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가족의 마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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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절대 내게는 일어날 리가 없다고 여기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으니까. 또 행여 피해자 측면이 된다고 해도 한번쯤은 상대방의 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은 흐트러진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데 도움일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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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각종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부터 학교, 가정, 성폭력 피해자나 그 가족을 부지기수로 만난다. 예기치 않던 사건이 인생에 일어나 놀라고, 분노하고, 상황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놀라고, 온몸은 긴장 되어있고, 악몽에 시달린다. 이들에 대한 연구와 진료경험은 꽤 많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병의 개념도 확립된 지 오래 되었다. 그러다 간혹 10대 1의 확률 이하로 가해자나 그 가족을 만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례가 ‘처벌을 피하거나 감경 받기 위해’ 병원에 찾아온 것이다. 폭력을 가한 원인이 정신질환적 문제일 가능성이 있고, 이를 평가 받고 치료를 받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피해자나 경찰, 학교 당국과 같은 곳에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특징이 있다. 피해자와 달리 정작 가해자의 경우는 일부가 후회와 죄책감을 갖고 표현하지만(표면적으로는 잘못했고 뉘우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서 현실적 판단을 하거나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이에 반해 감정이 확 느껴지는 부분은 그들의 부모다. 부모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떻게든 잘 마무리 짓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 아이가 착한 아이인데 왜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얘도 피해자일지 몰라요.”
“제 아이가 소소한 말썽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이 정도 사고를 칠 녀석은 아닙니다. 친구를 잘못 만났어요. 술이 원수죠.”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에게도 경찰이나 피해자 가족에게 하듯 미안해하고, 선처를 바란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자기 자식에 대한 걱정이 다른 윤리적 이슈나, 부모 본인의 사회적 가치판단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아이가 벌을 받는 것, 인생이 망가지는 것만은 막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더욱 강렬히 알고 싶은 것은 ‘도대체 왜’라는 것이다. 자기가 아는 자식과 세상이 알고 있는 자식이 이렇게 다를지 몰랐으니 말이다.

 

이들이 진료실을 나간 다음에 부모의 간절함이 준 잔향이 훨씬 오래 남는다. 최소한 이들은 진실하고 절실하였다. 특히 더 당황해 하는 부모는 평소 ‘양육에 자신이 있는 사람’인 경우다. 그들은 자신이 아이들을 속속들이 잘 이해하고 있고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평소 자기만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잘 이해하지 못한 부모를 직무유기를 했다고 보아 왔다.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자기 자아의 연장의 측면에서 아이를 인식해왔는데, 아이가 엄청난 사고를 친 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해자 부모의 마음을 한 번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절대 내게는 일어날 리가 없다고 여기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으니까. 또 행여 피해자 측면이 된다고 해도 한번쯤은 상대방의 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은 흐트러진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데 도움일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


이를 위해 도움이 될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다. 이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범죄심리학자도 저널리스트도 아니다. 1999년 4월 20일 이전까지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라는 두 학생이 자신들이 다니는 컬럼바인 고등학교에 들어가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부터 수 클리볼드는 평생 짊어질 멍에를 안게 되었다. 가해자의 엄마가 된 것이다.

 

이 책은 가해자의 엄마가 자신과 아들에게 면죄부를 달라고 호소하는 책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복기(復記)해 나가면서 도대체 딜런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딜런이 어떤 아이였는지 낱낱이 보여주며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이라는 것을 얘기하려고 한다. 인간에게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고, 예방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인간세계의 불합리성이자 아이러니이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당사자의 입장으로 써내려 갔다. 그런 면에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책이다.

 

“압도적인 수치감과 공포와 슬픔만큼이나 강한 알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에 따른 순전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쥐고 있을지 모르는 조각들이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퍼즐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자, 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일이 힘겹더라도 피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사실 컬럼바인 이전에 누가 우리 삶을 들여다보았더라도, 아무리 고배율 줌렌즈를 들이댔더라도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정과 다를 바 없는 아주 평범한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마음이 아니라, ‘도대체 왜’라는 마음이 들고, 이것은 오해일 것이고, 큰 음모일지 모른다고 여기고 싶었을 것이다. 머릿속은 혼란 덩어리일 수 밖에 없고, 부모가 아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로는 도대체 그 큰 사건을 저지른 범인과 맞닿는 접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해에 공범인 에릭과 함께 문제행동이 있었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흔한 일탈로 보았고, 상담프로그램을 아주 성실히 받고 잘 끝마쳤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고 곧 도시로 떠날 예정이었고, 졸업무도회도 갔다. 왕따도 아니고, 기괴한 요주의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딜런은 어느 날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가해자 아이들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 이후의 주변의 시선을 온전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의 몫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그게 양육의 잘못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리 마음 안에는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일이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 수 클리볼드는 복기에 복기를 거듭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이 책은 평화로운 일상에 총격사건이 일어나고, 그 범인이 딜런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시간 순서대로 있었던 사건을 수의 관점에서 풀었다. 잔인한 언론의 관심, 경찰조사, 변호사와 만남, 주변의 따가운 시선, 피해자 가족의 분노와 같은 전방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럴 리 없다는 부정과 먹먹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던 시기를 지나,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가서 슬픔과 죄책감, ‘왜’를 이해하며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썼다고 해서 그녀가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이게 악몽이 아님을 깨닫는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그녀와 남편은 여전히 그 사건이 벌어진 리틀턴에서 살고 있고, 자살예방활동가로 10년째 일을 하고 있다. 자살을 한 가족들을 만나고 용기를 얻고 위안을 얻으면서, 또 이제 그들을 돕는 활동을 하면서 전국을 다니고, 붙은 이름표를 알아본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면서 수 클리볼드는 이 일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소설이 아닌 논픽션으로, 그것도 저널리스트의 탐사보도나 심리학자의 연구가 아닌 엄마가 쓴 서툴지만 생생한 글로 읽는 것이라 그런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울린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겪은 그녀와 가족의 마음안에 들어가 보는 것은 앞으로도 다시 만나기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책 속의 이 문장이 ‘내게는 벌어지지 않을 사건으로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한 이해를 설명한다. 오비디우스는 이런 금언을 남겼다. “고통을 반기라. 고통에서 배움을 얻을 터이니.” 하지만 이런 고통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없다. 고통이 다가올 때 불평을 할 수는 있지만 고통더러 떠나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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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저/홍한별 역 | 반비
이 책은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 사건을 벌인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었는가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사건 이후 가해자의 가족들이 어떤 일,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겪어왔는지 역시 솔직하고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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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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