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인간, 그리고 올해의 책

조금씩 취향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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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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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올해의 작가 현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나만의 올해의 책을 뽑는다. 직업이 MD여서가 아니라 한 해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지지하느냐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7년, 어느 해보다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물론 몇몇은 중도에 포기도 했으며, 사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에 한 권은 꼭 펼쳐보기로 한 신년의 약속은 90% 정도 채웠다. 그 중에서도 한 번 펴다가 다신 덮을 수 없을 기세로 읽어내려 간 책들도 있었다. 조금씩 취향도 변한다는 걸 올해의 책 목록에서도 느낀다. 과거엔 안전하고 따뜻한 세계에 관해서만 보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망하고, 추잡하고, 실패하는 세계가 더 좋다. 이상한 취향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글쎄.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말했었다. “소설이란 도대체, 망할 놈의 인간이 무엇”인지에 관한 글이라고.


2017년, 망할 놈의 인간을 철저하게 잘 보여줬던 나만의 올해의 책들을 공개한다.

 

1.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를 펴자마자 그 두꺼운 페이지를 어떻게 다 읽었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일단 재미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변용을 찾는 솔솔함과 그리스 연극을 보는 듯한 읽기 상태는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마틸드를 보며 함께 좌절하고,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에 마틸드보다 더 분노했다. 그녀를 둘러싸고 얼마나 추악하고 부당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로토에게 몇 번이고 “바보”, “멍청이”라 외쳤다. 괴로운 읽기가 다 끝났을 때야 한 사람의 처절한 인생을 섬세하고, 영악하게 써낼 수 있는 작가에게 경탄을 금치 못했다. 체급이 다른 글쓰기였다.

 

2. 『랩걸』

다른 의미에서 망할 놈의 인간을 보여주는 책. 여성과학자 호프 자런이 나무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과 꿈, 그리고 실패를 진솔하게 서술했다. 나무, 새, 넝쿨, 자연에게서 배우는 삶은 어떤 의미에서 처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생존을 위해, 꿈을 위해 견뎌내는 삶이 끝내 빛나듯. 여성이자 과학자인 그녀가 어떻게 시련을 견뎠는지 나무를 표현하는 문장에서 깊게 느낄 수 있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씨앗이었다.”

 

3. 『온』

시집을 읽었다가 아니라 시집을 두고 울었다. 그게 더 맞는 감상평이다. 2017년 여러 시집을 읽고 감동을 받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계속 아쉬웠다. 시를 읽고 찌르르 울고 싶었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한 시집은 『온』이었다. 진정한 마음을 향해 계속 깨졌던 무릎, 슬픈 것에만 작동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의 무한한 세계와 그 다음 안목이 너무나 기대된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 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중에서

 

4. 『딸에 대하여』

기대되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그 다음 작품까지 만족하긴 사실 어렵다. 2017년은 그 어려운 만족을 기어코 거머쥔 작품이 있었다. 2013년 『중앙역』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었다. 『중앙역』에서 그렸던 세계를 다시 만났으면 했고, 그렇게 잊혀졌다. 2017년, 김혜진 작가가 돌아왔다. 그녀가 그리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찌나 이렇게 현실적이면서도 아플까. 소설은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게 하는 힘이 있다.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둘레는 배 아파 낳은 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엄마의 시선에 침몰하지 않고, 그린과 레인, 그리고 엄마를 수평으로 나란히 그려낸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이해와 세계를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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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유리(문학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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