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다면 집에선 로브 가운

우리나라에서도 로브 가운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추천하는 소재는 일반 면이나 실크로 만든 얇은 로브, 그보다 더 추천하는 것은 스웻셔츠 재질로 만든 로브다. (2018. 11. 27)

thewirecutter.com5.jpg

            thewirecutter.com

 

 

커피, 신문, 그리고 로브 가운은 아버지의 표상이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로브 가운을 입었는지는 희미하다. 다만, 우디 앨런의 영화부터 <프렌즈> <빅뱅이론>과 <모던 패밀리>의 쿨대디까지 성인 남자들은 로브 가운을 입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주우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밭 마당 건너 이웃과 쿨하게 ‘세이 헬로우’를 나누는 풍경은 내게 성공에 안착한 중년 남자의 이미지였다.

 

그때부터 로브 가운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품목은 아니었다. 2010년 근방, 그러니까 호캉스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휴가 대신 시내 호텔에 묵는 호사스런 취미를 가진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느껴봄직한 일상과 단절된 붕 뜬 도시의 공기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명동이나 서소문을 관광객처럼 쏘다니다 건조한 호텔 방 안에서 샤워 후 아무렇게나 로브 가운을 걸치고 TV를 보다 잠드는 것으로 내 삶에서 나를 분리하곤 했다. 그때까지도 내게 로브 가운은 큰맘 먹고 호텔에 투숙했을 때나 즐길 수 있는 하룻밤의 전리품이었다. 그리고 이쯤부터 갓 체크인한 호텔의 따스한 간접 조명과 푹신하고 거대한 침구, 정갈한 가재도구에 깃든 안온함은 내 일상의 이상향이 되었다. 이 감흥을 일상에서도 누리고픈 마음에 욕실을 사용할 때마다 수전과 거울을 다 닦는 버릇이 생겼다.

 

 

thewirecutter.com4.jpg

               thewirecutter.com

 

 

로브 가운은 원래 호사스런 귀족의 물건이다. 정식 명칭은 ‘드레싱 가운chambre robe’으로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매우 깊은 역사와 유래를 가진 맨즈웨어다. 그러다 17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오늘날 이효리의 에스닉한 로브 가운이 유행하듯이 인도나 중국, 아랍풍의 이국적인 디자인과 원단의 가운이 유행했는데, 이때부터 페르시아어를 기원으로 하는 파자마와 함께 오늘날 서양 홈웨어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다. 화려했던 유럽 귀족의 복식이 19세기에 엄숙하고 간결한 슈트가 될 동안, 이국적이고 호사스런 실내 복장은 오히려 더 화려해지며 귀족 남자들이 집에서 연회를 열거나 외출 준비할 때 입는 옷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다 19세기 중반부터 지금의 넓은 라펠과 긴 소맷동이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가운의 형태로 자리 잡았고, 나이트가운이라 해서 여성들이 입는 가운도 생겨났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인 남자들이 죄다 가운을 입고 지내는 이유는 이처럼 깊은 복식사의 영향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몇 해 전부터 홈웨어가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로브 가운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여름에는 에스닉한 로브 가운을 바지 위에 걸치는 비치웨어풍 코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요즘은 로브 가운 형태로 만든 코트를 많이들 입고 다닌다.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한 로브 가운이 아니더라도 관찰예능의 붐을 타고 로브가운을 입고 지내는 연예인들이 TV에 대거 등장하면서 트레이닝복과 목이 늘어난 티셔츠, BYC 런닝셔츠로 대표되는 우리네 홈웨어룩에도 변화가 생겼다. 태양이나 승리가 입는 뉴욕의 슬리피 존스(Sleepy Jones)를 시작으로 고가의 홈웨어 브랜드들이 수입되고 있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모노피스파와 같은 홈웨어 전문 브랜드가 생겨서 로브 가운을 계절별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우리 일상 공간에 로브 가운을 들여올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호텔에서처럼 타월 소재로 만든 두툼한 목욕 가운을 집에 놓고 쓰면 좋겠지만 메이드가 없다면 현실적인 불편함이 따른다. 일단 세탁이 너무 번거롭다. 수건을 빨듯이 자주 빨아야 하는데 그 큰 덩치를 빨고 말리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짙은 색일 경우 이염의 염려도 높아 단독 세탁을 해야 하며, 소재의 특성상 여기저기 걸려서 올이 풀리는 등 내구성도 떨어진다. 가장 값싼 제품군인 플리스나 극세사로 만든 제품은 자칫 곰돌이처럼 보일 염려가 높아 권하지 않는다. 물론 질 좋은 플리스에 좋은 발색을 가진 제품도 있지만 체온 조절도 어렵고 나만의 호사를 누리기에 조금 없어 보이는 소재다. 겨울에는 플란넬 정도가 딱 적당하다.

 

 

inbedstore.com3.jpg

                                          inbedstore.com

 

 

목욕가운이면서 빨래도 쉬운 제품으로 와플면 제품이 있는데 솔직히 추천하지 않는다. 입고 잠깐 나가기엔 너무 스파 가운 같고, 물을 흡수하는 능력은 중하인 데다, 몇 번 빨면 금방 헤지고, 낡아진다. 와플 방직 자체가 가진 단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섬유유연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 집 세탁기에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물질이다.

 

추천하는 소재는 일반 면이나 실크로 만든 얇은 로브, 그보다 더 추천하는 것은 스웻셔츠 재질로 만든 로브다. 무릇 로브 가운이라 하면 보온도 되면서 안에 입고 있는 구질한 티셔츠나 내밀한 파자마를 가려서, 테라스나 현관 앞에서 일을 볼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실크로 만든 패턴이 가미된 로브는 사실 조금 화려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웻셔츠 재질로 만든 로브는 가스 검침원이나 택배 아저씨의 인상에 남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응대할 수 있는 캐주얼이다. 실제로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대부분이 눈길을 보낸 것도 바로 이 캐주얼한 로브 가운이었다. 미국의 타운크래프티나 일본의 하베스티(harvesty)에서 나온 제품을 추천하는데, 찾아보니 매 시즌 나오는 건 아닌 듯해서 혹시나 원하는 제품이 있다면 발품과 구글링이 필수다.

 

참고로 재작년 이맘때쯤 아버지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플란넬 로브 가운을 사드린 적 있다. 반응은 안 좋았다. 불편하다면서 모처럼의 선물 기회를 허망하게 날린 것에 대해 불쾌해 하셨다. 그러니 혹시나 거추장스러운 게 싫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면 파자마 정도로 타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참, 실크를 두려워하지 말자. 세탁 태그에는 드라이크리링을 하라고 되어 있지만 미온수에서 울샴푸로 조물조물 손빨래하고 헹군 다음 물기를 짜지 않고 그냥 널면 된다. 행주 세탁보다 쉽다. 실크는 물세탁하는 법이 훨씬 더 옷감을 잘 보호하는 길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교석(칼럼니스트)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