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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이 주는 마음의 변화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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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끝났다고, 토요일마다 모이는 것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고 위정자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광장이란 경이로운 광대한 공간 경험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일으킨 다음인 사람이 이미 수백만 명이나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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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토요일 오후, 시청부터 광화문 광장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주 5일 근무, 토요일 광화문 출근이라는 새로운 삶의 리듬이 생겼다. 위험하지 않을까 주저하던 사람들은 막상 참석을 해보면 놀란다.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TV나 뉴스가 설명해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1980년대 중반에 시청과 광화문을 숱하게 나가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번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두툼하게 옷을 입고 광화문에 나가고 있다. 1980년대가 비장한 감정과 울분,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이 주요 정서였다면, 올겨울 광화문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긴장과 결연한 의지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1980년대이건, 몇 년 전 광우병 촛불집회이건, 이번의 광화문에서나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공간의 한 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신기하게 우리의 마음의 한구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험을 선사한다. 그 핵심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같은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든든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이렇게 크게 뭉칠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막상 수많은 사람이 그 넓은 공간을 모두 채우고,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이 빼곡하게 채운 채 촛불을 다 같이 껐다가 다시 켜는 광대한 광경에 함께 한다. 하물며 시국에 대해서 비판적이던 사람이라 해도 이 공간에 함께 머무르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였다. 공간의 경험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망설이던 사람들의 마음은 몇 번의 광화문 집회 참석이 망설임을 확고한 신념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인간의 심리가 먼저이고, 공간은 그것에 맞춰 구성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인간의 심리와 공간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주 반복되는 광화문과 전국 각지의 촛불 행진이 점점 불어나고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다른 곳에서는 해보지 못할 심리적 체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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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이런 의문에 참고가 될 책이 있다.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Places of the Heart)』로 부제가 일상생활의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 of Everyday Life)이기도 하다. 그는 워털루 대학의 인지신경심리학자이자 도시현실연구소 소장으로 신경과학과 건축 및 환경설계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이 집을 짓고, 공간을 선택하는데, 또한 공간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을 담는 그릇의 기능을 한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신경학적 측면으로 인간이 안전하게 느끼는 공간과 위치가 있어서 그런 자리를 선호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토론토의 로열온타리오 박물과 신관이 뾰족한 크리스털 결정체가 삐죽삐죽 삐져 나온 외형인데 사람들의 강한 반감을 불러왔다. 이는 그런 테두리가 본능적으로 위험하고 다치기 쉬운 외형을 갖는 형태로 보고 위험신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지각특성이 환경을 위험하게 인식하게 자극, 원시회로를 자극해서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데 공포를 지각하는 편도체 활동이 증가한다. 반면 둥글둥글한 곡선을 보면 안와전두피질과 대상피질과 같은 보상, 쾌락 관장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장소와 상호작용은 동물과 공유하는 깊은 차원의 생물학적 원칙에서 나오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이 그러하듯이 자연스럽게 어떤 공간에서 자리를 잡을 때 가운데보다는 가장자리를, 낮은 곳보다는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을 선호하고 그런 자리를 잡을 때 안정감을 갖는다. 우리가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을 때 일반적으로 하는 선택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매우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자. 백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 함께 있는 것, 또 그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지평, 경험과 인지적 예측의 끝을 벗어나는 상황이다. 이때 인간은 경외감을 느낀다. 경외감은 광대함과 순응이라는 두 가지 고유 특성을 갖는다.

 

머리로는 인식하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압도당하는 광대함을 느끼고 나면 그 자극에 반응해서 세계관을 조정할 필요를 느끼는 방식을 교정해야 할 순응의 필요성을 갖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기가 갖고 있던 이성의 레파토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경험했기에 거기에 따라 내 생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는 흔히 종교적 체험과 맞닿아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대성당과 같은 종교 건축물은 그 규모가 인간의 상상 이상으로 크게 짓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광대한 경험을 하면서 나라는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고, 함께 한 사람들과 나 사이의 경계도 무너지며 합일의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그 공간의 목적이 내가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나라는 존재를 변화시킨다. 더 나아가서 육체의 틀에 담긴 것보다 더 큰 존재의 일부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설득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조차도 바꿀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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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대척점,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최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외감 경험을 통한 순응이 아닐까? 나만 혼자 분노하고, 고립되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상상 이상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합일의 경험을 해보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가져온 생각의 틀을 과감히 바꿀 순응의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시선은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와있는지 보고 싶다. 그러니 평소와 달리 시선이 위로 향한다. 끝없는 인간의 물결을 확인하며 받는 경외감 주는 어떤 경험은 시선을 위로 올라가게 만들어져 있다.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순전히 생존하기 위한, 행동, 신체유지와 보호에만 급급하던 한 개인, 또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그 두려움으로 자신을 얽매는 세속의 사슬을 끊는 기회를 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시선을 위로 향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평소와 달리 자신을 더 큰 존재로 느끼고 긍정적 정서와 위안을 느끼게 된다.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실험도 소개된다.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멜라니 러드(Melanie Rudd)는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에는 폭포, 고래, 우주탐사와 같은 경외감을 느낄 짧은 비디오 보여주고, 대조군에는 거리행진, 하늘에 색종이 날리기와 같은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후의 심리변화를 보니, 경외 체험을 한 집단에서 주관적 시간의 확장이 되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경험하고, 남을 돕는 것과 같은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했다. 이와 같이 생각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시간적 지평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척점이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이다. 전형적인 거대건축물이다. 그 앞에 선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경외감을 갖도록 설계되어있다. 그래서 그곳을 방문한 사람은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압도당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의 주인은 자신이 자신보다 더 큰 그 공간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는 자기인식을 하고 있다. 한 개인이 이런 거대 건축물과 맞서 대등해지기 어려운 이유다. 역사적으로 왕궁이나 신전과 같은 거대건축물은 권력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성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고 해석한다.

 

전국 각지에서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경이로운 공간과 그 안에 머문 사람들이 한 체험은 위정자들이 의도적으로 세워놓은 지배의 거대건축물에 맞설 힘을 개인에게 부여하고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 나약한 개인이 아니라 대등한 힘을 가진 ‘우리’로 맞설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청와대를 수십만 명의 인간 띠로 포위하고, 탄핵을 앞두고 국회를 에워싸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거대건축물이 평소에 개인에게 억압의 상징으로 기능하던 것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경외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마음의 궤적을 갖게 될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바라건대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집회가 끝났다고, 토요일마다 모이는 것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고 위정자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광장이란 경이로운 광대한 공간 경험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일으킨 다음인 사람이 이미 수백만 명이나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은 내면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노력뿐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숨 쉬는 환경과 공간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경우에 따라 극적이며,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콜린 엘러드 저/문희경 역/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콜린 엘러드는 자신을 비롯해 여러 신경과학자, 건축학자들이 새로운 기술에서 얻은 통찰을 책 속에 풍성하게 담아낸다. 오늘날 익숙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기술들이 나날이 등장하여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는 한편,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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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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