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역사를 통한 잉카인들의 지혜

『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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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야콥(1889-1967)이 쓴 『빵의 역사』는 제목만으론 빵의 기원을 다룬 느낌일 테지만 빵을 방편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고증한 일종의 문화 역사 경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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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연희동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래저래 드나드는 이웃 동네다. 역대 대통령 들로 인해 뉴스상에 오르내리는 일 빼곤 별 움직임 없는 이 보수적인 주택가가 근래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장사를 해왔던 작은 동네 빵집을 비롯해 새로 문 연 빵집들까지 웬 베이커리 간판이 이다지도 많아졌는지. 하긴 요즘 잡지, TV 할 것 없이 베이커리 빵집 소개가 대세인 듯. 몇 해전만도 밀가루 주성분인 글루텐이 건강에 나쁘다며 방송에 자주 얼굴을 보이는 의사가 건강프로마다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무색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서가를 훑다가 오래 전 읽었던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띄어 다시 책장을 펼쳐 읽어보니 그 느낌이 새로웠다.

 

하인리히 야콥(1889-1967)이 쓴 『빵의 역사』는 제목만으론 빵의 기원을 다룬 느낌일 테지만 빵을 방편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고증한 일종의 문화 역사 경제서이다. 그 내용의 방대함과 다양성, 그리고 철저한 학문적 고증이 구절구절 감동스런 책이다. 내용도 내용이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아끼는 이유는 책 한 권이 무슨 제빵 틀에서 빚어 나오듯 단시간 인스턴트식으로 생산되는 요즘 출판문화를 생각해 볼 때 하인리히 야콥이 장장 20여년 동안 4천여권의 책들을 참고해 탈고한 필생의 역작이란 사실이 새삼 진지함을 더해준다.

 

빵과 관련된 내용을 전하자면 우리가 흔히 먹는 빵의 역사는 계산할 수 없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가운데 2천년전 폼페이제국의 제빵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복원도가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오늘날 빵은 주재료가 밀로 미국과 유럽인들의 주식이지만 빵의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빵이 그들의 주식으로 정착된 것은 지극히 짧은 역사다. 인류 문명에 빵을 선사한 공력은 인디언들의 몫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즈테족과 잉카족들은 옥수수로 빚은 지금의 인도나 터키 음식으로 더 알려진 난 모양의 빵을 주식으로 이용하였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곡식’인 옥수수가 유럽에 전파되며 빵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그 즉시 바로 빵 생산이 대중화된 것은 아니고 아즈테족과 잉카족의 주식인 옥수수가 에스파니아에 의해 대서양을 넘어 안달루시아 지방 등에서 재배되고 이후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이탈리아로 전파되며 빵은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옥수수가 빵의 대중화에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대량재배가 가능한 작황 특징 덕분이다. 당시 유럽에서도 빵은 존재했지만 주재료는 호밀과 밀로 독일과 영국은 전적으로 호밀빵을 먹었고 다른 지역은 밀빵을 이용했으나 둘 다 귀하고 대량 재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고고했던 유럽 귀족들이 상대적으로 문명 미개국으로 간주했을 잉카족의 옥수수를 처음부터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 페스트 같은 전염병 등으로 인해 엄청난 기근이 발생할 때마다 옥수수의 진가를 느끼고 재배가 가능할 수 있었는데,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유럽인들이 옥수수를 식량으로 애용하며 한때 옥수수죽, 옥수수빵 등 식탁을 옥수수로 장식했었는데 이는 곧 불행을 안겨주었다. 1730년 갑자기 유럽에 새로운 질병이 도래해 유럽 전역을 파고들었다. 염증이 생기면서 피부가 거칠게 변하고 이윽고 장과 위에 통증이 발생하며 신경질환을 유발해 치매성 환각, 사망까지 일으키는 치명적인 병이 돌았다. 유럽인들은 처음에 나병의 일종으로 오인했으나 이는 곧 옥수수만을 다량 섭취해 생긴 펠라그라병의 시초였다.

 

식문화가 발달된 유럽인들에게 잉카인들의 식습관 따위는 관심 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몇 천년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었던 잉카인들에게는 의외로 펠라그라병이 별로 문제되지 않았었다. 익히 이들은 식습관을 통해 옥수수의 영양적인 단점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카인들은 옥수수를 먹을 때 유럽인들처럼 절대로 옥수수죽만 먹는 일이 없었다. 옥수수죽을 만들어 아마도 추정하건대 지금의 화덕을 연상시키는 중간 과정에 조심스레 옥수수죽을 난처럼 구워서 먹었던 것 같다. 특히 물고기를 갈아 옥수수반죽에 섞거나 물고기 사냥이 어려울 때는 콩이라도 가루를 내어 옥수수죽에 섞어 빵 반죽을 했으며 반드시 이때 맛은 달달하거나 매운 맛을 냈다. 이를 위해 잉카지역에서 생산되는 매운 고추나 단풍나무 당질을 섞었다.

 

지금도 옥수수는 좋은 식품이지만 영양적으로 신경세포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의 일종인 나이아신이 결핍되어 있어 다른 식품들과의 균형적인 섭취가 강조된다. 그런데 몇 천년 전 잉카인들, 아메리칸 대륙의 인디언들은 이 영양적인 균형을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이것이 바로 신비한 고대 문명의 진가이며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잉카문명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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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역사하인리히 야콥 저/곽명단,임지원 공역 | 우물이있는집
이 책은 서양인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인 빵을 통해 6천년의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양 문명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 연구서이다. 여기에는 전쟁, 혁명, 종교적 갈등, 기아, 재난, 진보, 과학적 성취, 승리에 얽힌 이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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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의학전문기자 출신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 / 푸드테라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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