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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소년 건강에 신경 써야 할까

청소년의학과라는 독립된 전문분야가 생겨야 한다 왜 옛날이야기엔 계모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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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생활습관에 관계된 것이라 “생활습관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활습관이 언제 생기나요? 청소년기에 생깁니다. 청소년기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대개 평생을 피우게 됩니다. (2018.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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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좀 오래 전 일입니다만 소아과와 내과 의사들이 서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어디서 봐야 하느냐는 문제였지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 제가 배운 바로 청소년은 소아과에서 봐야 했습니다. 소아과의 가장 큰 원칙은 ‘성장과 발달’입니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인간의 건강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성장과 발달이 끝나지 않았다면 소아과에서 보는 것이 옳다는 거죠. 둘째, 어느 쪽이 옳든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의약분업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속히 국민의 오해를 풀고, 우리 의료의 문제를 잘 설명하며 신뢰를 얻어 의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런 때에 그런 문제로 시끄럽게 다투는 것은 진정한 뜻이 어디 있든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소아과는 이후 공식 명칭을 ‘소아청소년과’로 바꾸었습니다. 그럼 소아과가 이긴 걸까요? 글쎄요. 의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청소년은 아예 병원 자체를 잘 오지 않죠. 아픈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우연한 기회로 “청소년 의학”이란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고 독학이었지요. 그리고 제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청소년이란 존재, 이 독특한 시기가 개인과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건강을 기회의 실현이란 차원에서 바라볼 때 드러나는 새로운 의미 같은 것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피상적인 원칙에만 매달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다는 자각이 밀려왔습니다. 섹스, 미디어, 비만과 영양, 외모와 자기 정체성, 자기 계발, 술과 담배 등 물질 남용, 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중독 등 청소년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청소년 건강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청소년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청소년은 이미 건강하지 않나요? 건강은 40세 정도 돼서 챙기는 것 아닌가요? 당연한 생각입니다. 심지어 의사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지요. 물론 일생 중 청소년기만큼 건강한 때는 없습니다. 몸매는 아름답고, 팔다리는 튼튼하며, 얼굴은 젊음의 빛을 발산합니다. 빨리 달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있지요. 마구 먹어도 좀처럼 살이 찌지 않고, 며칠 밤을 새워도 푹 자고 일어나면 금방 멀쩡해집니다. 잘 아프지도 않지요. 세상에 청소년만 있다면 의사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겁니다.

어른들은 어떤가요? 배도 나오고, 근육은 물렁물렁하고, 조금만 과로하면 병이 납니다. 이곳 저곳 쑤시고, 하는 일 없이 피곤하여 병원에 가보면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소릴 듣습니다. 허리 디스크로 잘 걷지도 못하고, 목이나 어깨가 아파서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 암 같은 질병이 찾아 오면 평생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생로병사가 곧 고통의 바다라는 부처님 말씀을 실감하게 되지요.

 

그런데요, 청소년기의 건강한 상태와 중년, 노년의 질병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옛날에는 감염병이 건강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불과 70 80년 전만 해도 인류의 평균수명이 40대였습니다. 그때는 청소년기에 고아가 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옛날 이야기에 보면 마음씨 나쁜 계모가 많이 나오지요? 심청도, 콩쥐팥쥐도,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다 계모 때문에 고생을 하잖아요. 얘네들 진짜 엄마는 어떻게 된 걸까요? 그때는 아기 낳다 죽는 일이 아주 흔했습니다. 주로 세균 감염이었지요. 아기를 낳는다는 건 여성으로서 목숨을 걸고 감행하는 대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계모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일상적인 존재였던 겁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인류의 평균수명은 많은 국가에서 80세를 넘고도 계속 늘어납니다. 이제 감염병으로 죽는 사람은 많지 않죠. 심장병, 뇌졸중, 당뇨, 암 등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병은 대개 4, 50대 이후에 생깁니다. 하지만 그냥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병이 생길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흡연, 음주, 운동 부족, 오래 앉아 있는 습관, 식습관, 비만 등의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같이 생활습관에 관계된 것이라 “생활습관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활습관이 언제 생기나요? 청소년기에 생깁니다. 청소년기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대개 평생을 피우게 됩니다. 단 것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즐기는 습관, 술을 마시는 습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생기면 좀처럼 바꾸기 어렵고 평생 갑니다. 희한하게도 나쁜 습관은 금방 생기는데, 좋은 습관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지요? 그러니 청소년기에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옆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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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청소년기에 건강 문제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에요. 성병이나 기타 생식계 질병처럼 다른 시기에도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기에 특히 많이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은 청소년기에 가장 흔히 생기며,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기에는 정서가 갑자기 크게 변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미숙합니다. 그래서 물질 남용이나 인터넷, 게임 등에 빠지기 쉽지요. 경험이 부족하고, 삶이 크게 어긋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모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잦습니다. 성적 모험으로 인한 질병과 자살, 폭행 등으로 인한 문제가 많이 생기지요. 청소년기는 기회의 시기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부모가 된다든지, 심한 상해를 입는다든지, 중한 감염병에 걸린다든지, 중독과 의존성(약물, 의존성 물질, 게임)에 빠지면 이 기회를 너무 쉽게 잃어버립니다.

 

청소년기는 이중적 시기입니다. 모든 것이 형성되면서 어른으로 발돋움하는 멋진 시기인 동시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어쩔 줄 모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몸과 마음, 독립성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고 두렵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되지요.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토대가 이때 결정됩니다. 어떻게 보면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청소년에게 투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기의 건강과 교육과 고용 기회에 투자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증진시킬뿐더러 국가의 번영과도 직결됩니다.

 

청소년 의학을 공부한 후 저는 소아과나 내과에 이 문제를 맡길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학과라는 독립된 전문분야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앞서 말했듯 청소년은 병원을 찾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현행 제도에서는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모두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기를 맞아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과거의 생각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청소년기의 건강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문자 그대로 ‘미래의 희망’이 이들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를 완전히 새롭고 행복한 곳으로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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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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