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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저탄수화물식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새로운 의학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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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식이 나쁘다거나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잘 모른다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해롭다는 연구가 더 많습니다) 잘 모르는 일에 돈을 걸 수는 있지만 건강을 걸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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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고지방 저탄수화물식 논란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난 의사들과 건강 전문가들이 자료 조사를 마치고 반론을 펴는 중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한 번 넘어간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전문가고 뭐고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이 사태를 촉발한 『지방의 역설』이란 책도 9년이란 세월을 공들였다고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썼다는 생각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지요. 어쨌든 마트의 선반에 버터가 동이 나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치즈와 삼겹살도 판매가 늘어 상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올립니다. 기사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의사인 제가 읽어봐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은 물론 자녀에게도 고지방 저탄수화물식을 시키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 건강에 나쁠 가능성도 염두에 두세요


우리는 왜 돈을 벌려고 노력하나요? 예,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왜 살을 빼려고 노력하나요? 예, 건강해지기 위해서지요. 고지방식이 가장 살이 잘 빠지는 식단이라는 사실은 맞습니다. 그런데 건강에는 나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나 비만이 너무 심한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살을 뺄 목적으로는 해볼 수 있지만 장기적(6개월-1년 이상)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고지방식을 하면 1) 살이 빠져도 당뇨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근육과 간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2) 혈관 내막에 손상을 입혀 심장병과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높습니다. 3) 췌장과 신장에 해롭습니다. 4) 임산부가 고지방식을 하면 태어난 자녀가 비만이 되기 쉽습니다. 5) 장내 미생물총을 변화시켜 장의 염증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부자가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듯이, 살이 빠져도 건강해지지 않는다면 그런 방법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고지방식이 어제 오늘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1970년대에 나온 방법입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씩 유행합니다. 거의 종교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열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고지방 식단의 열렬한 전도사로 책까지 썼던 사람들이 비만과 심장병, 뇌졸중 등으로 조기 사망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 하려거든 알고 시작하세요


고지방 저탄수화물식 = 고지방식 + 저탄수화물식입니다. 고지방이 뭔가요? 고기, 버터, 치즈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주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동시에 탄수화물을 아주 적게 섭취해야 합니다. 탄수화물이 뭔가요? 밥, 빵, 국수, 라면, 감자, 밀가루, 과자, 청량음료가 탄수화물입니다. 요컨대 밥이나 빵을 먹지 않고 계속 기름기 많은 것으로만 배를 채워야 한다는 겁니다. 가능한가요? 설사 아이가 질리지 않고 계속 먹는다고 해도 종일 일에 시달리다 저녁에 어린이집에서 아이 찾아와 같이 밥 먹고 밀린 집안일  좀 하면 자느라 바쁜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능한가요? 외식도 하기 어렵습니다. 온갖 육수에서 양념, 쌈장 등 밖에서 사먹는 거의 모든 것이 설탕과 과당과 소금으로 맛을 냅니다. 고지방식을 하면서 탄수화물은 지금대로 먹으면, 점심은 어린이집에서 먹고, 가끔 외식도 하고, 가끔 과자도 먹고, 가끔 라면이나 치킨으로 야식도 하면 살이 훨씬, 훨씬 더 찝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식 또한 다른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고행이고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3. 유행을 바로 쫓아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제일 중요한 걸 하나 알려드릴게요. 요즘은 정보 과잉 시대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난무하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방송이나 언론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시청률과 클릭 수에 목을 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 특이한 말이 나오면 차분히 따져 보지도 않고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기사화합니다. 기사는 SNS에서 확대 재생산됩니다. 금세 세상이 바뀔 것처럼 난리가 나죠. 그런데 뭔가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효과가 좋았던 방법도 나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방법이 유행하면 바로 쫓아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간 지방이 누명을 써서 억울하다고요? 안 됐네요. 그렇다고 자신과 아이들의 건강을 걸고 지방을 위해 순교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고지방식을 종교적으로 신봉하면서 자신이 입증해 보이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입증할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때까지는? 현재의 원칙을 지키세요. 나도 아이도 몸에 나쁜 음식을 피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고, 많이 걷고, 잠 많이 자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게 현재의 원칙입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 때문에 기사도 되지 않고 SNS에서 공유도 안 되죠. 하지만 이게 진실입니다. 본디 진실은 그리 섹시(sexy)하지 않지요. ‘공부를 잘하려면 열심히 해라!’ 뭐 이런 얘기를 하면 기삿거리가 되겠어요? 그럼 포화지방은요? 나쁘다는 게 현재의 원칙입니다. 원칙이 바뀌면 그때 가서 먹으면 됩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학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뭔지 생각해봅니다. 과학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법입니다. 어떤 현상을 잘 관찰한 후 그 원리를 추정해봅니다. 그리고 추정한 것이 맞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고, 연구하고, 시험하고, 추적합니다. 합리적으로 입증되면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라도 버리고 새로운 원리에 따르는 것 또한 과학적 태도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위대해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권위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과학입니다.


고지방식이 나쁘다거나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잘 모른다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해롭다는 연구가 더 많습니다) 잘 모르는 일에 돈을 걸 수는 있지만 건강을 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만이 많을까요? 왜 이렇게 살이 안 빠질까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지방을 안 먹어서 살이 찌는 걸까요? 사실 범인은 따로 있습니다. 지방은 주연배우가 아닙니다. 우리는 엉뚱한 곳에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다음 글에 범인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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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지방의 역설

<니나 타이숄스> 저/<양준상>,<유현진> 공역22,500원(10% + 5%)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니나 타이숄스는 우리가 지방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60년간 권장된 저지방 식단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통제되지 않은 실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우리의 건강은 위험에 직면했다. 『지방의 역설』은 과학적 조사의 결과물이자, 독선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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