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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특집 김치찌개

하루 한 상 – 열한 번째 상 :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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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한파로 몸살기가 어른거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김치찌개입니다. 간간이 남편의 상이라고 올리지만 제가 자신 있게 할 줄 아는 요리는 사실 몇 가지 안됩니다. 큰 소리치고 한 요리도 역시나 김치찌개입니다. 그래서 이번 열한 번째 상은 김치찌개.

안녕하세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남편입니다. 퇴직의 여파로 지난 연재를 쉬었습니다. 그래서  여편님에게 이번 연재는 제가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때마침 집 근처에 살던 여동생이 약 2주간 동거인에 추가되면서 자연스레 살림살이가 커졌습니다.


이런 대식구를 먹이기 쉽기도 하고 요즘 같은 한파로 몸살기가 어른거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김치찌개입니다. 간간이 남편의 상이라고 올리지만 제가 자신 있게 할 줄 아는 요리는 사실 몇 가지 안됩니다. 큰 소리치고 한 요리도 역시나 김치찌개입니다. 그래서 이번 열한 번째 상은 김치찌개!

 

 

김치찌개에 얽힌 전설


네 살 터울인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4년간의 기숙 & 하숙 생활을 청산하고 꿈에 그리던 월세방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파는 라면이 아닌 파 팍팍, 치즈, 만두, 마늘 잔뜩 넣은 내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게 되었고, 엄마의 보급품을 밑천 삼아 하나둘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업을 병행하는 자취 초년병이 쉽게 떠올린 음식이라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카레가 전부였습니다. 주말이면 저 세 가지 요리 중 하나를 해놓고 세 네 끼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당시 제가 해주는 대로 먹기만 해야 했던 동생은 저의 반복되는 한솥 요리에 실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올 때마다 ‘이 솥 좀 다시 가져가라’고 애원했습니다. 여기서 동생이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매우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먹기만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의 상 맛있다고 하는 법이 없습니다. 소불고기를 먹어 놓고는 '맛은 좋은데 양념이 닭찜이랑 다른게 없다'거나, 지난 여름 중복을 맞아 여편님이 애써 만든 한방오리백숙을 먹고 나서 '오리백숙은 엄마가 진짜 잘하긴 해요.' 등의 여과없는 평론을 남겼습니다. 자취 초년생 때부터 이런 평론을 들으면서 큰 것이 지금 저의 음식 여정에 크나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로부터 '김치찌개는 이제 엄마보다 낫다'는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끓이고 먹을 것인가


제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방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먼저 김치는 그냥 잘 익은 김치면 어느 김치나 괜찮습니다. 돼지고기는 주로 목살이나 다리 살을 쓰는데, 너무 기름지거나 퍽퍽한 부위만 아니면 이것 또한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다 상황에 맞게 양파, 버섯, 파, 풋고추 등을 준비합니다. 처음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돼지고기를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정석을 밟았는데 지금은 그런 절차는 다 생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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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무려 냉동실에 흑돼지 목살이 있었습니다.

 

김치 한 덩어리를 적당한 양의 김치 국물과 함께 물에 넣어 끓여줍니다. 물이 좀 뜨거워졌다 싶으면 돼지고기와 양파를 넣고 센 불에 15분 정도 팔팔 끓여줍니다. 그리고 불을 조금 줄여서 십분 정도 끓이고 다시 양파, 버섯, 두부, 파 등을 넣고 5분 정도 끓여주면 끝입니다. 김치가 별로 맵지 않다면 풋고추를 조금 넣어도 좋습니다. 여기서 저만의 포인트는 처음 끓일 때 된장을 1티스푼 정도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취향이나 실험정신에 따라 청국장을 넣어도 원하는 바를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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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보글보글 다 넣고 끓여줍니다. 가볍게 한상이 나옵니다.

 

 

찌개학 개론


개인적으로 찌개는 자극적이기보다는 순하되 깊은 맛을 선호하는지라 별도의 소금이나 간장을 넣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담근 김치에는 갖은 양념이 들어있으니까요. 또한 집에서 먹는 김치찌개는 고기와 김치의 비율이 반반으로 넉넉해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래야 두부, 김치, 고기를 삼합으로 먹어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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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한 컨텐츠를 바탕으로 김이나 양배추에 삼합을 싸 먹기도 합니다.

 

 

출근길 찌개 한 상


한동안 저희 부부는 동생의 아침상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동생은 급작스럽게 집 근처의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자격시험공부와 취업 준비로 1년 반 가까이 노력하다 얻은 결과입니다. 일 없던 시절 저를 독서의 길로 안내해준 『백수생활백서』 를 추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취준 2년’의 출판 소식을 듣고 한 권 선물했습니다. 지난 연말 퇴근길에 동네 독립 출판물 취급 서점인 '퇴근길 책한잔'에서 구입한 것인데요, 그곳에서 취준 2년이 잘 팔릴지는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도서 지역에서 자라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독립 출판물이 독립 서점뿐만 아니라 좀 더 크고 넓은 매체에도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찌개론으로 돌아와서 한 마디만 보테면, 김치찌개의 가장 큰 장점은 끓인 다음 날이 더 맛있다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는 좁은 냉장고에 무리해서 넣을 것 없이 바깥 창가나 베란다에 뒀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한 번 끓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먹는 사람도 출근길 한파가 두렵지 않습니다. 주말 저녁에 남은 찌개도 이틀 뒤 아침 상에 차려졌습니다. 아침 빵에 길들여진 우리와 달리 동생은 여전히 아침밥을 고집합니다. 김치찌개 덕분에 그날 아침은 평온했습니다. 자취 시절 물리도록 먹었고 이번에도 3일 내내 먹어서 그런지 당분간 김치찌개는 그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록) 여편의 상


안녕하세요. 이번 회에는 부록으로 찾아뵙는 여편입니다. 시누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저는 주로 저녁을 담당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가 두고 가신 ‘낙지’로 차린 두 번의 주말 저녁입니다. 낙지 전복 연포탕과 낙지볶음이었는데요. 둘 다 처음 시도하는 거라 두려웠지만 만들고 나니 먹을만했습니다. (아니 맛있었습니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도 않았지만 낙지와 전복에서 우러나온 맛이 모든 걸 해결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산물 자체에서 나오는 감칠맛이란.. 그 어떤 양념보다 우월하다고 믿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삶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어쩌면 더 맛깔스러운 거겠지요. 모두들 뜨겁고 매운 거 드시면서 매서운 추위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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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탕과 매운 볶음은 겨울에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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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박주영 저 | 민음사
2006년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책과 사람, 그리고 영화와 인생을 이야기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타인에 대한 탐험과 소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소설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설의 재미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현재의 소설을 시험하며 답안을 제시한다.책읽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백수인 '나', 서연은 절판된 책을 받기 위하여 한 남자의 복수극에 동참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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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윤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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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박주영> 저9,9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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