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라면을 끓이며』 저자 김훈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회사 이메일 속의 내 모습은 진짜 나와 가장 먼 자아일지 모른다.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은 존재할까.

1.jpg

 

"어떻게 보면 노동과 인격이 분리가 되지 않았던 시대의 노동이 아니었나 싶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말밖에 안 되겠지만, 우리는 잔혹한 노동 속에 살고 있어요.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나로부터 멀어져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 즐거운 노동을 한다면 자유로부터 멀어지지는 않겠죠."

  - 『라면을 끓이며』 저자 김훈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심각한 무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을 볼 때, 곁에 아무도 없는데 해맑게 웃고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 나는 생각한다. "아, 저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겠구나." 간혹 어떤 자리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일 때, 나는 이 자리를 리드하고 싶지 않아 몸을 비튼다. 막내일 때가 가장 편하나, 이제 그런 소중한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갈급해졌을까. 눈치보지 않고 제멋대로 하늘을 쳐다보고 싶은데,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종종 소외감을 느낀다. "너는 평소에 가면을 많이 써?"라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 없다. 마음에 없는 이모티콘을 날리며 문자를 남기고, 매끄럽게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 자아는 속삭인다. "나 좀 그만 소외 시켜줄래?"

 

소설가 김훈은 “부지런을 떨수록 나로부터 멀어진다”고 했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했다. 그러니 회사 이메일 속의 내 모습은 진짜 나와 가장 먼 자아일지 모른다.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은 존재할까. 아이를 살뜰히 보살피는 내 모습은 사랑인가, 노동인가. 책임감을 벗어 던진 자유로운 노동은 과연 존재할까.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인격을 버리지 않은 노동은 이 사회 속에서 가능할까. 노동이 아닌 일이 없을지언정, 다만 내가 의식하지 않을 때 자유로운 노동은 가능하지 않을까. 나부터 소외시키지 않을 일이다.

 

 

김훈 인터뷰 다시 보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엄지혜


라면을 끓이며

<김훈> 저15,300원(10% + 5%)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된다. 오래전에 절판된 후 애서가들이 헌책방을 찾아헤매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기억할 만한 최고의 산문들만을 가려 뽑고, 그후 새로 쓴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진짜 수학 세계사

피타고라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뉴턴. 유명한 수학자는 대부분 유럽 남자다. 훌륭한 비유럽 수학자가 많았는데도 말이다.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는 지금까지 쓰여진 수학사의 공백을 채운다. 인도, 중국, 마야 등 다른 대륙에서 발달한 수학 들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간절하게 원했던 보통의 삶을 위하여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집’. 이 집이라는 출발점부터 비뚤어진 한 소녀가 어떤 여자를 만나고, 생판 모르는 남들과 살게 된다. 가출 청소년, 빚쟁이 등 사회 속에서 외면받은 이들이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삶의 복잡한 내면을 다룬 수작이자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

국민을 위한 완벽한 나라가 존재하는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2036년,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국이 아예 두 나라로 분리된다. 양국이 체제 경쟁의 장으로 활용하는 ‘중립지대’가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이복자매 스파이들. 그들의 치열한 첩보전을 통해 적나라한 민낯들이 펼쳐진다.

‘시’가 전하는 깊고 진한 위로

장석주 작가가 전하는 시에 관한 이야기. 시인으로, 작가로 50년 가까이 글을 읽고 써온 그가 사랑한 77편의 명시와 이를 사유한 글들을 전한다. 과잉의 시대에서 덜어냄의 미학을 선사하는 짧은 문학, '시'가 선물하는 절제된 즐거움과 작가만의 울림 가득한 통찰을 마주해보자.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