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성평등이 아니고 성평등이 옳은가? – 과학의 입장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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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면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지요. 존재하는 것을 어떤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재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옳다면 그냥 ‘성평등’이라고 해야 옳은 겁니다. (2018.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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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어떤 분이 왜 육아 칼럼에 성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쓰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적 인식으로는 이 어린이들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트랜스젠더가 인간의 성에 있어 정상적인 측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인간의 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남성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는 그 반대 상황은 당사자에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보니 자기 몸이 반대인 성으로 바뀌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약간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는 느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것만도 힘든데 주변에서는 매일, 매순간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태도와 행동을 기대합니다. 어느 날 견디다 못한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사실 나는 여자아이에요.” 엄마는 참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씩 계속되면 부모도 아이가 뭔가 고통스러운 일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그 고통이 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릅니다. 알지 못하니 해결해줄 수 없고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그냥 크면서 좋아지려니 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트랜스젠더인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문제를 겪습니다. 학교에서 왕따에 시달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약물에 빠져들거나, 폭력 등 비행을 저지르거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일도 흔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삶은 비참합니다. 사회 자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고통입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습니다. 자기는 분명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기는 너무 싫은데, 몸은 남성이니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울증, 불안 등 정신적인 문제도 많습니다. 자살률 또한 전체 인구의 9-10배에 이릅니다.

 

도대체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믿는다면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명명하는 순간,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것이 질병이나 비도덕이 아니라 정상적인 인간의 존재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희망의 불빛이 반짝 켜집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겁니다. 이제 부모는 아이가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의 불꽃이 켜진 순간, 그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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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 젠더 확정(Gender Affirming)


젠더 확정에 관한 내용은 주로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가장 앞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료인들이 있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다 나이가 들어 성전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테드(TED)에 나가 강연도 합니다. 그런 미국조차 일반 대중의 인식은 아직 매우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한적인 매체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어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작년 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유명 언론인 케이티 커릭(Katie Couric)이 <젠더 혁명(Gender Revolution)>이라는 다큐를 발표하면서 국면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다큐는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자료인데 유튜브에 올라 있습니다. 어쨌든 미국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뜻과 함께, 사회가 과학에 의해 밝혀진 진실을 받아들이고,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해결 과정을 고민하는 과정이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성을 부정할 때 부모는 당연히 혼란과 좌절에 휩싸입니다. 어느 부모인들 그런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알고,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는 의사와 심리상담자,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 더 나아가 사회의 이해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모든 소수자 문제가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과 인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자아이라도 성적 정체성이 여성이라 여자아이들이 입는 옷을 입고,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하고,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한다면 존중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을 생물학적(신체적) 전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전환(social transition)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새로운 성적 역할에 익숙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겁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뭔가 문제가 있는 존재로 바라보지만, 사실 트랜스젠더로서 겪는 문제는 대부분 본인의 문제라기보다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의 문제입니다. 사춘기 전까지는 주된 인간관계가 가정과 학교로 제한적이므로 부모가 충분한 교육을 받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해하고 인정해준다면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신체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맞지 않는 변화가 진행되면 일단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유방이 나오거나, 목소리가 낮아지는 등의 변화는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춘기까지 아이의 성적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일단 호르몬 주사를 사용하여 사춘기를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생물학적 전환(biological transition) 과정을 바로 시작하지 않는 것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성적 정체성이 변하거나 성전환 방법에 대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를 늦추는 호르몬은 끊으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도 성적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이제는 신체를 성적 정체성과 일치시키기 위해 성 호르몬을 써서 원하는 방향으로 사춘기를 일으킵니다. 이때 생식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나중에 자녀를 원할 때를 대비하여 정자은행을 이용하거나 난자를 냉동시킵니다. 성인이 되어 신체를 성적 정체성과 더욱 일치시키고 싶다면 젠더 확정 수술을 받기도 합니다.

 

‘사춘기까지 또는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도 성적 정체성이 유지된다면’이라고 말한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적 정체성은 어린 나이에 발현되기 때문에 아이가 다른 성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물론 그 말을 존중해주어야 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남자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공주 역할하기를 좋아한다거나, 여자아이가 머리를 짧게 깎고 모든 면에서 선머슴처럼 굴 때 그것이 진정한 성적 정체성인지 성적 표현의 취향인지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경향이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고, 강력하게(persistent, consistent, and insistent)’ 유지되는지 살펴야 합니다.

 

둘째, 바로 다음에 설명할 넌바이너리나 성적 유동성을 지닌 경우 어느 쪽으로 확정해야 할지 애매합니다. 자신이 완전히 남성이나 완전히 여성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정체성이 자꾸 변한다고 해도 사춘기를 거치면 신체는 어느 한쪽으로 고착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사춘기를 무한정 연기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란 점을 이해한다면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주변 사람은 물론 스스로도 그런 결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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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brook Community Recreation Center의 성평등 화장실

 

젠더 스펙트럼(Gender Spectrum)과 성적 유동성(Gender Fluidity)


4가지 기본 영역을 설명할 때 생물학적 성, 성적 표현,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중간 단계가 있다고 했지요. 각각 간성, 중성적, 양성애자 또는 무성애자라고 했습니다. 그럼 성적 정체성에는 중간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젠더에 대한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트랜스젠더가 진정한 자아를 찾도록 돕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성적 정체성 또한 남/녀라는 이분법적 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트랜스젠더란 생물학적 성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예컨대 생물학적으로 남자아이가 자신을 여자라고 느끼는 상태라는 거죠. 그런데 여자라고 느끼는 게 아니라,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다시 ‘나는 성이 없어(무성, agender)’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속엔 여자와 남자가 모두 있어. 반반 정도랄까?’라는 사람도 있고, ‘나는 1/3정도는 남자고 2/3 정도는 여자인 것 같아’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을 넌바이너리(non-binary) 또는 젠더퀴어(genderqueer)라고 합니다.

 

바이너리(binary)란 이분법이란 뜻이니까, 넌바이너리라고 하면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남녀라고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퀴어(queer)란 본디 ‘기묘한’이란 뜻으로 ‘상궤(常軌)를 벗어났다’는 표현입니다. 현재는 퀴어 퍼레이드, 퀴어 영화 등 주로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성소수자들 중에서도 교육받은 상류층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특권적인 어감으로도 쓰이며, 넓은 의미로는 규범화된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입니다. 그러나 젠더와 결합한 단어로 성적 정체성의 맥락에서 쓰일 때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를 지칭합니다.

 

성적 정체성이 이분법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좀 더 자세히 봅시다. 수평으로 선을 긋고 한쪽 끝을 남성 100%, 한쪽 끝을 여성 100%라고 한다면 가운데는 남성 50%, 여성 50%가 되겠지요? 세 가지 지점 사이에도 남성 10%/여성 90%, 남성 11%/여성 89%, 남성 11.15%/여성 88.85% 등 무수한 경우가 있을 겁니다. 따라서 현재 과학자들은 성적 정체성이 이분법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형태를 띤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젠더 스펙트럼(gender spectrum)이라고 합니다. 좀 복잡하지요? 더 복잡한 것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중 6% 정도는 성적 정체성 또는 성적 표현이 변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아이가 한때는 스스로 남자라고 느꼈다가 어떤 시기에는 여자로 느끼거나, 또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무성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현상을 성적 유동성(gender fluidity)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지요. 존재하는 것을 어떤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재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옳다면 그냥 ‘성평등’이라고 해야 옳은 겁니다.


 

 

#성소수자_LGBT(Q)강병철, 백조연, 이주원, 효록, 오승재 저 | 알마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소수(少數)’를 만드는 것은, 의식 속에서 소수를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내 옆에는 없는 무언가’로 규정짓는 다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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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성소수자_LGBT(Q)

<강병철>,<백조연>,<이주원>,<오승재>,<효록> 공저7,200원(10% + 5%)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 인간을 규정할 때 성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답하는 열쇠다.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질문이 실존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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