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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와 ‘날틀’ 어떤 게 우리말일까요?

최종희의 『열공 우리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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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일수록 모국어를 풍요롭고 정확하게 쓰는 사람의 품격이 돋보입니다. 우리는 국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모국어의 넓고 깊은 세계로 안내합니다.

비행기.jpg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우리말로 하면 날틀이다.”


옳은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이런 착각을 하는데, 이것은 우리말과 순우리말의 개념을 혼동한 생각입니다. 얼핏 보면 우리말과 순우리말이 같은 것 아닌가 싶지만,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뜻을 지녔습니다.


먼저 순우리말에 대해 설명하자면, 순우리말은 우리말 중에서도 고유어만을 이릅니다. 다른 말로는 토박이말이라고도 하지요. 우리말은 순우리말 외에도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즉 우리말이 순우리말의 상위 개념이지요.

 

bus는 우리말이 아니지만 버스는 우리말 

 

그럼 우리말에는 순우리말 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한자어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중국 문화권과 밀접한 교류 속에서 살아왔기에 한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말들이 많습니다. 바로 위에서 나온 비행기가 그렇습니다. 한자로 飛行機를 우리는 한글로 비행기라고 적습니다. 한자나 외국어도 한글로 적으면 우리말이 됩니다.


이를테면, 알파벳으로 적은 bus는 영어죠. 분명 외국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글로 버스라고 적는 순간 이 단어는 외래어로서 우리말에 듭니다. 빵 또한 어원은 포르투갈어에서 온 것이지만 어엿한 우리말이지요. 담배 또한 마찬가지로 그 어원을 따져보면 포르투갈어 tabaco가 일본어 タバコ[tabako]를 거쳐 변한 말입니다. 어엿한 우리말입니다.

 

우동이나 라면을 끓여먹는 냄비를 봅시다. 원래 한반도에는 냄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가지고 들어오면서 보급되어 우리도 쓰게 되었지요. 일본어로는 なべ[nabe]라 적습니다. 나베라는 발음이지요. 이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냄비라고 발음하면서 우리 생활에 일상적으로 쓰게 된 것이지요. 이들 모두 우리말입니다. 순우리말이 아닐 뿐이죠.

 

우리말은 순우리말보다 훨씬 넓은 범위


다시 정리해보면, 우리 민족 고유의 토박이말 즉 순우리말은 아니었지만, 한자어나 외래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며 한글로 표기한 말은 우리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飛行機라고 적으면 한자일 따름이고 우리말이 아니지만, 비행기라고 적으면 한자어로서 우리말이 되는 것이죠.


예전에는 飛行機라고 적어도 우리말로 인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신문 기사에서는 대개 한자를 한글에 딸린 괄호 안에 적지 않고 한글 없이 단독으로 드러내어 적었습니다. 이를 국?한자혼용 표기라고 하지요.


그러던 것이 2005년 7월 28일부터 시행된 국어기본법(법률 제7368호)에 따라 “공식 문서에는 국?한자혼용 표기를 해서는 안 되며, 필요할 경우에 한하여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倂記)”하도록 했습니다. 한자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도 이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모두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어심의회에서 심의를 거쳐 외래어로 인정을 받으면 국립국어원이 발간?관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오릅니다.


한국인들의 언어 생활에서 외국어를 불필요하게 많이 쓰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언어 순화운동 차원에서 외래어들을 고유어로 변환하여 쓰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날틀’이라 표현한 것은 이런 운동의 일환인 듯합니다.


그런데 현재 날틀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모형 비행기 제작이나 경연대회에서 일부 쓰고 있긴 하지만 표준 국어 낱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말을 쓰는 언중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겠죠.

 

자 그럼 이제 우리말과 순우리말 그리고 외래어, 한자어의 차이가 분명해졌나요?
종합적으로 다시 한 번 개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개념 정리


국어(國語) : 한 나라의 사람이 자기 나라의 언어를 일컫는 말. 한국인에게 국어는 한국어이고, 일본인에게 국어는 일본어이다.


우리말 : 국어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말”이다. 순우리말(≒토박이 말, 고유어) 외에 한자어, 외래어, 속어/비어, 사투리/방언, 은어/변말, 고어, 순화어, 신어 등을 포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화어(북한의 표준 규범 언어)를 내포하는 ‘북한어’도 포함될 때가 있다.


토박이말 :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한자어/외래어)이다.

 
순우리말(純-) :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른다.


한자어(漢字語) : 한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말. 한글 표기를 원칙으로 하고 필 요에 따라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한다.


외래어(外來語) : 버스/컴퓨터/피아노 따위와 같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 처럼 쓰이는 말(↔토박이말/고유어/순우리말)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게 언어이고 우리말인데, 현실에서는 외국어는 열심히 배워도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려는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모국어는 그저 저절로 아는 것이고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죠. 바로 이런 인식이 우리의 언어 생활 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무려 50만여 어휘를 수록하고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어휘는 3천여 단어 수준에 불과합니다. 영어는 1만 단어, 프랑스어는 3만 단어가 일상어휘로 쓰이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빈약한 어휘력이 국어의 풍요로움을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지 짐작 가능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말의 넓고 깊은 세계를 함께 산책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열공 우리말최종희 저 | 원더박스
『열공 우리말』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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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종희

“언어는 그 사람”이라는 소신을 지닌 우리말 연구가이다.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 대표이며, 경기교육청 ‘학교로 찾아가는 인문학’ 강사이다. 충남 서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퇴직하고 나서 꼬박 5년을 바쳐 완성한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은 현재 국립도서관에 “마지막으로 납본된” 중대형 종이 사전이 되었다. 『박근혜의 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워크북』, 『내가 따뜻한 이유』(공저) 등을 썼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 혁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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