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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품격을 배우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연재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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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애당초 재판 결과에 따라 죽고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공적 삶과 사적 삶이 일치하는 그런 삶을 추구했다.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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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와 세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세상이 나에게 맞춰주는 경우는 없다. 세상은 나로 하여금 자기 말을 순순히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힘없는 나는 살아가면서 숱한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본디 모습을 지킬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이 어려운 물음 앞에서 실존적 결단을 내린 철학자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살 길을 마다하고 기꺼이 독배를 들었던 단독자다. 철학자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잘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진정한 자존감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또는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모두 제자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이다. 독배를 들고 삶을 마감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은 진정한 철학자의 자존감이 어떤 것인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아니토스, 멜레토스, 리콘 등의 고발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의 죄목은 신성모독과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거리와 광장에서 아테네 젊은이들을 상대로 철학적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군중이 모여들었다. 죄목이야 그랬지만 실제로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던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이 따르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재판이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배심원들을 상대로 자기변론을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그 자기변론의 연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피고 소크라테스가 유ㆍ무죄를 가리는 1차 판결 이전,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2차 판결 직전, 그리고 2차 판결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행한 연설이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고발과 재판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의 말에는 진실이 전혀 없으며, 오직 자신에게서만 온전한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장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장 내용을 하나하나씩 반박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간청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고 설득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분, 명성의 문제는 차치하고 재판관에게 간청하는 것도, 간청을 해서 죄를 벗는 것도 정의롭지 않으며, 오히려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재판관은 정의를 사적 이해관계로 재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판가름하기 위해서 앉아 있는 거니까요.”


자신은 죄가 없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활동을 계속할 것이며, 자기를 죽인다면 아테네에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린 그런 일을 해서 법정에 선 것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훈계했다.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때 옳은지 그른지, 착한 행동인지 나쁜 행동인지만 고려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살게 될 것인지 죽게 될 것인지를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 그대의 생각이라면, 그대의 제안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애당초 재판 결과에 따라 죽고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공적 삶과 사적 삶이 일치하는 그런 삶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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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대면하는 소크라테스적 상황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2400여 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도 살면서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상황에 수없이 직면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처럼 목숨을 거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진실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현실 앞에 굴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나의 정체성이, 나의 삶이 결정된다.


오랜 세월 방송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시험에 들곤 했다. 유난히 정치적 시류를 타는 시사방송에서는 자신을 지키면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방송사와 출연자는 갑과 을의 관계인 것이 현실이다. 스타들이 출연하는 예능 방송도 아니고, 시사방송에 나가고 싶어 전화만 주면 달려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방송사의 요구에 맞춰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고, 맞춰주는 사람은 오래 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맞춰줄 것이냐, 내 모습을 지킬 것이냐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았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던 2012년에는 섭외가 들어오는 대로 다 출연했다면 제법 큰돈을 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 곳을 제외하고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않겠다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저 나의 진실을 지키고 싶었다.

 

진실은 일상 속에서 지켜지는 것


방송 출연에 대한 욕심, 그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을 생각하면 어떤 방송에서, 무엇을 요구하든 맞춰주는 것이 사는 길일지도 모른다. 사실 방송에 많이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굳이 까다롭고 불편하게 처신하지 않는다. 정치적 시류에 따라 말을 바꾼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세를 떨칠 때는 침묵하던 출연자들이, 그가 힘이 빠지고 나니 그때부터 민주투사가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중심 없이 시류를 쫓아가는 모습으로는 나의 진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 생긴 것과 다르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나의 말을 꾸며댄다면 나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방송에서 그까짓 얘기 한번 맞춰주고 말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진실을 지키는 것은 추상적인 의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손가락에 끼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도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문장 하나에, 방송하는 사람은 말 한 마디에 진실이 달려 있다. 때로는 하나의 문장, 한 마디 말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양심이고 힘이다. 소소한 과정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자기의 진실을 지켜냈을 때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유창선 저 | 사우
환자들은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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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창선 (시사평론가)

진보적 시사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요즘은 인문학 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쓴 책으로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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