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승리와 질주의 상징, 로소 코르사

『컬러의 말』 연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승리를 기리기 위해 자동차의 원래 색깔인 로소 코르사, 즉 경주의 빨간색이 이탈리아 경주 국가대표팀의 상징 색은 물론 이후 엔초 페라리의 자동차 색깔로 자리 잡았다. (2018. 07. 17)

컬러의말_3화 이미지.png

 


1907년 9월, 깊은 M자 이마와 큰 코를 지닌 멀끔한 체격의 남자가 이졸라 델 가르다의 네오고딕 양식 궁전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섬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볕에 탄 채 여독을 느꼈고, 품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우리의 여정이 무엇보다 한 가지를 증명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라고 시피오네 마르칸토니오 프란체스코 로돌포 보르게제 10대 술모나 공이라 사회에 알려진 이가 썼다. ‘한마디로 베이징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로 여행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지요.’ 그 자신이 일궈낸 업적이었으므로 너스레를 떠는 것도 당연했다.


몇 달 전인 1907년 1월 31일, 프랑스 신문 <르 마탱>이 1면에 도전 과제를 내건 게 발단이었다. ‘이번 여름에 베이징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로 일주할 이가 나올까?’ 페르시아를 여행했으며 모험을 즐겼던 보르게제 왕자는 프랑스 세 팀과 네덜란드 한 팀으로 이루어진 네 팀과 더불어 도전을 바로 수락했다. 멈 샴페인 한 상자, 즉 열두 병과 국가 차원의 영예가 유일한 상이었다. 자랑스러운 이탈리아 관료인 보르게제는 당연히 자국산 자동차를 쓸 거라 고집했다. 첫 자동차의 21주년을 기념할 정도로 자동차의 태동기였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적었다. 보르게제는 거슬리는 파피 레드(황적색)로 칠한, ‘힘차지만 무거운’ 40마력짜리 이탈라 모델을 토리노에서 들여왔다.


만리장성과 고비 사막, 우랄 산맥을 거치는 경주는 19,000킬로미터의 대장정이었다. 보르게제는 승리를 너무나도 확신한 나머지 경로에서 몇백 킬로미터 벗어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승자들과 축하연을 벌였다. 사람뿐 아니라 차 또한 긴 여정에 고생했다. 출발 전에 보르게제의 친구이자 기자인 루이기 바르치니는 이탈라에 대해 ‘목적의식과 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인상을 풍긴다’고 썼다. 러시아의 남동부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자동차는 처량해 보였다. 보르게제의 기계공인 에토레가 ‘세심한 외부 화장실’을 설치한 뒤에도 ‘자동차는 사람처럼 날씨에 시달려서 색깔이 진해졌’다. 결국 모스크바에 이르렀을 때 자동차는 ‘흙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 모두는 보르게제 팀이 파리 대로에서 승리의 질주를 할 때 경주 참가자와 그들을 아끼는 이탈리아의 팬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승리를 기리기 위해 자동차의 원래 색깔인 로소 코르사, 즉 경주의 빨간색이 이탈리아 경주 국가대표팀의 상징 색은 물론 이후 엔초 페라리의 자동차 색깔로 자리 잡았다.


 


 

 

컬러의 말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이용재 역 | 윌북(willbook)
매일 색을 다뤄야 하는 사람이라면 색에 대한 깊은 영감을, 색과 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색을 제대로 이해하는 안목을 안겨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기자, 작가. 2007년 브리스톨 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18세기 여성 복식사와 무도회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책과 미술’ 담당 편집자로 일하며, <텔레그래프>, <쿼츠>, <뉴 스테이트먼> 등에 글을 기고했다. 2013년 <엘르 데코레이션>에서 연재했던 칼럼을 정리한 책 <컬러의 말>을 출간했다.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이용재> 역14,220원(10% + 5%)

★NPR 선정 올해 최고의 책★ ★BBC Radio 4 올해의 책★ 컬러, 너의 이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엔 색이 있다. 컬러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일상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컬러와 함께 살아가지만 색깔이 가진 이름과 힘과 의미를 알지 못한다. 여기, 가장 세밀하고 감각적인 ‘색의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이용재> 역9,960원(9% + 5%)

★NPR 선정 올해 최고의 책★ ★BBC Radio 4 올해의 책★ 컬러, 너의 이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엔 색이 있다. 컬러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일상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컬러와 함께 살아가지만 색깔이 가진 이름과 힘과 의미를 알지 못한다. 여기, 가장 세밀하고 감각적인 ‘색의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