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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산이라는 출산도

아내는 순대국이 먹고 싶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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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진통을 옆에서 꼬박 지켜본 남편이라면 모두 동의하겠지만 세상에 순산은 없다. 혈관이 터져나가고 몸의 구조가 비틀려 깨지고 옆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의 고통 끝에 아이는 나온다. 순산이라 불리는 출산이어도 그렇다. (2019. 05. 10)

순산이라는출산도.jpg

            언스플래쉬

 

 

5월이다. 날이 좋아서 점심 시간에 산책을 시작했다. 여의도 공원은 걸을 맛이 난다. 깨끗한 연초록 잎들이 이룬 숲을 연이어 통과하면 파랗고 시원한 하늘 아래로 고층 빌딩들이 서 있다. 신기하게도 이 풍경이 썩 아름답다. 통유리 건물에 비친 하늘이 청량감을 준다. 심지어 공사 중인 건물 조차도, 빽빽하게 들어차 공원을 돌고 있는 사람들도 이 완벽한 풍경에서 훌륭한 소임을 맡은 것으로 느껴진다. 모든 게 자연스러운 듯 편안하다.

 

아이는 세 돌을 맞았다. 첫 돌을 맞았을 때 아이는 걸음마를 한창 늘려가고 있었다. 두 돌을 맞았을 땐 자기 의사를 제법 문장 형태로 전달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세 돌을 앞둔 지금은, 조금은 과장이지만, 그냥 어른과 같은 사람 같다. 의사를 전달하려고 하는 걸 넘어 의지를 관철하려 한다. 엄마 아빠와는 협상을 하고, 사적인 공간에서의 행동과 공적인 공간에서의 행동이 달라야 한다는 것도 안다. 말 하는 것도 몸을 놀리는 것도 훌쩍 다른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남의 집 아이는 순식간에 큰다고 하던데 내 아이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산책하는 와중에 자주 한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흐뭇하게 되짚어 보다 보면 늘 그 날의 기억에 도달하게 된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오던 그 날.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침 일곱 시 조금 넘어 눈을 뜬 뒤 옆에 가만히 누운 아내를 바라봤던 기억. 아내의 눈을 보고 있는 동안 ‘오늘이구나’ 직감하게 되었던 그 날 그 순간.
 
아내는 진통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새벽부터 아팠다고 했다. 간격이 좁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가진통과 진진통의 구분은 애매한 상태였다. 병원에 갈 지 상의하느라 시간이 좀 흘렀고 씻고 옷 입고 입원에 대비한 짐을 챙기니 시간이 더 흘렀다. 배가 고파왔고 아내는 순대국이 먹고 싶다 했다.
 
병원에 가고 있으면서도 실은 ‘의사가 우릴 돌려보내겠지’ 생각했다. 진통이 충분히 진행되기 전에 병원에 갔다가 되돌아온 사례를 인터넷에서 많이 봤다. 병원에서 1분도 안 걸리는 순대국집을 두고 병원으로 먼저 간 건 그래서였다. “병원 갔다 나와서 순대국 먹자, 그래 그럼 되겠다.” 우리는 딱 맞춤한 계획을 세웠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손을 꼭 잡고 병원 계단을 올랐고, 계단을 다시 내려온 건 이틀 뒤였다. 우리는 둘이 아닌 셋이 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가 본 분만실엔 특별한 의료 기구가 없었다. 스스로 진통을 겪도록 한참을 놓아두다가 이따금 와서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체크를 했다. 통증이 심해진 순간에도 ‘힘줘요’ ‘숨을 참아요’ ‘숨을 쉬어요’ 하는 것뿐이었다. 정말 저 세 마디가 거의 다였다. 분만실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둘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병원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했다. 결정적인 순간이 닥쳤을 때, 당신이 당황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그런 안정감이었다. 누군가를 부를 수 있고, 전문적인 누군가가 재빨리 올 수 있다는 안정감.

 

진통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여유를 부리던 아내는 점점 진통 강도가 높아지자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온 몸을 덜덜 떨며 고통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정말 엄살이 없는 편인데... 그런 아내가 덜덜 떨고 있었다. 도움을 간절히, 간절히, 원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아내는 산통이 완화되길 원했고 나는 어서 무통 주사를 놔달라 요청하고 싶었지만, 분만실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접수대로 뛰어 내려가 무통주사를 놔주었으면 좋겠다 말했다. 몇 분 안되지만 우리에겐 길었던 시간이 지난 후 담당의가 분만실에 왔다. 그제서야 겨우 긴장을 좀 놓을 수 있었다. 아내도 잠시 얼굴이 펴지는 듯 했다.

 

그런데 허리에 주사바늘을 두 번인가 찔러보던 의사가 갑자기 주사를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정확한 단어들을 기억할 순 없지만 혈관 위치가 주사 놓기에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조금만 더 힘내세요” 라던가, “금방 나올 거 같네요” 라던가 웃음 섞어 힘내라 말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아내의 얼굴에 흘러갔던 좌절감을 기억한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그런 표정을 본 적 없다. 유일하게 단 한 번, 아내가 오롯하게 드러내었던 좌절의 표정. 눈동자가 사라지듯 텅 비어가는. 너무 희미해져서 정말 사라질 것만 같았던 눈동자.

 

아내의 고통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손을 꽉 잡고 옆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내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얼마간 위로가 되었을진 몰라도 그 위로는 고통에 다다르진 못했을 것이다. 고통 앞에서 아내는 고독했을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는 결정은 함께 했어도 아이를 낳는 고통은 오롯하게 아내의 것이었다.

 

“남편 분은 나가 있으세요.” 출산이 임박하자 담당 간호사가 이야기했다. 분만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옆을 지키겠다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그 순간엔 시키는 대로 했다. 병원의 자연스런 흐름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도 얼이 나가 있었다. 상황에 압도 되었다. 문 밖에 서서 아내의 소리 들으며 안절부절 안절부절.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아 기도했다.
 
드디어 아이울음 소리가 들렸다. 문 밖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우렁차진 않았다. “남편 분 들어오세요” 소리에 나는 얼른 들어가 탯줄을 잘랐다. 한 번에 잘 못 자르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가위로 탯줄을 슬며시 밀어가며 말끔하게 잘랐다. 그 순간에도 탯줄 자르는 법을 알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사람이란 참 웃긴 존재다. 아니 그냥 내가 웃긴 존재인 건가. 빨갛고 따끈한 아이를 처음 안고서 보여준 모습이 그런 모습이라니. 아니 어쩌면 그래서, 아이는 지금도 나에게 ‘아빠 웃겨’ 라고 자주 그러는가.
 
아내는 병원에 도착한 후 여섯 시간의 진통을 겪고 지안이를 낳았다. 보고 들은 이야기에 비해 짧은 편이라 무척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순산하셨네요" 라는 의사의 말이 거슬렸다. 순산이라니. 순산이라니.

 

아내의 진통을 옆에서 꼬박 지켜본 남편이라면 모두 동의하겠지만 세상에 순산은 없다. 혈관이 터져나가고 몸의 구조가 비틀려 깨지고 옆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의 고통 끝에 아이는 나온다. 순산이라 불리는 출산이어도 그렇다.
 
그 힘겨운 과정을 아내는 빈 속으로 버텨내야 했다. 힘이 빠질대로 다 빠진 채 또 힘을 써야 했던 아내를 보며 속상했던 내 모습도 생생히 기억난다. 게다가 무통도 맞지 못했다. 아이가 첫 돌을 맞았을 때 내가 떠올린 첫 장면은 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이 아니라, 아내가 덜덜 떨던 모습이었다. 비어가던 눈동자였다. 먹이지 못한 순대국이었다. 돌잔치 날 아이를 안고 부모의 소감을 말하면서, 나는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쏟아냈다.

 

그 날로부터 3년이 지나 다시 5월이 왔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생일에 어린이날에 챙길 날도 있다. 어버이 날도 있어서 서울과 경주의 부모님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5월에 더 남다르게 기억나는 사람은 아내다. 5월엔 더 애틋하다. 공원을 돌며 이 따스한 봄볕과 푸른 하늘과 청량한 기운이 모조리 아내에게 깃들길 기원해 본다. 네잎 클로버도 찾아 본다. 이번 주말엔 아내와 지난 3년을 기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 음식은 아무래도, 순대국을 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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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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