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서던 캘리포니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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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타고 캘리포니아 남쪽으로 떠나자. 샌타모니카에서 해변의 활기와 여유를 만끽한 뒤 과거 루트 66이 지나던 바스토로 간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의 신비로운 자연 풍광을 보고 나면 쉽게 걸음을 돌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막 속 휴양지인 팜 스프링스의 건축을 감상하며 여정을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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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팜 스프링스 북서쪽 구릉지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에드리스 하우스(Edris House)를 포함해 주요 미드센트리 모던 건축물이 일대에 모여 있다.

 

1. Santa Monica 샌타모니카

 

바다를 옆에 끼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 특유의 여유롭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만끽해보자.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에 감도는 공중의 흐릿한 비린내를 나침반 삼아 두 블록만 걸으면 샌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에 닿는다. 태평양과 나란히 뻗어 있는 거리는 독특한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의 차지다. 관광객이 세계적 패션 브랜드와 체인 레스토랑, 대형 백화점이 밀집한 서드 스트리트 프롬나드(Third Street Promenade)에서 쇼핑백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동안 현지인은 메인 스트리트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이 거리엔 화려함 대신 자연스러운 품위가 있다. 그리고 오늘 자전거 투어를 예약한 페달 오어 낫(Perdal… or Not) 매장도.

 

샌타모니카는 5.6킬로미터 길이의 해안선을 마주하고 발달한 도시다. 해변은 거의 일직선에 가깝고 반듯한 격자무늬를 이룬 도로가 도시 곳곳을 파고든다. 경사가 낮은 오르막 몇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하면, 자전거가 이 지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동 수단이라는 뜻이다. 자전거도로를 잘 갖췄고, 대여점도 수두룩하다. 2015년 말에는 공공 자전거 시스템 브리즈(Breeze)를 도입해 75개 지점에 자전거 500여 대를 설치했다.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자전거를 빌려 모험을 떠날 수 있지만, 이제 막 샌타모니카에 발을 들인 여행자라면 바브 위틀스(Barb Wittles) 같은 노련한 안내자와 함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25년째 이 도시에 거주 중인 그녀는 남편과 자전거 숍을 운영하며 샌타모니카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는 자전거 투어를 진행한다. ‘페달 오어 낫’이라는 이름에 숨은 뜻을 간파한 이라면 우리가 전기모터의 도움을 살짝 받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리라.

 

“길을 가로질러 곧장 샌타모니카 비치로 갈 거예요.” 위틀스가 전기 자전거의 작동법과 라이딩 중 사용할 수신호 몇 가지를 알려주며 말한다. 사실 이 일대에서 해변만큼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곳도 없다. 샌타모니카 만(Santa Monica Bay)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끝없이(정확히는 35킬로미터) 이어지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해안선 거의 전부를 훑고 지나는 마빈 브로드 바이크 트레일(Marvin Braude Bike Trail). 현지인 사이에선 더 스트랜드(The Strand)라고 부른다. 말이 자전거 길이지, 인라인스케이트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부터 걷거나 뛰는 사람까지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페달을 굴리는 동안 길 너머에선 훨씬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백사장에는 비치 발리볼에 열중하는 무리와 일광욕을 즐기는 이가 뒤섞여 있고 잔디에선 요가 수업이 진행 중이며, 어설픈 서퍼와 새하얀 요트가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다. 한쪽에는 ‘카사 델 마르(Casa del Mar)’나 ‘시 캐슬(Sea Castle)’처럼 노골적인 이름을 단 호화 호텔과 고급 주택이 태평양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늘어서 있다. 조니 뎁이나 잭 니컬슨이 그중 어느 호텔에 머물렀고, 바비 인형을 만든 루스 핸들러(Ruth Handeler)의 집은 어느 것인지 위슬러가 귀띔해준다.

 

평범한 여행객이 캘리포니아의 해변 휴양지를 향유하는 법은 부유한 유명 인사의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우선 샌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로 갈 것이다. 놀이공원 퍼시픽 파크(Pacific Park)를 비롯해 회전목마가 있는 루프 히포드롬(Looff Hippodrome)과 아쿠아리움,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이 모여 있는 부두는 해변의 상징이다. 단지 유흥거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1930년대 인근의 할리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샌타모니카 피어에도 사람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1909년 건설한 루프 히포드롬은 전 세계에 남아 있는 50여 개의 목제 회전목마 중 하나로, 미국 역사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영화 <스팅>(1973)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푸른빛 건물에 들어선 부바 검프 슈림프(Bubba Gump Shrimp)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모티프를 얻은 해산물 레스토랑이고, 형광빛 LED 조명을 밝힌 친환경 대관람차는 <아이언맨>(2008)에 등장했다. 주말 저녁 샌타모니카 피어 진입로 근처에 가보라. 이미 주차장을 빼곡하게 메운 차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지어 밀려드는 행렬, 이곳이 100년 전부터 낚시 명당이었음을 증명하는 낚시꾼까지. “샌타모니카는 어른을 위한 놀이터인 셈이에요.” 위틀스의 이 한마디보다 이곳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듯하다.

 

샌타모니카 피어에서 남쪽으로 되돌아가다 보면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로 이어진다.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알록달록한 건물과 노점이 늘어선 번잡한 거리. 그리고 잔뜩 부풀린 근육을 훈장처럼 과시하는 머슬 비치(Muscle Beach)의 보디 빌더와 현란한 기술로 관중을 사로잡는 스케이트 파크(Skate Park)의 스케이트보더로 대변되는 혈기왕성한 젊음.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분출하려는 이들이 베니스 비치를 점령하고 있다. 그 분위기에 질리기 전에 얼른 내륙쪽으로 핸들을 틀자. 투어를 마무리하기엔 베니스 운하(Venice Canal) 쪽이 훨씬 낫다. 1900년대 초반 애벗 키니(Abbot Kinney)라는 부호가 자신만의 베네치아를 꿈꾸며 리조트 타운으로 건설한 곳이다. 여러 차례 복원과 재정비를 거쳤지만, 아름다운 저택과 다리가 수로와 어우러진 이국적인 모습은 여전하다. 이대로 멈춰 서서 평화로운 운하를 만끽하고 싶겠지만, 진짜 종착지는 따로 있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도 메인 스트리트에서’라는 것이 이 투어의 변하지 않는 유일한 규칙이랄까. 자전거를 반납한 뒤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골라 브런치를 즐겨보자. 주말이면 샌타모니카의 현지인이 그러듯 말이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이기도 하니까.

 

로스앤젤레스에서 샌버너디노(San Bernadino) 방면으로 가다가 15번 주간고속도로(I-15)를 타고 바스토로 가자. 빅터빌(Victorville) 인근에서 오로 그랜드(Oro Grande)로 빠지면 엘머스 보틀 트리 랜치에 들를 수 있다.

 

추가 정보
*메인 스트리트 중심부에 위치한 시 쇼어 모텔(Sea Shore Motel)은 자동차 여행 중 만날 법한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숙소다. 친절한 직원과 숙소 입구에 위치한 카페도 매력적이다. 뒤편에 널찍한 무료 주차장을 갖췄다. 125달러부터, seashoremotel.com


*페달 오어 낫은 매일 두 차례(10am, 2pm) 소규모 자전거 투어를 진행한다. 3시간 남짓 전기 자전거를 타고 샌타모니카와 베니스 지역을 둘러보는 코스다. 20달러를 추가하면 프라이빗 투어도 가능하다. 1인당 85달러, pedalorn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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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타모니카 비치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 행렬. 분홍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건물이 루스 핸들러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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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사이에 두고 별장이 늘어선 베니스 운하.                샌타모니카 피어는 루트 66의 종착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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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는 예나 지금이나 해변에서 가장 북적이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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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샌타모니카의 주말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꽃병을 든 채 해변으로 향하는 현지인.

 

2. Barstow 바스토


유리병과 골동품으로 만든 독특한 목장을 둘러보고 유서 깊은 기차역 한쪽에 자리한 박물관에서 루트 66이 이 도시를 지나던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자.

 

당신이 바스토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면 대다수의 현지인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거기 뭐가 있는데요?” 그렇다, 냉정히 말해 바스토는 대단한 볼거리를 기대할 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1800년대 이 지역에 불어닥친 골드러시는 이미 끝난 지 오래고, 고속도로와 항로가 발달하면서 ‘서부 철도의 중심지’라는 옛 명성도 퇴색했다. 하지만 루트 66에 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

 

1926년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개통한 총 길이 3,945킬로미터의 도로. 루트 66은 당시 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무려 8개 주를 관통하며 북동부와 중서부를 연결했다. 자동차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의 상징이자 대공항을 경험한 미국인에게 새로운 희망이기도 했다. 도로를 따라 네온사인을 밝히는 미국식 모텔과 식당이 들어섰고, 고립돼 있던 내륙의 도시에도 외지인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 길 위에 자리한 사막 도시 바스토가 전성기를 맞은 것도 이 무렵이다.

 

오늘날 루트 66은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효율적으로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주간고속도로가 등장하면서 1985년 공식적으로 폐쇄됐기 때문이다. 새 길이 뚫리면 옛길은 외면받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람들은 루트 66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각 지역에서 이 도로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2000년에는 1,000만 달러(한화 115억 원)를 들여 루트 66을 복원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지금도 여전히 전 구간 중 85퍼센트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한다. 말하자면, 루트 66은 미국 로드 트립의 영원한 고전이다. 바스토는 그 고전의 한 챕터쯤 되는 도시고.

 

루트 66 머더 로드 뮤지엄(Route 66 Mother Road Museum)은 여러모로 이 국도를 추억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일단 바스토에 있고, 지역민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박물관이라는 점, 100퍼센트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라는 점이 그렇다. 과거 기차역과 호텔,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던 유서 깊은 건축물 하비 하우스(Harvey House) 한구석. 번듯한 간판은 없지만 덕분에 부담 없이 문을 열 수 있고, 일주일에 3일만 개방하나 휴관일에도 정중하게 부탁하면 큐레이터 데브라 호킨(Debra Hodkin)이 흔쾌히 ‘오픈’ 사인을 켜둘 것이다. 규모는 보잘것없고 전시는 다듬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책과 지도부터 도로 표지판, 빈티지 자동차와 주유기까지 각종 소품에 둘러싸인 방문객은 박물관을 나서기 전 ‘루트 66’이 새겨진 기념품을 뭐라도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바스토에서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하나 더 있다. 도시 동쪽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엘머스 보틀 트리 랜치(Elmer’s Bottle Tree Ranch)다. 샌타모니카를 출발해 바스토 방면으로 달리는 도중 차창 밖으로 유리병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신기루처럼. 목장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면 색색의 유리병을 그득 매단 철 기둥이 숲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도로 표지판, 칠이 벗겨진 낡은 자동차, 스티커가 잔뜩 붙은 우편함, 남북전쟁 때 사용했을 법한 소총도 보인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쓰레기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모든 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이룬다.

 

버려진 물건과 골동품을 재활용하는 데 타고난 솜씨를 발휘하는 주인공은 엘머 롱(Elmer Long).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그의 모습은 이 공간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처음 유리병을 수집한 건 아버지와 함께 사막으로 캠핑을 다닐 때였어요. 1952년, 여섯 살 무렵이었죠.” 그는 그렇게 모은 사막의 쓰레기로 2000년부터 나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은퇴 후에는 목장을 새로운 직장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저는 여전히 어린아이예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목장 주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나무 1그루를 심었다. 가끔 유리 병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문제로 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저는 거리낄 것 없고 자유로워요. 그거면 됐죠.” 목장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고 길 위의 여행자를 반긴다. 이 키다리 아저씨(Mr. Long)를 만나는 건 운에 맡겨야 하지만 말이다.

 

캘리포니아 주 247번 도로를 따라 2시간 정도 달리면 기이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 나온다.

 

*하비 하우스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미국의 전형적인 도로변 식당 페기 수스 피프티즈 다이너(Peggy Sue’s 50’s Diner)가 있다. 1980년대 처음 문을 열었으며, 당시 TV 프로그램과 영화 등을 테마로 한 레트로풍 인테리어가 이색적이다. 햄버거 7.5달러부터, seashoremotel.com


*엘머스 보틀 트리 랜치는 8,000제곱미터 규모로 그리 넓진 않지만 구석구석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저녁 9시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24266 National Trails Hwy Oro Grande, CA 92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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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샌타모니카에서 바스토로 향하는 길 위의 루트 66 사인.
아담한 벽돌 건물에 들어선 바스토 루트 66 머더 로드 뮤지엄.
샌타페이 철도역이던 하비 하우스에는 오늘날 암트랙(Antrak) 열차가 정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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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세운 나무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엘머스 보틀 트리 랜치의 주인 엘머 롱 할아버지.

 

 3. Joshua Tree National Park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기묘한 매력을 지닌 조슈아 트리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맨들맨들하게 풍화된 화강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겨보자.

 

“혼자 왔어요. 어젯밤엔 함께 어울리던 캠핑족이 있었는데, 다들 아침 일찍 떠나고 저만 남았네요!”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메들린(Madelin)이 파자마 바지에 점퍼를 걸친 차림으로 호탕하게 웃는다. 평소 캠핑을 즐긴다는 그녀는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참이다. 여기 점보 록스(Jumbo Rocks)는 공원 내에 있는 9개 캠핑장 중 하나다.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아담한 캠프 사이트엔 연한 녹색의 작은 텐트와 캠핑 의자 1개가 전부. 단출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자유로워 보인다. 자연에 오롯이 몸을 내맡긴 캠핑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면 누구라도 이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캘리포니아 남동부에 위치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고지대인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과 저지대인 콜로라도 사막(Colorado Desert)에 걸쳐 있다. 상반된 2개의 생태계를 품고 있다는 뜻이다. 공원 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양옆으로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약 3,240제곱킬로미터 대지에선 코요테, 사막큰뿔양, 캥거루쥐, 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아가고, 야생화와 양치식물, 이끼 등 75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국립 공원 이름이기도 한 조슈아 트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생명체다. 야수의 털을 연상시키는 줄기의 거친 표면, 하늘 위로 뻗어 있는 가지, 그 끝에 달린 뾰족한 잎과 봄이면 피어나는 새하얀 꽃까지. 기이해서 더 아름답다. 조슈아 트리는 사실 나무가 아니라, 유카(yucca, 북미가 원산인 용설란과의 여러해살이풀)의 일종이다. ‘조슈아’라는 명칭은 19세기 모르몬교도가 붙인 것. 그들 눈에는 사막에 뿌리내린 이 나무가 두 팔 벌린 여호와처럼 보였나 보다.

 

사람들은 캠핑을 하기 위해 혹은 조슈아 트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16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공원 곳곳의 하이킹 트레일을 걸으려고 오는 이도 있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바위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작년 한 해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방문객은 200만 명이 넘습니다. 그중 30만 명이 암벽등반가였어요.” 파크 레인저 조지 랜드(George Land)가 설명한다. 그 말을 증명하듯 심한 바람에도 높이 솟은 수직 바위에 매달린 사람이 꽤 많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독특한 모양을 띠게 된 거대한 화강암 지대는 이곳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특히 공 원 북쪽에 위치한 원더랜드 오브 록스(Wonderland of Rocks)는 이름 그대로 암벽등반가를 흥분시키는 장소다. “한 관광객은 장비를 써서 바위를 옮겨놓은 게 아니냐고 묻더군요.” 랜드가 커다란 바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작은 바위를 가리키며 장난스레 말한다.

 

신비로운 풍광 때문일까. 롤링스톤스의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 이글스 등 1960~1970년대 로큰롤 뮤지션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매료되었다. 아일랜드 록 밴드 U2는 아마도 ‘조슈아 트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일 것이다(동명의 앨범 커버는 정작 데스 밸리에서 촬영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컨트리 록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그램 파슨스(Gram Parsons)만큼 이곳과 관련이 깊은 인물도 없다. 파슨스가 약물 과용으로 사망한 뒤 그의 매니저는 고인의 바람대로 시신을 국립공원으로 몰래 반입해 화장했다. 당시 이 일은 일명 ‘시신 유괴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어쨌거나 파슨스는 자신의 바람대로 캡 록(Cap Rock) 어딘가에 뿌려졌다. 챙 모자를 닮은 이 바위 주변에는 지금도 종종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흔적을 남겨두곤 한다.

 

새파란 하늘이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낮 동안 거세게 불던 바람은 한결 잦아들었다. 홀 오브 호러스(Hall of Horrors)라는 무시무시한 지명이 붙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가 모여 있는 이 지대는 공원 내 등반 포인트 중 하나인데,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해도 멋지기에, 굳이 그 위로 기어오를 필요가 있나 싶은 곳이기도 하다. 사위가 암흑 속에 잠긴 후에 낮 동안 잊고 있던 하늘의 존재를 확인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문득 오늘 아침, 국립공원 안내소에 딸린 기념품점에서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만지작거린 천체 지도가 떠오른다. 지금 머리 위에 펼쳐진 밤하늘이 마치 그 지도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해서 말이다. 물론 오늘밤은 그보다 훨씬 생생하고 황홀하지만.

 

유카 밸리(Yucca Valley)와 모롱고 밸리(Morongo Valley)를 통과하며 1시간 정도 달리면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한 휴양 도시 팜 스프링스로 들어선다.

 

*국립공원에서 30여 분 떨어진 파이어니어타운(Pioneertown)으로 가자. 1950년대 할리우드 서부영화 세트장으로 지은 곳으로, 서부의 오두막을 그대로 재현한 파이어니어타운 모텔(Pioneertown Motel)에서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135달러부터, pioneertown-motel.com). 저녁 식사는 바로 옆에 위치한 바비큐 레스토랑 겸 술집 패피 앤드 해리어츠(Pappy & Harriet’s)에서 할 것(바비큐 메뉴 19달러부터, pappyandharriets.com).

 

*웹사이트 nps.gov/jotr에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차량 1대당 입장료 20달러(7일 간 유효), 캠핑 1박에 15달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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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전망 포인트인 키스 뷰(Keys View)에서 만난 현지인 샌디(Sandy)와 그의 반려견 벨(Belle).

이곳에선 샌안드레아스 단층(San Andreas Fault)과 팜 스프링스는 물론, 멕시코까지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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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치 사람의 손처럼 뻗어 있는 조슈아 트리.
각자 다른 방식으로 국립공원의 자연을 만끽하는 암벽등반가(가운데)와 캠핑족.

 

 

4. Palm Springs 팜 스프링스

 

도시 전역에 퍼져 있는 미드센트리 모던 양식의 건축물을 찾아 다니자.


코첼라, 팜 데저트 등의 주변 지역에서도 예술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다.

 

화창한 날씨, 야자수, 알록달록한 색감, 고급 주택, 온천…. 팜 스프링스 근처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이곳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중 일부는 사실이지만, 실제 이 도시를 마주하면 예상 밖으로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자동차로 여행 중이라면 좀 더 확실하게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일단, 팜 스프링스에 가까워질 즈음 낮은 구릉을 따라 도열한 새하얀 풍차 군단이 당신을 반긴다. 산과 계곡이 있는 이 사막지대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풍력발전 단지다. 팜 스프링스는 그 틈새의 평지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는 한마디로 ‘납작’하다. 거리에 늘어선 야자수보다 높은 건물은 찾아보기 힘든데다, 4개의 건조한 산맥이 사방을 감싸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팜 스프링스는 20세기 중반 리조트 타운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와 멀지 않고, 1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휴식을 방해할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 사막 도시. 작지만 사적인 고급 휴양지의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프랭크 시내트라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해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와 가수가 팜 스프링스로 모여들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따사로운 태양을 좇는 것은 부유층도 마찬가지였다.

 

“부유층이 거주할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모더니즘 건축이 붐을 이뤘어요. 1940~1950년대 이 도시에 들어선 건축물 대부분이 모더니즘 양식이지요.” 트래버 오도넬(Trevor O'Donnell)의 말처럼 오늘날 팜 스프링스는 전 세계에서 미드센트리 모던(Mid-Century Modern) 양식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등 당대 유럽의 근대건축가에서 영향을 받은 미니멀한 주택이 도시 구석구석까지 경쟁하듯 들어서 있다. 현재 팜 스프링스 관광 안내소로 사용 중인 트램웨이 가스 스테이션(Tramway Gas Station)을 보라. 1965년 앨버트 프레이(Albert Frey)와 롭슨 챔버스(Robson Chambers)가 설계한 이 건물은 하늘을 향해 과감하게 솟은 지붕의 선이 특징.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 등 대담하고 순수한 자재는 주변의 광활한 풍광과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팜 스프링스의 모더니즘 건축은 ‘미드센트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할리우드의 황금기가 지나고 쇠락의 길을 가던 도시를 되살린 것도 모더니즘 건축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팜 스프링스의 건축이 재조명받으면서 사람들이 다시 이 지역을 방문하기 시작했죠. 관광이 활성화되자 도시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요.” 미드센트리 모던이 여행자에게만 매력적인 것은 아닌 듯하다. 동부 출신인 오도넬은 로스앤젤레스에서 16년을 살다가 팜스프링스에 반해 이주했다. 그는 1952년 리처드 해리슨(Richard Harrison, 팜 스프링스에서 활동한 모더니스트 건축가 중 1명이다)이 지은 새하얀 집에 살면서 건축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미드센트리 모던은 팜 스프링스의 과거인 동시에 현재다.

 

사막의 예술적 성취가 취향과 안목보다는 자본 덕분에 가능한 것 아니었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높이 세운 담장 너머로 남의 집을 힐끔거리는 것에 더 이상 흥이 나지 않을 땐 도시 밖으로 나가보자. 공공의 예술이 사막을 감싸고 있다. 지역 아티스트가 협업해 동네를 변화시킨 코첼라의 벽화 혹은 번화한 쇼핑가를 거대한 야외 갤러리로 조성한 팜 데저트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당신의 마음을 달래줄지도 모른다.

 

*에이스 호텔 앤드 스윔 클럽(Ace Hotel & Swim Club)은 널찍한 야외 수영장과 스파를 갖춘 리조트 호텔이다. 2층짜리 건물 여러 채에 176개 객실이 나뉘어 있고, 로비와 나란히 있는 레스토랑 킹스 하이웨이(King’s Highway)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168달러부터, acehotel.com/palmsprings

 

*트래버 오도넬이 이끄는 PS 건축 투어스(PS Architecture Tours)에서 미드센트리 모던 건축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85달러, psarchitecturetours.com). 팜 스프링스와 주변 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 visitgreaterpalmsprings.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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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스프링스의 대표적인 미드센트리 모던 건축물 중 하나인 에드리스 하우스. 20세기 중반 이 지역에서 활동한 모더니스트 건축가 E. 스튜어트 윌리엄스(E. Stewart Williams)가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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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가와 미국 원주민의 작품을 포함해 2만4,000점의 전시품을 소장한

팜 스프링스 아트 뮤지엄 (Palm Springs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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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산자락이 첩첩이 에워싼 팜 스프링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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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저트 엘 파세오(El Paseo) 거리에 설치한 블루 콘(Blue K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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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팜 스프링스 인근의 작은 도시 코첼라에서 볼 수 있는 벽화 작품.

현지에서 재배한 신선한 아보카도는 캘리포니아의 중요한 식자재다.

 

표영소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정수임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내는 사진가다.

둘 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이번 자동차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는다. 

 취재 협조 미국관광청(gou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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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표영소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6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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