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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켜라

누구나 꿈꾸는 여행자의 도시, 체코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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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카를교에 서 있으면 왜 프라하를 찾은 모든 여행객이 최고의 야경 도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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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유럽 여행을 꿈꿀 때 여행 일정에 반드시 넣고 싶은 도시가 있다. 바로 프라하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이 ‘북쪽의 로마’라고 불렀고, 훔볼트가 ‘보석의 도시’라고 칭송했던 천 년이 넘는 고도 프라하. 1992년에 프라하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고 1993년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어 프라하는 체코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프라하 여행의 시작은 중앙역에서 가까운 신시가지의 중심 바츨라프 광장이다. 신시가지라고 하지만 134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카를 4세가 황제에 어울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도시다. 옛날 신시가지는 건초 시장, 소 시장, 말 시장으로 구성된 세 개의 큰 상권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주로 장인들과 상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이 주위에는 호텔, 상점, 책방,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사실 바츨라프 광장은 길이 750m, 폭 60m의 커다란 도로이다. 이 광장의 끝에는 체코의 최대 박물관이자 세계 10대 박물관의 하나인 웅장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보헤미아의 수호성인 바츨라프의 기마상으로 광장의 주인이다.

 

진리를 지킨 ‘벨벳 혁명’의 도시

 

10세기경 체코의 국왕이었던 바츨라프는 나라가 위기를 맞았을 때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서 깊은 잠에 빠진 기사들을 깨워 이들을 이끌고 적군을 격퇴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체코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국민을 뭉치게 하는 체코 민족의 수호성인이자 체코의 영웅이다. 바츨라프 동상은 프라하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사람들은 약속 때 “말꼬리 아래서 보자.”고 말하기도 한단다.

 

또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독립 역사의 상징적인 곳이다. 먼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탄생이 이곳에서 선포되었고, 1968년 두브체크로 대표되는 개혁 공산 반대 집회가 일어났을 때 1969년 당시 카를 대학교 철학과 대학생이었던 21세의 얀 팔라흐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분신한 곳도 바로 국립박물관의 계단이었다.

 

그가 죽은 뒤 20주년 되던 1989년 커다란 시위가 프라하를 휩쓸었다. 1989년 11월 조국의 자유가 임박했다고 믿었던 30만 명이 넘는 체코 사람들이 바츨라프 광장에 모였고 호텔 에브로파의 반대편 건물의 발코니에는 ‘프라하의 봄’의 영웅인 두브체크, 그리고 자유를 외치다가 투옥되어 갓 출옥한 카리스마 넘치는 극작가 바클라브 하벨이 서 있었다. 하벨은 마이크를 손에 쥐고 군중을 향해 체코의 자유가 눈앞에 왔다고 외쳤다. 추운 11월 저녁, 수천 명의 시민이 뜻을 모아 자신의 열쇠를 흔들면서 자유를 외쳤다. 10개월 후 체코의 공산주의 정부는 무너지고 시민들은 자유를 찾았다. 무혈 혁명인 ‘벨벳 혁명’의 성공이었다.

 

광장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다가 구시가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시가지를 향해 갈수록 건축물들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고풍스러움과 기품이 느껴졌다. 그렇게 골목을 걷다가 어느 순간 탁 트인 광장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여유로움이 넘치는 노천카페와 광장을 둘러싼 기품 있는 건물들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마저 빼앗아버린다. 이 구시가지 광장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구시청사, 일명 쌍둥이 탑이라고 불리는 틴 성당, 바로크 양식의 성 니콜라스 성당과 성 토마스 성당, 그리고 로코코 양식의 골츠킨스키 궁전 등 화려하고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로 둘러 싸여있다.

 

이 구시가지 광장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광장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동상이었다. 이것은 중세 보헤미아의 종교 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다. 그는 일반 서민들을 위해 어려운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미사를 집전하는 등 체코의 종교 개혁을 주도하였고, 가톨릭의 부정부패와 면죄부 판매, 성적 문란 등을 지적하고 비판하다가 이단자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동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켜라.”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 위대한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체코의 자유와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리라. 나는 그 동상 곁을 서성이며 오후의 햇살이 따사로운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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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광장 한쪽에 많은 관광객이 건물의 한 곳을 바라보고 있어 자리를 옮겼다. 유명한 천문 시계탑이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구시청사의 건물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천문 시계는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1437년 제작된 이 시계는 당시 천문학의 중심 이론이었던 천동설에 기초한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위쪽 시계 양옆에 있는 인형들은 허영, 탐욕, 시신, 이교도의 침략이라는 네 가지의 두려움을 나타내고, 아래쪽 시계의 양옆에 있는 인형들은 역사 기록자, 천사, 천문학자, 철학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매시간 정시가 되면 작동하는데 먼저 시계 오른쪽에 설치된 해골 인형이 오른손에 감긴 줄을 잡아당긴 다음 왼손으로는 모래시계를 들어 올려 뒤집는다. 그러면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시계태엽에 해당하는 예수의 12 사도를 형상화 한 인형들이 성 베드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이 행렬이 끝날 무렵 수탉이 홰를 치고 시계는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린다.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눈을 깜박이기라도 하면 흐름을 놓쳐 버리기 일쑤다. 정교한 천문 시계도 재미있지만, 정시만 되면 시계 앞에 가득 모여 한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각양각색의 표정이 더 재미있다.

 

구시청사를 빠져나오면 카를 거리가 나온다. 구시가 광장에서 카를교에 이르는 좁은 길이다. 구불구불 난 옛길에는 관광객을 위한 유리 공예, 마리오네트 인형 도자기 등을 판매하는 선물 가게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이 상점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코 가게마다 걸려 있는 각양각색의 마리오네트 인형이다. 인형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인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공연 중 하나다. 르네상스 때부터 19세기에 걸쳐 성행된 이 인형극은 작은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인형을 조작하면서 보여주는 연극이다. 옛날에는 인형 머리에 나뭇개비나 철사를 붙여 조작하였으나 18~19세기에 몇 가닥의 실로 조정하는 법을 연구해 냈다고 한다.

 

동화 속 장면 같은 인형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을 따라가면 진짜 동화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된다. 바로 블타바 강과 카를교다. 사실 프라하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이 카를교였다. 프라하 여행의 꽃이라고 불리는 카를교는 블타바 강 위로 펼쳐져 있는 고딕 양식의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블타바 강 서쪽의 프라하 성과 동쪽의 상인 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14세기 보헤미아의 왕 카를 4세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카를교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다리 양 끝에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세워져 있고 다리 양편으로 15개씩 30개의 바로크식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어 일명 야외 바로크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시가 쪽 다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카를교와 프라하 성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 그림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어 그 복잡한 다리 위에서 자리를 잡고 한참을 스케치했다.

 

다리 위에 조각된 30개 성인상은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체코의 최고 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현재 다리에 있는 조각들은 모두 모조품이고 원작품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리 위를 걸어가다 보면 정중앙 부분의 난간에 쌍 십자가 판이 박혀 있는 조각상이 있다. 바로크의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인데 5개의 금별과 충성심을 상징하는 반짝이는 개의 형상이 눈에 띈다.
 
14세기에 얀 네포무츠키는 여왕이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사제였다. 당시 왕은 이 사제를 통해 여왕의 비밀을 알려고 했으나 그는 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는데 그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그런데 그의 시신이 강물에 닿자마자 5개의 별이 나타났다고 한다. 쌍 십자가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일 년 안에 그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다. 단 평생 한 번만 소원을 빌 수 있다고 하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사실 카를교의 진가는 무엇보다 밤에 있다. 건너편 언덕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은 프라하 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푸른 밤하늘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 어찌 보면 카를교의 절정이다. 늦은 밤 카를교에 서 있으면 왜 프라하를 찾은 모든 여행객이 최고의 야경 도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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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마지막은 다시 카를교에서

 

카를교를 건너 길을 따라 약간 오르듯 걸으면 프라하 성 바로 밑에까지 이어지는데 1257년에 조성되어 구시가와 쌍벽을 이루는 중세의 중심도시로 프라하에서 근대 역사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지역이다. 18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카를교에서 프라하 성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먼저 소 지구 광장과 성 니콜라스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소 지구 광장에서 천천히 10분 정도 언덕길을 올라가면 성채 지구가 나온다. 처음에는 프라하 성 바로 옆의 광장 부분만을 성채 지구로 불렀으나 14세기에 지역이 점차 넓어져 블타바 강의 서쪽 언덕까지 포함한 지역을 성채 지구로 부르게 되었다. 특히 성채 지구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옛 대관식 행렬은 흐라차니 광장을 지나 현재 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문 안의 제1 중정과 제2 중정으로 들어가는 17세기의 마티아스 문에서 끝난다. 원래 마티아스 문이 성의 입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라하 성안의 성 비토 성당에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블타바 강 서안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프라하 성은 프라하의 중심이자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다. 현존하는 중세의 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자 천 년 이상의 건축사를 담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여러 양식이 계속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린 것이다.

 

성 비토 성당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오면 ‘황금 소로’라는 아주 작은 골목이 나온다. 자칭 골목여행자라 소개하고 싶은 내게는 어쩌면 웅장한 프라하 성이나 카를교보다 더 매력적인 곳이었다.

원래 이곳은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건설되었으나 1597년 연금술사들의 거주지로 조성되면서 황금 소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골목길의 자그마한 집들이 마치 동화의 세계를 연상하게 하는데 이 거리에는 모두 16개의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이 조그만 거리를 걷다 보면 연금술사들이 골목에서 나와 내 앞을 스쳐 지나갈 것만 같았다. 현재는 주로 기념품점과 선물 가게들인데 황금 소로 입구 첫 번째 집이자 옛 성곽 수비병들이 머물렀던 ‘황금 소로 11번지’의 2층에는 중세의 무기, 투구,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22번지의 하늘색 집은 카프카의 누이동생 집으로 프란츠 카프카가 한때 작업실로 사용했던 곳이다. 카프카는 황금 소로와 구시가 거리에 있는 하숙집을 오가면서 프라하 성을 모티브로 한 <성(城)>을 비롯하여 많은 단편을 집필했다. 저녁이 되면 황금 소로에 있는 집들이 문을 닫지만, 카프카의 작업실은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두고 여행객을 맞이한다.

 

달빛이 고고한 밤 카프카의 작업실을 거쳐 돌아오면서 다시 카를교를 건넜다. 여행객들로 가득했던 낮과는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다. 다리 위에 자욱하게 앉은 안개 너머로 중세의 프라하 사람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길이 아주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방향을 틀거나 급경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 제임스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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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흔들리지 않아배종훈 저 | 더블북
책에는 저자가 직접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도시들 풍경과 역사, 사유가 노트북 자판기를 꾹꾹 두드려 쓰였으며 원색적인 색감의 붓칠로 그림들이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여행지의 파란 하늘을 모티브로 연신 눌러대는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풍광 사진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텅 빈 마음을 충만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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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배종훈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 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1인 5역을 맡아 늘 바쁘게 살고 있다. 서른여섯에 처음 간 유럽에 완전히 중독되어 거의 매년 유럽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돌아와 전시를 열었다. 요즘에는 여행 드로잉 비법을 전수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그림과 글을 쓰는 일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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