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희망을 향해 백조처럼 날아오르다

대처리즘에 저항하는 약자들의 저항 혹은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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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화합과 마을 주민들의 도움과 같은 연대다. 수직적인 지배 환경이 거셀수록 수평의 문화는 더욱 힘을 발하는 법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단순히 빌리의 성공담을 넘어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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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가 재개봉(2017년 1월 19일)한다. 지난해 재개봉 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때 조만간 <빌리 엘리어트>를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2001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주변의 편견을 딛고 발레로 성공한 소년의 성공담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 번을 더 볼 기회가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영화였다. 그에 대해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재개봉으로 기회가 생겼다.

 

빌리(제이미 벨)는 엘리어트 가문의 막내다. 이 집안에는 전통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남자는 모두 권투를 배웠다. 당연히 빌리도 마을 체육관에서 권투 강습을 받는다. 근데 주먹을 휘두르는 폼이 영 익숙하지가 않다. 대신 체육관을 반으로 갈라 소녀들이 교육받는 발레에 관심을 보인다.

 

빌리가 토슈즈를 신고 플리에(Plie) 자세를 취하자 소녀들이 키득키득 웃어댄다. 이 정도 놀림쯤이야 견딜 만 하다. 문제는 남자들이다. 빌리가 발레를 배운다는 소식이 아빠와 형의 귀에 들어가자 수난이 시작된다. 아빠는 남자가 망신스럽게 무슨 발레냐며 빌리의 외출을 금지한다. 형은 정부의 탄광 폐쇄에 맞서 투쟁이 한창인데 춤이나 추고 자빠졌느냐며 쌍욕을 퍼부어댄다. 

 

발레가 좋으면 남자라도 할 수 있는 거지, 라고 빌리는 생각하지만, 빌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가 않다. 빌리가 나고 자란 영국 북동부의 더럼(Durham)은 탄광으로 유명하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 석탄을 캐는 일이 워낙 거칠다 보니 남성적인 규칙과 기운이 지배적인 곳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집안에서는 법에 가깝고 이를 어긴다는 건 곧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남성적인 환경에서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권투를 배우면서 샌드백을 두드린다.

 

하지만 빌리는 사람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권투보다 아름답게 몸의 곡선을 뽐낼 수 있는 발레에 더 마음이 간다. 위압적인 샌드백을 상대로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기보다 수평의 발레 바에 몸을 맡겨 리듬을 타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빌리 엘리어트>는 수직적인 환경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꿈꾸는 아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권투의 샌드백과 발레의 바와 같은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가 서로 힘겨루기 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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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1984년이다. 당시 영국은 보수당의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시대였다. 흔히 ‘대처리즘 Thatcherism’으로 불리는 이 시기에 영국은 경제개혁을 추진한답시고 복지를 위한 공공 지출을 삭감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했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규제했다. 이에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더럼과 같은 탄광 지역이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탄광 폐쇄가 줄을 잇자 일자리를 잃은 광부가 속출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이들은 일자리를 돌려달라며 투쟁에 나섰고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시위를 억압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더럼의 주민들은 남들처럼 먹고 살게 해달라며 탄광 폐쇄 철회를 요구했지만, 대처의 보수 정부는 이를 못 들은 척 했다. 가난한 이들은 더욱 곤궁한 삶으로 몰고 잘 사는 사람은 더욱 부자로 만들며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겼다. 탄광에서의 고된 노동을 퇴근 후 펍에서의 맥주 한 잔으로 풀며 삶의 시소를 잔잔한 수평선으로 이끌었던 주민들에게 대처리즘은 평행 추를 절벽으로 기울인 폭력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크리스마스에 엘리어트 가족은 붕괴 일보 직전이다. 형은 투쟁에 나섰다가 구속된 상태고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하는 아빠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겠다며 살아생전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이용한다. 탄광 일을 하지 못하니 이제 더는 살아갈 방도가, 아니 희망이 없다.

 

그렇지 않다.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존재하는 법이다. 계집아이나 하는 운동이라며 빌리를 몰아 세웠던 아빠는 막내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화려한 발레 기술을 뽐내자 마음이 바뀐다. 발레만이 빌리를, 그의 기족을 삶의 절벽에서 구해줄 동아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즉시, 아빠는 투쟁을 멈추고 노동자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정부 직속의 탄광에서 최저 생활비를 받아 빌리의 발레 교습비로 충당한다. 마침 이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 더럼의 주민들 또한, 빌리가 런던의 로열발레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푼돈까지 모아 십시일반 한다.

 

대처리즘에 저항하는 약자들의 저항 혹은 생존법이라고 할까. 그제야 빌리는 아빠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형과 함께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이별을 아쉬워한다. 그동안 엘리어트 가문을 지배했던 상명하복의 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빠와 형은 다시금 굳은 얼굴로 지하의 탄광으로 내려가지만, 과거와 다르게 견뎌낼 희망이 생겼다. 런던의 지상 무대에서 공중으로 화려하게 날아오를 빌리의 발레가 그것이다. 폭압적인 시대에도 살아갈 방법은 있다. 가족의 화합과 마을 주민들의 도움과 같은 연대다. 수직적인 지배 환경이 거셀수록 수평의 문화는 더욱 힘을 발하는 법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단순히 빌리의 성공담을 넘어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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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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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감독:<스티븐 달드리>, 주연:<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27,800원(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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