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거울 보기, 또 다른 의미의 셀카 놀이

일곱 번째 문제. 거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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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최대한 투명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지 않는 일,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대화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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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다음은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밝혀내는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의 저서 『스토리텔링 애니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저자는 자신의 두 딸, 애비와 애너벨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의 자기 과장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자기 과장은 어릴 적에 시작되며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이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우리 딸 애너벨이 세 살이던 어느 여름날 이 사실을 실감했다. 애너벨은 자기가 엄청나게 빠르다고 확신했다. 얼마나 빠르냐고 물었더니 아빠보다 언니보다 빠르다고 대답했다.


우리 셋은 뒤뜰 한쪽 끝에 있는 정원에서 반대쪽 끝에 있는 장난감 집까지 곧잘 달리기 시합을 했다. 애너벨은 늘 결승선에서 일부러 비틀거리는 나를 앞질러 이등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여섯 살에 다리가 긴 애비는 결코 양보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동생을 훌쩍 앞서서 도착했다. 하지만 애너벨은 아무리 많은 패배를 겪고서도 자신의 눈부신 속도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 열 번째쯤 패배했을 때 애너벨에게 “너랑 애비랑 누가 빠르지?” 하고 물었다. 애너벨의 대답은 완패를 당하던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었다. “제가 더 빨라요!”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애너벨은 「애니멀 플래닛」 방송을 보면서 치타가 겁나게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애너벨, 너랑 치타랑은 누가 빠르지?”


다음 중 애너벨의 반응과 대사로 적당한 것은?

1) 살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요?”

2)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야 치타죠.”

3)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장난해요?”

4)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달려라, 애비.”

5)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치타가 빠르긴 하지만 제가 이겨요.”


<문제 해설>

소설을 쓸 때 재미있으면서도 제일 힘든 일은 사람에 대한 묘사다.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은 대략 200만 가지 이상이어서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늘 새로운 묘사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소설을 볼 때마다 ‘아, 이렇게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지만 그건 그 작가의 것일 뿐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고전적인 묘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린다. 노인을 묘사하는 장면은 3D로 된 초상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노인은 수척했으며 목 뒷부분에는 깊은 주름살이 잡혀 있었다. 양 뺨에는 열대 바다의 햇빛 반사광에 노출되면 생기는 가벼운 피부암 종류의 갈색 검버섯이 있었다. 검버섯은 얼굴 양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크고 무거운 고기를 잡으려고 낚싯줄을 오래 만진 탓에 그의 양손에는 깊은 흉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그것은 물고기 없는 사막의 침식 구멍처럼 오래된 것이었다.


모든 게 늙어 보였으나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눈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이었고 쾌활한 불패의 기색이 감돌았다.”


눈 앞에 노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게다가 ‘불패의 기색’이란 단어는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해서 초반의 묘사로 소설의 주제까지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다면 소설의 반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추측일 뿐이지만 소설을 다 쓴 다음에 노인에 대한 묘사를 덧붙였을 수도 있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한 사람의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이 다 끝난 다음에야 주인공의 모습이 선명해질 때가 많다.


『미국의 송어낚시』로 유명한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묘사에 대한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국내에도 출간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원제는 ‘잔디밭의 복수’)에 실린 단편소설 「너를 다른 사람에게 묘사할 때」는 이렇게 시작한다. “며칠 전 너를 다른 사람에게 묘사하려고 했지. 너는 내가 만난 어떤 여자와도 닮지 않았어.”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한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자신이 1941년인가 1942년에 보았던 영화를 끌어들인다. ‘시골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영화였고, 아이들에게 1930년대 뉴딜 정책의 도덕성을 홍보하는’ 영화였다. 한참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나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너는 내게 그렇게 보여.”


이렇게 비효율적인 묘사를 본 적이 있나. 한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설명했는데도 와닿질 않는다. 우리가 그 영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인물 묘사가 가장 적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묘사는 객관적인 척하는 주관적 영역이다. 아무리 상세하게 묘사한다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도무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세워둘 수 있을 뿐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해가며 묘사했던 그녀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던 영화와 알고 있는 모든 여자를 동원시켜 그 사람을 상상해야 한다. 또는, 우리의 내면에 있는 그 사람을 상상해야 한다.


『노인과 바다』의 묘사를 읽고 있으면, 우리는 각자의 손바닥을 바라보게 된다. ‘낚싯줄을 오래 만진 탓에 생긴 깊은 흉터’를 눈으로 그려보게 된다. 우리 손에는 없는 흉터들이지만 우리는 그 흉터를 손바닥에서 본 것 같다. 묘사란, 책을 읽는 사람들의 깊은 곳에 있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좋은 묘사와 나쁜 묘사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나쁜 묘사는 예쁘기만 할 뿐 정확하지 않고, 좋은 묘사는 선명하지 않지만 정확하다. 나쁜 묘사는 셀카와 같고, 좋은 묘사는 스냅샷과 같다. 나쁜 묘사는 최대한 포즈를 취한 후 어색한 미소로 찍는 사진이고, 좋은 묘사는 친한 친구들과 놀다가 자연스럽게 찍히는 사진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난 줄 안다. 토머스 길로비치의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생 100만 명 중에서 “70퍼센트가 자신의 리더십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했다. 남자들은 자기들이 운전을 전부 잘하는 줄 알고, 군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줄 안다. 우연한 사고로 죽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고, 텔레비전의 비극이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난이 생기면 그 중에서 살아남는 한 사람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낳은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안다.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셀카를 찍는다. 셀카를 찍을 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즈를 취하며, 좋아하는 표정을 짓고, 좋아하는 각도를 선택한다. 헤밍웨이의 묘사는 셀카가 아니라 스냅샷이다. 미셸 우엘벡의 소설도, 폴 오스터의 소설도 그렇다. 홍상수의 영화 역시 셀카가 아니라 스냅샷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는 멋진 초상화 속의 할아버지를 진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평상시의 할아버지를 가짜 할아버지로 생각하는 아이가 나온다.


“초상화에 나타난 이러한 모습이 할아버지의 진짜 모습이고, 매일 보았던 할아버지는 말하자면 가짜 할아버지, 임시로 다만 불완전하게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할아버지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평상시의 모습이 이렇게 이상하고 특이한 것은 분명 그렇게 불완전하게, 어쩌면 좀 미숙하게 적응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셀카를 찍고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는 그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길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소에 그렇게 살 수 없지만 그게 진짜 나이길 원한다. 평소에는 임시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춰 산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시선을 굳게 믿고 자신만의 삶을 산다. 어떤 삶이 낫다고 할 수 없다. 수많은 시선이 얽히고 얽혀 있다. 시선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온몸이 거울이 되어 서로를 비추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기도 한다. 거울이 되지 않고 거울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다. 거울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셀카 놀이다. 우린 거울을 볼 때 최대한 예뻐 보이려고 한다. 배를 집어넣기 위해 숨을 잠시 멈추고, 까치발을 든다. 좋아하는 각도로 얼굴을 돌리고, 고개를 치켜든다. 상대방을 최대한 투명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지 않는 일,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대화의 시작일 것이다.


정답을 풀어보자. 답을 4번으로 하고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홍보하고 싶지만, 정답은 1번이다. 애너벨이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자신이 그렇게 빠르지도 않을뿐더러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인간 중 한 명일 뿐이란 사실을 깨닫는 날은 언제일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럼 참 좋겠지. 애너벨, 가슴 아프지만 말이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란다.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를 들려줄게.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라네. 또한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곳이지. 자네, 이곳에서 고작해야 백 년이나 살까? 내가 아는 규칙이 딱 하나 있지. 그게 뭔지 아나? 젠장, 조, 자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라네!”


나도 한 마디만 덧붙이겠네. 대화를 배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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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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