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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직업적으로 요리할 때

성역할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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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발달하면서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남성 의사들이 전통적으로 조산 업무를 해온 산파를 마녀로 만들어 몰아내었던 역사를 떠올리자. 직업의 여성화는 대체로 낮은 임금과 업무에 대한 무시를 동반한다. (2018.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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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에드윈 핫지Francis Edwin Hodge, <예술 클럽의 여성 요리사>, 1935년

 

한 달 전 즈음 우연히 베이킹 방송을 봤다. 베이킹에 거의 문외한인 나는 구워진 빵을 김밥처럼 말아서 스위스롤을 만드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어느덧 빠져들었다. 케이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공예품 제작처럼 보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게다가 심사위원들이 참으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의 빵을 맛보고 다루는 모습 덕분에 나는 긴장하지 않고 눈으로 각종 화려한 빵과 케이크를 즐기고 맛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내가 모처럼 오디션 방송을 즐기면서 봤건만, 딱 한 번 본 그 방송이 그 다음 주에 취소가 되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동료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져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 방영이 아예 취소가 돼버린 것이다. 한 사람의 성추행으로 인해 해당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참여한 10명의 출연자와 방송 제작진들,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를 물 먹이고 말았다. 하비 와인스타인 게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지난 가을 미국에서 터져 나온 와인스타인의 어마어마한 성추행 전력이 폭로된 이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유명한 남성들의 성폭력이 드러나고 있다. 미식의 장도 예외일 수 없다.


오늘날 미디어에서 요리하는 남성이 많이 보인다. 연예인처럼 인기 있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세계적 스타가 되는 사람도 있다. CNN에서는 앤서니 보댕이 배 위에 누워 샴페인과 함께 카리브해 주변의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나오고, 폭스에서는 고든 램지가 팔짱을 끼고 이마에 굵은 주름을 만들며 남의 요리를 품평하고 지휘한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소수의 성공한 요리사는 남성적 이미지다. 이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험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강력한 태도로 누군가를 심사한다.


여성의 요리는 주로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불노동이라면 남성의 요리는 전문 직업인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실제로 ‘셰프’는 남성화되어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손이 따뜻해서 초밥을 쥘 수 없다'라는 속설을 만들어 여성이 일식 요리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듯이, 문화적으로 여성의 성 역할로 여겨지는 요리를 직업으로 가지는 남성들은 자신의 일을 이 성역할과 분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성과 여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손이 따뜻해서 초밥을 만들 수 없다면서 왜 여자의 벌거벗은 몸 위에 회와 초밥을 올려놓고 먹으려고 할까?) 심지어는 여자가 월경을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도 한다. 여성이 만든 음식은 배고픈 식구들을 먹이는 돌봄 형식의 양식이라면 남성의 요리는 기술적이면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마치 싸인이 들어있는 하나의 작품처럼 이미지를 만든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남성 의사들이 전통적으로 조산 업무를 해온 산파를 마녀로 만들어 몰아내었던 역사를 떠올리자. 직업의 여성화는 대체로 낮은 임금과 업무에 대한 무시를 동반한다. 예를 들어 노동강도가 결코 약하지 않은 보육 노동이 왜 임금이 낮겠는가. 여성이 집에서 하는 돌봄 노동의 연장이라고 여기기에 이 여성화된 직업군은 임금이 낮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교사라는 직업도 여성들이 주로 진출하면서 오히려 임금이 낮아졌다.

 

미식의 장에서도 ‘밥하는 아줌마’를 향한 멸시는 ‘세프’를 남성화하는 과정에서 종종 동원되는 태도이다. 남성 요리사들은 부엌을 마초의 세계로 만들어서 이 “여성화의 위협”에 대응한다. 성희롱은 일터를 마초의 세계로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요리라는 세계에서 여성이 겪는 일을 집중적으로 다룬 『여성 셰프 분투기』는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요리사들에게 벌어지는 성희롱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비단 식당 내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직장에서 흔히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여성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할 경우 ‘역시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부엌에 남녀가 섞여 있으면 남성 셰프들의 형제애가 흔들려서 부엌이 잘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269~270쪽)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정작 직업의 영역에서 부엌은 ‘고추’를 보호해야 하는 장소다. 성역할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 직장 내 성희롱은 일종의 자격을 검증당하는 무대 위에 올라가는 일이다. 성희롱을 잘 견디면 남성의 세계에서 일할 ‘자격’을 얻게 되지만 결국에는 ‘너도 즐겼잖아’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성희롱을 지적하면 남성의 세계에서 일할 자격이 없는 피곤한 여성이 된다. 여성의 집 밖 노동은 항상 이러한 시험대 위에 오른다. 얼마 전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가 결국 퇴사한 한샘의 여성 신입사원처럼 노동현장에는 이러한 피해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 1, 2, 3이 언제나 있다.


또한 요리를 하나의 창작 영역으로 보면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미술사에서도 공예는 여성화되고 건축이나 회화, 조각을 남성화시켜 여성이 참여하는 공예를 ‘순수미술이 아닌 것’으로 규정해 왔다. 여성은 규모가 큰 건축 설계나 조각을 할 수 없으며 이름을 남기는 화가가 되기도 어려웠다. 이름 남기기를 두려워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공예품을 개인적인 창작물로 여기거나 싸인을 넣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여성 셰프는 신문 기자에게 레스토랑의 이름을 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레스토랑에 손님들이 몰려오면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여성 셰프들은 미디어에 소개되는 것을 기회가 아닌 위협으로 바라본다.”(129쪽) 얼마 전 왁싱샵 주인이 방송에 나온 이후 어이없이 살해당한 사건이 떠올랐다. 여성에게 미디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온전히 홍보 수단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집 밖에서 요리하는 여성들을 희롱하고 추행하며 집 밖 부엌을 남성화하지만, 집 안 부엌에는 언제나 내게 밥해 줄 여성이 있기를 원한다. “한 여성 요리사는 자신이 7년간 사귀었던 남자와 두 명의 남편을 통해 겪은 일을 이렇게 말한다. 그 남성들도 모두 “부엌에서 일할 때 만난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 제가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요리와 레스토랑만 생각한다는 걸 깨닫고는 “집에서 저녁 식사를 차려줄 아내는 어디에 있는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321쪽)


실제로 많은 여성 요리사들은 결혼 후 여느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병행하기 위해 업무를 조절한다. 식당이란 당연히 사람이 밥 먹는 시간에 문을 연다. 그러니까 여성이 음식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때 집 안의 부엌과 집 밖 부엌 중에서 선택의 문제에 놓인다는 뜻이다. 성역할은 여성들이 직업인으로서 음식 만들기를 방해한다. 여성들은 요리사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고급 식당의 저녁 메뉴를 지휘하는 셰프 자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때도 있다. 반면 남성 요리사들은 집 안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아내 덕분에 집 밖의 부엌에서 경력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여성이 구조적 이유로 스스로 직업을 포기하거나 일을 줄이면 ‘역시 여자는 안돼’라고 낙인찍으며 여성을 뽑지 않거나 관리자로 승진시키지 않고 권력이 없는 영역에 처박아 놓는다. 그렇게 결과를 원인으로 바꿔치기해서 여성이 겪는 문제는 여성이 만든 문제가 되어 돌고 돈다.


 


 

 

여성 셰프 분투기데버러 A. 해리스, 패티 주프리 공저 / 김하현 역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상식적으로 요리 하면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는데도 왜 셰프의 세계는 남성이 장악한 것일까? 어째서 여성 셰프는 남성 셰프보다 한참 뒤처졌다고 인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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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여성 셰프 분투기

<데버러 A. 해리스>,<패티 주프리> 공저/<김하현> 역14,8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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