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예측 불가능
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사랑도 이래저래 쓸쓸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 게 더 쓸쓸하니까요. 사랑은 워낙 난해하고 예측 불가능하니까 다시 올 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뭐?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설거지하며 라디오를 듣다 발끈하였다. 솔로 3년차 꼬라지를 그렇게 티내고 만 거였다. 일단 발끈했지만 곧 풀이 죽어 눈시울을 좀 훔쳐야 했다. 손이 젖어 그런지 물기가 많이 묻어나왔다. 빌어먹을. 왜 이런 곡을 낙엽 뒹구는 계절에 틀고 그래요.
지나간 아름다운 음악들을 사진첩처럼 들여다보자는 이 꼭지의 취지를 정할 때 누가 뭐래도 속으로 결심한 게 있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주제로는 쓰지 않을래. 편애하는 곡이지만 말이 씨가 되면 곤란하잖아. 천하의 박상이 설마 다시 사랑을 못할 리가 없잖아. 응?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다.
가혹한 큐피드는 나를 팽개쳐놓고 어느 결혼 정보회사 등급 매기는 알바라도 뛰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과 사람의 불꽃 튀는 감정반응 대신 머리로 조건을 계산해 결혼하는 세상 아닙니까. 큐피드로서도 먹고 살기 빡세서 나 같은 순정파를 깜빡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날 잊지 못할 사랑도 했고 잊지 못할 이별도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했다. 고로 사랑, 그것 참 오지게 쓸쓸한 일이라는 것도 매우 잘 알겠다. 그렇지만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왜 이토록 힘든 것인지는 진짜 모르겠다. 이해력이 깜깜해질 만큼 공부에 게을렀나? 탐구생활 정신을 길바닥에 흘렸나? 몹시 부끄러워 소주를 한 병 따야 했다. 소주는 간혹 무언가 이해 안 되는 것을 사뭇 이해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물론 술 깨면 다 까먹고 말지만.
어쨌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노래하는 양희은 님의 건조한 목소리에 아이러니 하게도 한 없이 젖어 소주를 뚝뚝 흘렸다. 양말이 젖었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소주를 많이 마시면 눈에서 증류주가 나온다는 걸 알았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지난 아름다운 내 연인들이 떠올라 가슴이 쓰라렸다. 하지만 좋은 사람 사랑했었다면 헤어져도 슬픈 게 아니야(박효신) 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다만 앞서도 얘기한 노랫말의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부분이 과도하게 자조적이며, 인생 뭐 다 끝나고 없는 것 같은 전체적인 기운이 감돌아 우리가 앞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다 하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간절히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몹시 난해했으며 이 글이 산으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암산이 저절로 됐다. 또 울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자세히 들으니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는 곡이 아니었다. 양희은 님의 목소리는 그럴 분이 아니다. 눈물샘을 할퀴지 않으며 오히려 대단히 관조적으로 차분하게 안정시킨다. 부디 쓸쓸해하세요. 라고 종용하지도 않고, 사랑이 그런 거지 뭐 있니, 하는 허무한 실존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표현력은 이 음악을 작곡한 이병우 님의 무상한 클래식 기타 소리와 기가 막히게 연동된다. 너무나 쓸쓸한 노랫말을 그토록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소리조합인 것이다. 이 음색의 저의는 울고 싶은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보호막을 씌워주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사랑 그거 참 쓸쓸한 것 맞더라. 너만 그런 건 아닌 거야. 그런 위안과 공감이 그 보호막 속의 공기다. 그래서 깊이 들이마시면 쓸쓸함조차 결국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게 의외로 더 쓸쓸한 것이다. 사랑은 난해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단순한가 보다. 우리들 마음의 한 부분을 그저 사실적으로 보여줄 때 그 리얼함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양희은 님이 나이 마흔이 됐을 때 발표한 곡이다. 마흔이란 연령은 일희일비 하지 않고, 관조적으로 삶과 사랑의 쓸쓸함을 인정하며 바라보게 되는 때인가 보다. 연애도 못 하고 힘이 쏙 빠진 체념의 상태가 의외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요즘은 나도 마흔 살을 넘긴 기분이다. (기분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한 번은 칩거를 깨고 사교계로 나갔더니 처음 보는 사람이 당신 여자 킬러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나를 디스했다. (젠장, 바보같이 지금 내 입으로 떠들어서 더 알려지는 것 아닐까) 말이 되냐. 난 개미도 못 죽이고, 삼 년 넘게 여자 손도 못 잡아본 무능한 사람이다. 아니 무슨 위상배열 레이더, 적외선 추적 장비 등등을 통합 탑재할 핵심 기술은 없는데 KF-X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욱해서 아예 사교계를 떠났다.
그렇게 포기하자 진짜 마흔 살 아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삶이 시시해지는 순간이며, 내게는 다시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며, 그런 상태로 끓이는 라면조차 맛대가리 없어지는 순간이 되는 것이라는 걸 매일 깨달았다.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라는 노랫말처럼.
그러니까 솔로인 주제에 사랑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정말 못난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반성했다.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유 없이 매력적으로 끌리는 것이다. 조건도 여권도 비자도 필요 없어야 한다. 연봉이 십 원이든 차가 당나귀든 조건보다 마음이 행복을 만드는 요인 아니겠나. 솔로인 인류끼리 마주치는 자리에선 순수한 사랑의 불꽃이 딱딱 튀어야만 한다. 가엾은 큐피드가 알바를 그만두고 본업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내가 오랫동안 사랑을 못한 건 이제 내 몫의 사랑은 다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불꽃을 바보같이 스스로 꺼트렸기 때문인 것이다. 불 끄고 집구석에만 앉아 신세한탄만 하는데 연애를 하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바람 쐬러 가까운 인천공항에 자주 가는데 엊그제 딱 내 스타일인 여자를 보았다. 웃기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였다. 나는 자동으로 따라가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힙 턴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였다.
동네 친구가 그 얘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연애를 쉰 적 없고, 바람피운 적 없고, 지금도 6년째 한 여자와 연애하고 있는 고수다.
“바보구나, 말을 걸었어야지.”
“모르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거니? 갑자기 다리를 거는 것처럼 매너 없는 행동 아니야?”
“한 눈에 반했다며? 그걸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지. 거짓말할 필요가 없잖아. 상황을 연출할 필요도 없고. 당신이 내 눈에 정말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걸.”
그것은 ‘도를 아십니까?’ 식의 접근법 때문에 경계심만 부추기거나 작업 선수로 보일까봐 두렵긴 했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을 때의 쓸쓸한 편안함, 그 난해함에 대한 관조 역시 아름답다는 걸 알겠지만 그것은 사랑할 때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솔로들이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때 함께 외칩시다. 넵. 있어요! 사랑도 이래저래 쓸쓸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 게 더 쓸쓸하니까요. 사랑은 워낙 난해하고 예측 불가능하니까 다시 올 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오호, 예상대로 결국 이 글은 산으로 갔다. 정말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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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