구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변용되고 있습니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코미디, 어른의 사랑을 다룬 성인로맨스,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한 로맨스판타지, 궁중의 암투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동양로맨스, 직장을 배경으로 한 오피스로맨스, 풋풋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학원로맨스…….

 

(세부 카테고리로 들어가 보자면 이 지면을 그걸로만 다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나라 로맨스 시장에 일대변화를 가져온 일종의 빅뱅은 2000년대 초중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전부터도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도록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다종다양하게 분화해 오던 로맨스 장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 기억하시죠?

 

바로 인터넷 소설, PC 통신 좀 해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인소’라는 준말로 부르는 새로운 문화의 대두입니다. 알음알음 대여점이나 서점의 특수 코너에서 팔려 나가던, 전문 작가들이 생산해 내던 정격 로맨스가 ‘나도 한번 써 볼 만한 이야기’로 확대되면서 귀여니나 백묘, 청몽채화 등 메가히트 작가들의 작품이 웹에서 놀라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퍼져 나가기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로맨스란 사랑이라는 인류 공통의 감정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장벽이 낮은 장르가 됩니다.

 

이후부터 재기발랄한 독자-작가들의 유입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인터넷 소설의 영상화, 팬픽의 청소년 주류문화 편입, 아마추어 작가들의 자유 연재가 진행되면서 로맨스 시장의 토양은 더욱 단단히 다져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1세대 인터넷 소설 이후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해 오기 시작한 국내 로맨스 독자-작가들을 대상으로 대형 포털사이트며 크고 작은 플랫폼 업체에서 각각 현대로맨스, 로맨스판타지 등의 취향별 카테고리를 마련하여 모바일이나 웹으로 손쉽게 이야기를 사고 팔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투자, 해외 판권 수출, 드라마 등의 영상화 사업까지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손쉽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그것도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유서 깊은 이야기의 얼개인 로맨스를 손안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는 쾌적한 환경. 2010년 이래로 발전한 국내의 로맨스 시장은 비단 장르문학 팬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서도 이야기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지면에 시선을 둔 그 어떤 분이라도, 로맨스를 처음 접했다고 하실 수는 없을 거예요. 다큐멘터리만 보는 분이라고 해도 채널을 돌리다 무심코 주말 프라임타임 로맨스코미디에 시선을 보낸 적이 있을 거고, 공포소설만 찾아 읽는 코어 팬을 자부하는 분 역시 뱀파이어 소설에 등장하는 섹시한 로맨스 신을 보셨을 테니까요.

 

결국, 로맨스는 결코 당신이 피할 수 없는 장르입니다.

 

태어나면서 만난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대개는 로맨스가 노골적이든 몰래든 들어가 있을 거예요.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 먼저 손을 내밀어, 제일 보고 싶은 사랑 이야기, 어쩌면 제일 하고 싶은 사랑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으실래요? 랩탑이든 핸드폰이든 텔레비전이든, 당신 바로 옆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 이야기가 존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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