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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애초에 잘못된 이름

독감 백신, 꼭 맞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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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은 그저 독한 감기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위험한 병이에요. 폐렴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2,000명 이상이 독감 때문에 죽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숫자이지요.” (2017.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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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이유경 씨가 화니프라자 3층 반딧불의원을 찾은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허름한 복도를 지나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환자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약속한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 들어온 사람이 낯선 여자인 것을 확인하자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느 병원이라면 자리에 앉아서 각자 조용히 휴대폰이나 잡지를 볼 텐데. 하긴 오늘 같은 휴일 저녁에 여는 병원이니 평범한 곳은 아닐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접수대의 간호조무사 김희정 씨가 살갑게 말했다.
 
“왔어? 접수하고 바로 진료 보면 되니까 잠깐 기다려.”

 

대기실에 환자들이 있어 순서를 제법 기다려야 할거라 생각했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진료를 받은 모양이었다. 유경 씨는 문득 속이 메슥거려 눈살을 찌푸렸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입덧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임신 12주 째였다. 첫째 때는 심하지 않았던 입덧이 이번엔 유독 심해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했다. 그나마 이번 주부터 식욕이 회복되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 터였다. 고개를 들어 심호흡을 하던 중에 대기실 벽에 붙은 포스터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겨울, 건강을 준비할 때!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 독감예방접종 안내 - 지정 병의원과 보건소를 찾으세요.”

 

독감예방접종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틀 전이었다.
 
“임산부는 독감예방접종을 꼭 해야한다고 하던데, 나도 맞아야 하지 않을까?”

 

“임신하면 약도 조심해 먹어야 하는데. 주사 맞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

 

“하긴 지난번 임신 때도 안 맞았는데. 독감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해. 역시 안 맞는 게 나으려나….”

 

임신과 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유경 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임산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니는 병원에서 독감예방접종을 권해 맞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해 안 맞았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주사를 맞은 경우에도 접종 시기는 제각각이었다. 어느 병원에선 임신 초기에 맞으면 안된다고 했고 다른 곳에선 임신 시기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김희정 씨가 떠오른 것은 그날 오후였다. 1년에 두어 번 동창 모임에서 만나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개인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휴대폰에 그녀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주사를 맞을지 말지 고민하는 유경 씨에게 그녀는 일단 병원에 와서 상의해볼 것을 권했다.

 

“입덧이 심하신가 봐요.”

 

진료실 의자에 앉은 이유경 씨는 의사가 건넨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조금 나아진 편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임신 초기란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얼굴이 핼쑥하고 안색이 파리해 보여서요.”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 까칠한 표정의 의사였다. 순간 ‘선생님 혈색도 썩 좋아 보이진 않네요’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라 유경 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독감예방접종 때문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독감주사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병치레가 거의 없었고 감기도 안 걸리는 편이거든요. 가끔 감기 기운이 있어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고요. 제가 약 먹는 걸 원래 안 좋아하기도 해요.”

 

“꼭 약을 먹거나 병원에 올 필요는 없지요. 감기 걸렸을 때 약을 안 먹으면 일주일 가고 약을 먹으면 7일 간다는 말도 있는걸요.”

 

의사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지만 이유경 씨에겐 그걸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예방접종이라는 게 균을 집어넣는 거잖아요. 안 맞던 사람이 맞으면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고 해서 엄두가 안 나네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끊고 잠시 망설였다.

 

“중금속이나 방부제가 들어 있어서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는 말들도 있고요. 예전에 독감주사를 맞고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어요. 그래서 임신 중에 주사를 맞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 출산하신 분들이 독감주사는 꼭 맞으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독감은 그저 독한 감기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위험한 병이에요. 폐렴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2,000명 이상이 독감 때문에 죽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숫자이지요.”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생각보다 큰 숫자에 놀랐다.

 

“독감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독감 자체보다는 합병증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주사를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은 경우에요. 노인의 경우 독감으로 사망할 확률이 젊은 성인보다 수십 배 높기 때문에 꼭 예방접종을 해야 하지요. 노인만큼은 아니지만 임산부도 독감에 걸리면 일반 환자보다 증세가 심하고 합병증도 더 잘 생기기 때문에 주사를 맞는 게 좋아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어요.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에선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거든요. 꼭 필요하다면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것 같은데 그런 말씀을 안 하셔서요.”

 

“모든 의사가 예방접종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만약 제 아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예방주사를 맞게 할 겁니다.”

 

말투가 쓸쓸했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진료받는 와중의 느낌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 이유경 씨는 그렇게 느꼈다. 의사는 말을 멈추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가을 달이 호젓했다.

 

“독감에 걸리면 조산이나 유산이 될 확률이 높아지지요. 아이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해요. 산모가 예방주사만 맞아도 태어난 아이가 독감에 걸릴 확률이 절반은 줄어듭니다. 독감예방접종은 엄마는 물론 뱃속 아이에게도 안전해요.”

 

“부작용이 심하진 않을까요.”

 

“어떤 약, 어떤 주사든 부작용은 다 있습니다. 하지만 독감예방접종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은 100만 명 중 한 명 정도에요. 의사도 접종 대상자라 저 역시 해마다 맞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12주 째라고 하셨지요? 독감예방접종은 임신 어느 시기에나 가능해요. 오늘 주사를 맞고 가셔도 되고 아님 좀 더 생각해본 뒤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이유경 씨가 진료실을 나왔을 때 대기실엔 아까 보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있었다.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병원 대기실에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리둥절한 그녀의 표정을 본 김희정 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이 건물 사람들이야. 요즘 독감예방접종 시즌이기도 하고. 한꺼번에 와서 저러고들 있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중년 남자 둘, 그리고 젊은 남자 하나였다. 맨 오른 쪽에 엉거주춤 앉은 남자가 왼쪽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팔이 뻐근하네. 부작용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어째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

 

비쩍 마른 체형에 눈 밑이 어둑어둑한 게 평소에도 감기를 달고 살 것 같은 얼굴이라고 유경 씨는 생각했다.

 

“좀 그러다 말 거요. 나는 매년 맞는걸. 그나저나 최 사장님은 업종을 바꿔야 할 것 같아. 당뇨병도 있다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밤낮이 바뀌어 사니 몸이 축나지 않고 배겨? 환갑이 넘은 나보다 최 사장 같은 사람이 더 조심해야지.”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아이고, 누님이야말로 연세가 있으니 건강 챙기셔야지. 게다가 우리 상가에서 제일 중요한 번영회 회장님인데 독감으로 앓아눕기라도 하면 안 될 일이죠.”

 

호들갑을 떨며 말한 것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였다.

 

“그러는 한 원장은 나이도 아직 한창인데 주사를 왜 맞는가?”

 

“제가 워낙 천식이 있잖아요. 기원 안에 사람이 많아서 공기가 나쁜 건지 항상 기관지 상태가 안 좋아요. 임 관장님은 어때요? 운동하는 사람이라 감기는 모르고 살 것 같은데.”

 

“아, 뭐… 저는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지요. 젊은 사람들은 안 맞아도 된다고 하던데, 그래도 도장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 그냥 맞고 있습니다.”

 

“주사를 맞긴 했는데, 이게 제대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작년에도 맞았는데 겨울에 감기로 고생했거든요.”

 

편의점 최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자 번영회 회장인 홍영자 씨가 대꾸했다.

 

“아니야. 난 독감주사를 맞으면 감기에 걸리더라도 확실히 수월하게 지나가더라고.”

 

“독감은 감기와 다른 병이에요.”

 

진료실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의사가 진료실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는 유경 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컸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종류도 다르고 치료 방법도 다르거든요. 그러니 독감주사를 맞고도 감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사를 맞고 감기가 덜하다는 것도 기분 탓일 거에요. 애초에 서로 다른 병에 ‘독한 감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부터 잘못된 거죠.”

 

“우리 상가 주치의인 이 원장님이 그렇다고 하면 맞는 거겠지. 안 그래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얌전히 그의 설명을 듣던 사람들이 홍영자 씨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사람이나 병이나 뭐든 이름을 잘 지어야 해. 내가 우리 기원 새로 열 때 이름 받으러 점집에까지 갔었다고 말했던가? 근데 아직도 마음에 썩 안 들어. 여기 병원처럼 멋들어진 이름으로 정했어야 했는데. 반딧불 의원이라. 얼마나 좋아?”

 

한 원장의 너스레에 의사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이렇게 오래 비우셔도 되나요? 자, 이제 오늘은 그만 해산하세요.”

 

김희정 씨가 손뼉을 쳤다. 사람들이 못내 아쉬운 듯 병원을 나가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그냥 두면 끝이 없다니까.”

 

그녀는 이유경 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접수대 옆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이유경 씨가 그녀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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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독감과 감기는 원인, 증상,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데 반해, 감기는 200여 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단독 또는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감기에 대한 백신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독감에 대한 백신은 만들 수 있다. 단지 바이러스가 조금씩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매년 새로 만들어진 백신을 맞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독감(毒感)이란 이름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1702년 <승정원일기>에 독감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이후 여러 학자들의 문집에도 쓰였으므로 최소한 300년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독감이 현재의 인플루엔자를 지칭한 것이 맞다면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은 열과 기침을 동반한 이 병이 일반적인 감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300년 전에 ‘독감’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였다면, 오늘날 독감과 감기를 혼동해 생기는 예방접종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독감예방접종의 우선 대상자는 50세 이상 성인이며 기타 면역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성질환자와 임산부도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된다. 임산 중에 독감예방접종을 하면 산모와 신생아 모두 독감에 걸리거나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줄어든다. 하지만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에 비해 임산부의 독감주사 접종률은 매우 낮아 5~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연구에 따르면 독감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접종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리고 태아에게 해로운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다. *

 

* 강희선, <임산부들의 임신 중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에 대한 인식>, 여성건강간호학회지 제17권, 제3호,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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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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