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아빠 힘내세요, 염력이 있잖아요

아버지를 향한 일종의 응원가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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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한국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사건, <염력>은 용산 참사의 기억을 결말부의 하이라이트로 재현한다. (2018.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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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염력>의 한 장면


(* 이 영화의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사회의 일상 풍경을 장르적으로 풀어가는 데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KTX라는 공간에 좀비가 등장하는 <부산행>(2016)으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염력> 에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유착한 재벌과 공권력의 폭거라는 배경에 한국영화에서는 생소한 슈퍼히어로가 저항의 아이콘으로 나선다.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아이언맨처럼 슈트가 ‘삐까뻔쩍’ 하던가, 배트맨처럼 히어로가 되는 것에 관한 고민도 해야 할 텐데, <염력> 의 슈퍼히어로 석헌(류승룡)은 행색도 초라하고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을 사용하기까지 고뇌하는 자세도 없어 보인다. 다른 게 있다면 부정(父情), 딸을 향한 아빠의 애끓는 심정이다.

 

석헌은 은행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혼자 살고 있다. 오래전 아내와 헤어지면서 하나뿐인 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지 못한다. 딸의 이름은 루미(심은경)다. 젊은 나이에 치킨 가게를 운영하며 똑순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곳을 개발하겠다며 용역이 들이닥치면서 길바닥에 내쫓긴다. 그 과정에서 딸을 보호하려던 엄마가 사고로 숨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평소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려던 석헌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초능력을 갖게 된 것. 때마침 루미로부터 전화가 오고 반가운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엄마의 장례식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무거운 발길로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석헌은 루미가 용역들과 시비가 붙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후 어떻게 하면 딸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말을 건넨다. “아빠가 이상한 능력이 생겼어” 그리고 염력을 이용해 넥타이를 공중에 띄우자 루미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석현이 초능력으로, <염력> 이 석현을 앞세워서 하려는 건 결과적으로 ‘부권 회복’이다.  <염력> 은 루미가 어릴 때 석현이 가족을 등진 이유에 관해 자세한 사연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추정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애초에 석헌에게는 정의감 따위는 없다. 불량한 용역에 맞서는 루미와 시장 이웃들의 저항을 보고 연대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타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딸에게 호소한다. “야 너 치킨집 그런 거 아빠가 다른 데다 차려 줄게. 너 대학도 가고 공부도 해야지”

 

불의에 맞서기보다 아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에피소드로 미루어 보건대, 과거 석헌은 아마도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되지 않아 루미를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초능력도 얻었겠다 부인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만난 딸에게 이제 제대로 된 아빠 노릇을 해볼 심산이다. 그런 석헌을 위해 영화는 초능력으로 의도하지 않게 용역을 물리치는 설정을 마련한다. 그러자 석헌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던 주변의 반응이 확 바뀌는데 결정적으로 이 대사, “이제 루미 아버지만 있으면 걱정할 것 없는 거 아니에요?” 이에 쑥스러워하는 석헌을 뒤에서 바라보는 루미의 표정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때와는 톤이 사뭇 다르다. 

 

이런 식의 전개를 논리 삼는다면 루미가 그동안 불행했던 건 ‘힘 있는’ 아빠가 부재해서다. 이 가족이 오랫동안 뿔뿔이 흩어져 각자 생계를 유지하며 고난을 겪은 이유는 가장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이 힘이 생겨서 가족도 행복하다, 는 논리를 메시지의 뼈대로 삼는 <염력> 은 그래서 석헌에게 초능력을 하사(?)했다. 부인은 가고 없지만, 딸과의 결합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복원하라는 의도에서다. ‘복원’이라 하면, 이들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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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염력>의 한 장면

 

루미의 치킨 가게를 공권력의 불도저로 밀어붙여 재개발하려는 폭력의 맨 위에는 국가 권력과 결탁한 대기업이 자리한다. 극 중에서 이를 대표하는 인물 홍상무(정유미)는 시장을 철거할 때마다 어깃장을 놓는 석헌이 체포되자 경찰서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능력의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한국사화에서 통용되는 실질적인 정의에 관해 이런 설교를 늘어놓는다. “진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이라고요” 딸을 향한 석헌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루미가 태어났을 때 석헌이 느꼈을 감정이 행복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행복을 깨뜨린 건 돈 없고 권력 없는 흙수저로 낙인찍어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헬조선’의 존재다. 

 

지옥 같은 한국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사건, <염력> 은 용산 참사의 기억을 결말부의 하이라이트로 재현한다. 크레인으로 끌어올린 컨테이너의 경찰 특공대와 용역의 폭력에 대항하겠다고 옥상을 최후의 저지선 삼은 철거민들 사이에서 루미는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하늘로 슝~ 날아오른 석헌은 루미를 구해내고 품에 안아 지상에 안전히 착지한다. 그럼으로써 루미에게 아버지의 지위를 보장받고 행복을 복원할 계기를 마련한다.

 

부권 회복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가져가는 이 영화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산산이 조각난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가장의 능력이 용산 참사와 같은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개선할 수 있는 전제라는 사실 말이다. 연상호 감독이 이를 의도하고 <염력> 을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에 판타지가 강한 장르 요소를 접목한 결과가 지구 평화를 수호하는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와는 다르게 가족을 지키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물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석헌이 부재한 동안 루미와 엄마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강인한 생활력 덕분이다. 경비원 생활로 돈을 벌긴 해도 술이나 마시며 자신을 돌보지 않던 석헌과 달리 루미는 치킨 가게를 잘 운영한 덕에 TV에 나와 청년 사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오히려 슈퍼히어로의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건 석헌이 아니라 루미다. 그런 점에서 <염력> 은 용산 참사를 연상하게 하는 결말의 설정과 다르게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는 깊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조금 과장하면 일상에 치여 힘을 잃은 아버지를 향한 일종의 응원가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가 광고를 타면서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염력> 은 꼭 이렇게 바꾼 것만 같다. 아빠 힘내세요, 염력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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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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