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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과 양말과 유행의 상관관계

양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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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행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젊은이들이 검정 유니폼이 아니라 그 아래의 양말이었다. 지하철, 동네 골목길, 번화가의 대로 어디서든 온몸을 꽁꽁 싸맨 패딩 아래 발목을 훤히 드러낸, 위로는 유행을 따르면서 아래는 계절조차 따르지 않는 옷차림을 자주 만났다. (201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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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societysocks

 

 

유행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김남주 스타일’ 이런 품목을 따라 사는 건 아니니 관대하다는 편이 더 맞으려나. 유행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이유와 현상을 눈여겨보길 즐긴다. 취향이나 아티스트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거나 힙스터라 불리는 멋쟁이들은 유행과 최대한 떨어지거나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들도 더 큰손이 만든 유행을 조금 일찍 혹은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지난해까지 1~2년간 일요일 아침이면 스콘을 먹는 루틴이 있었다. 이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이라 믿었는데, 실은 당시 제과 트렌드가 스콘이었다는 식이다. 요즘은 주변에서 크루아상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부쩍 늘지 않았나? 1970년대 요세미티에서 오늘날 포틀랜드까지 괜히 돈 버는 히피와 힙스터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유행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건 자각 여부와 수용하는 안목을 갖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지난겨울 최고 유행 아이템은 단연 롱패딩이었다. 유래 없는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교내 급식실, 평창 올림픽, 홍대앞까지 일명 ‘김밥 패션’이 한반도에 물결을 이뤘다. 롱패딩의 원래 명칭은 벤치워머 혹은 스타디움자켓이다. 추운 겨울 벤치에 앉아있는 이들을 위해 고안된 기능성 옷이다. 당연히 미적 가치나 개성보다는 보온기능과 실용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고프코어(Gorpcore) 패션과도 맥락이 통한다. 정장을 갖춰 입고도 그 위에 아노락 같은 기능성 의류를 막 걸치는 ‘어글리 프리티(못생긴 게 패션이 됐다는 뜻)’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하이패션 세계와도 나름 보조를 맞춘 셈이다.

 

그런데 이 유행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젊은이들이 검정 유니폼이 아니라 그 아래의 양말이었다. 지하철, 동네 골목길, 번화가의 대로 어디서든 온몸을 꽁꽁 싸맨 패딩 아래 발목을 훤히 드러낸, 위로는 유행을 따르면서 아래는 계절조차 따르지 않는 옷차림을 자주 만났다. 롱패딩은 ‘따수움’이란 깃발 아래 착장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옷이다. 그런데 그 아래 발목양말과 페이크삭스를 신었다는 건 유시민 작가가 와도 해석하지 못할 현상이다. 보이는 것만 신경쓰다보니 유행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사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아님 발에 열이 유독 많거나.

 

양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척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많은 걸 설명하기 때문이다. 깔끔하며 계절에 맞는 양말을 신는 것은 패션 센스보다도 일상을 꾸려가는 성실함과 능숙한 매너 차원에서 중요하다. 물론, 부모의 둥지를 벗어나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마련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양말에 돈을 들이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미성숙함이 지속되다보니 롱패딩에 발목양말처럼 유행과 어설픔이 만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니 갓 독립해서 옷이나 이런저런 세간을 마련할 때, 양말을 사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구색 갖추기 연습이다. 우선 개념부터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양말은 피부에 직접 닿고 착용할 때마다 땀에 오염되는 속옷이자 소모품이다. 잦은 세탁과 수고로운 관리가 필요하단 뜻이다. 분리세탁은 기본이고, 흰 양말의 경우 애벌빨래나 산소계표백제와 구연산 등을 희석한 물에 불렸다 빠는 과정이 필수다. 이 과정이 그다지 자신 없다면 보다 자주 새것을 사야 한다.

 

또한 계절을 타는 아이템이다. 한 번 사면 주구장창 구멍 날 때까지 신는 알뜰함도 훌륭한 덕목이지만 추위를 무릅쓸 정도까지는 아니다. 특히 겨울은 양말의 계절이다. 산타할아버지를 찾을 것도 없다. 첫째는 보온을 위해서, 두 번째는 도톰한 순면부터 기능성 울까지 흰 양말부터 각종 문양의 다양한 패턴의 양말을 부츠 안에 조합해서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페이크삭스와 발목 양말이 힙한 발견으로 인정받은 이래 발목을 내놓는 것이 여전히 쿨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사계절 다 그렇게 신으라는 뜻은 아니다. 한겨울에 형광끼 잃은 여름 양말이라니, 그건 그냥 추운 거다. 반바지에 스포티하게 발목양말을 신거나 크롭팬츠와 페이크삭스로 시원하게 발목을 드러내는 건 여름 한정이다. 게다가 요즘엔 샌들에다가도 양말을 신는 마당이니 무조건적인 발목양말 애호는 그다지 힙하지도 않다. 그러니 내년 겨울엔 부디 어떤 유행을 마주하더라도 발목도 빼놓지 않고 따뜻하게 감쌌으면 좋겠다.

 

끝으로,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하는 ‘양말의 도’가 있다. 패션과 관련한 규칙은 늘 타파하라고 있는 게 맞지만, 개중에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발목과 관련된 것으로, 절대로 바짓단과 양말 사이에 속살이 드러나선 안 된다는 거다. 당연히, 앉은 자세에서 하는 말이고, 청바지를 입어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작은 면적에 세 가지 색이 층을 이루고 있어도 되는 건 다채롭게 잼을 바른 식빵 외에 없다. 같은 이유로 부츠나 하이넥 운동화를 신었을 때 그 높이보다 낮은 양말을 신는 건 지양하는 편이 좋다. 속살이 노출되며, 피부로부터의 오염과 마찰을 막을 수 없고, 무엇보다 안쪽으로 레이어드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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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교석(칼럼니스트)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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