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유정 "운명의 폭력성에 주목한다"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만난 작가들⑨ 소설가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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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운명’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에 따라서 인간은 파멸의 길을 걷기도 하고, 구원을 받기도 해요.

국내외 주목 받는 28인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뭉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한국문학번역원 주최)>가 9월의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펼쳐진다. 최근 장편소설 『종의 기원』을 펴낸 소설가 정유정이 작가축제 참가작가의 릴레이 인터뷰, 그 아홉 번째 주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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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다흠

 

최근 작 『종의 기원』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게 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서 소설가 정유정의 관심을 끌게 되었나요?

 

사이코패스들은 대개 지능이 높을 뿐 아니라, 피상적으로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타인을 조종하는, 이를테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버튼'을 금방 찾아내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사이코패스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모두 제쳐두고 오로지 실용적인 기준에 따라, 대차대조표를 보듯이 냉철하게 판단하니 더 무서운 존재죠. 물론 그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별종'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가 일반인을 대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물론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해야 하겠죠. 하지만 그들은 우리 마음 속 '악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전부 다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표본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마음속에도 분명히 사이코패스가 가지고 있는 ‘악의 조각들’이 하나씩은 모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한 쪽에서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으면서, 한 쪽에서는 아우슈비츠를 짓는 존재잖아요. 인간은 무조건 선한 본성을 타고 났다는 것은 믿지 않아요.

 

취재를 철저히 하시기로 유명합니다. 『종의 기원』을 위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사이코패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사이코패스는 자기감정을 잘 컨트롤해요. 가령,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전을 떠올려 보세요. 부진 끝에 막바지 역전 홈런을 쳐낸 이승엽을 보면서, 보는 우리도 심장이 벌컥벌컥 뛰잖아요(웃음). 그런데 사이코패스들은 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굉장히 차분한 거예요. 물론 그런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죠. 사이코패스들이 굉장히 잘 수행할 수 있는 직업군도 있다고 해요. 가령,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외과의사라던가. 그렇지만 그렇게 영혼 없는 의사가 사람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겠어요? 도덕적으로 마땅히 고민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도 자신의 이익에만 근거해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타인을 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들은 위험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덧붙여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들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오히려 감정이 훨씬 풍부해요.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만 말이에요.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슬프다, 누가 싫다’ 이런 감정을 훨씬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위험한 존재인거죠.

 

그렇다면 작가님은 ‘악인’의 교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신가요?


악인에도 종류가 있다고 해요. 일반인 중에서 심성이 악한 사람, 그런 사람은 교화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이코패스는 의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도 거의 타고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들이 교화되어 ‘선인’이 될 수는 없어요. 아예 다른 인간형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낙인을 쉽게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사이코패스라는 진단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간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이 옳은가의 판단은 쉽지 않아요. 그런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심리학이나 정신의학분야에서도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이다라고 정설로 내세우지 못하는 겁니다.

 

『7년의 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작품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몇 년 전 어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공기총에 맞아 호수에 버려진 끔찍한 사건이 바로 『7년의 밤』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놀랐던 사건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살던 곳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거든요. 바로 길 건너 아파트에 죽은 아이가 살았었고, 범인은 저희 집 바로 옆 단지 아파트라고 하더라고요. 현장 검증도 집 앞 사거리에서 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돌을 던졌죠. 물론 저도 돌을 던져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나쁜 놈의 진실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에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른바 '나쁜 놈'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해요. 우리가 저런 나쁜 짓을 한 놈의 진실을,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런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선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 자신도 언제 '선'과 '악' 중 어느 진영에 서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어요. 내가 늘 ‘선’의 진영에 서있다가도 어느 순간 반대편 진영에 서 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하다못해, 『종의 기원』에서도 이런 내용이 있어요. 유죄인지 무죄인지 가르는 것은 법이 판단하지만, 형량에는 도덕이 끼어든다고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 살아온 방식이 반영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 이면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하는 거죠. 

 

『7년의 밤』은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7년 전 밤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님에게 유난히 기억나는 ‘밤’이나 사건이 있으시다면?

 

저는 운명의 폭력성에 주목해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곤 하죠. 저는 시골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20대 때 느닷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인생이 확 달라졌어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들이 어느 한 순간 벼락처럼 떨어져요. 그렇게 ‘폭력적인 운명’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에 따라서 인간은 파멸의 길을 걷기도 하고, 구원을 받기도 해요. 『7년의 밤』의 최현수는 그야말로 파멸했죠. 물론 파멸하면서도 아들을 지켜내는 데에는 성공을 해요. 자신의 생을 걸어 아들을 지켜냈어요.


운명의 힘은 어쩔 수 없기에 폭력적이지만, 그러한 운명을 대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쓰는 소설에서 가장 중시하는 테마가 그런 이야기이죠. 작가들은 평생에 걸쳐 하나 혹은 두 가지의 테마만을 변주해서 글을 쓴다고 하는데, 저의 테마가 그런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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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다흠

 

작가님의 소설은 범죄소설이지만, 추리소설과는 분명 차별성이 있어요.

 

제 소설에는 범인 찾기가 없고, 범인 찾기를 목표로 한 적도 없어요. 단서를 뿌려두고,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리소설이 아니에요. 누군가 제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꼭 교정해줘요(웃음).

 

소설의 기법 가운데, ‘미스터리’는 작가만이 극의 이야기들을 알죠. ‘서스펜스’는 작가와 독자는 상황을 알지만, 인물은 그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고조 되고요. ‘극적 아이러니’는 작가, 독자, 그리고 심지어 작품 속 인물도 알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타나요. 저는 사실 미스터리는 좋아하지 않아요. 꼭 미스터리 기법을 사용해야만 손에 땀을 쥐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서스펜스나 극적 아이러니의 상황이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 내죠. 저는 그런 힘이 더 강력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를 깜빡 속이는 미스터리보다, 독자와 동등한 입장 혹은 독자의 손에 더 많은 것을 쥐어주면서도 긴장감이 유지되는 그런 장면에 더 매력을 느껴요. 반전도 좋아하지 않는데요. 꼭 농간에 놀아났다는 배신감이 들잖아요(웃음). 반전 없이 독자가 처음 예측 했던 결론에 이르더라도, 결론을 눈앞에 보면서도 서스펜스와 극적 아이러니를 차곡차곡 쌓으면 조마조마하면서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 주느냐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으로,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문장을 마무리한 뒤 거꾸로 읽으면서 탈고하신다고 들었는데, 치밀한 구성력의 비결인건가요?

 

빈 구멍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인간은 앞뒤 맥락이 맞으면 글자가 빠져 있어도 있는 것처럼 모르고 지나간대요. 앞에 복선은 깔려있는데,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넘어가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도 초반에는 씨앗을 뿌려놓고 거두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뒤에서부터 탈고를 하니, 놓치고 넘어간 부분이 딱 보이더라고요. 생소한 환경을 만들어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거죠. 그렇게 뒤에서부터 딱 한번만 그렇게 보면 거의 잡아낼 수 있어요.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출판사에서 원고를 계속 퇴짜 맞는데, 이 길을 포기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어요.  저도 그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굉장히 울컥하더라고요. 그 질문에 아마 가장 긴 답변을 했을 거예요. 저도 해줄 말이 굉장히 많았었거든요. 작가 지망생 중에는 당연히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결국은 끈기라고 생각해요. 소설 쓰기라는 게, 체력도 필요하고 의외로 ‘승부 근성’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소설쓰기는 우여곡절이 많아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승부 근성이 없으면 헤매다가 결론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꼭 소설쓰기가 아니어도 요즘 친구들은 글 쓰는 능력이 참 중요하잖아요.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자기소개서를 잘 써야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죠. 요즘은 '자소설'이라고까지 한다면서요(웃음).

 

영화화된 『7년의 밤』이 개봉 전부터 화제입니다. 영화화 된, 그리고 될 작품들이 많으세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들이 가장 주목하는 소설가 중 한 분이실 텐데, 작가님이 만일 영화감독 이라면 어떤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제가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스릴러 감독이 되었을 것 같긴 해요. 워낙 ‘스릴러’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그에 관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우리는 '생존한 사람들의 후예'잖아요.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스릴러니까요. 영화계 쪽에서도 제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하죠. 하지만, 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지는 않아요. 제 소설은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게끔 만든 소설이에요. 그러려면 독자의 오감에 폭탄을 터트려야 하잖아요.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묘사에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영화라는 시각매체에 적합하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관심도 감사하지만, 제 목표는 독자들에게 감정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해외작가들과 어울려 일주일간 함께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참가 소감이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축제일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작가축제와 같은 행사를 아직 한 번도 참가해보지 못해서, 이번에 거는 기대가 아주 커요. 작가와의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니라 작가들이 모였을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같은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많습니다. 특히 저와 파트너 작가를 이룬 콜롬비아의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의 경우 남미에서 아주 저명한 소설가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남미소설을 좋아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일주일 동안 가까이 지내다 보면,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예스24 참가신청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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